"연말모임 안불러도 갑니다" 정치인보다 더 바쁜 대학총장들, 왜
" 동문 모임부터 지역 행사까지, 불러도 안 불러도 다 가서 눈도장 찍어야죠. "
수도권의 한 사립대 A총장은 이달 중순부터 내년 1월 말까지 주중·주말 저녁 일정이 꽉 차 있다. 연말·연초에 열리는 각종 행사에 참석해 기부금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행사 종류도 지역 상인회부터 중·고교 동창 모임까지 다양하다. A총장은 “대학 재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기부금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가 총장의 주요 능력이 된 지 오래다”라며 “동문 행사가 기부금 모으기가 가장 좋지만, 요즘은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간다”고 했다.
대학 총장들이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등록금은 14년째 동결된 데다 정부 지원도 넉넉하지 않아 대학 재정을 기댈 곳이 사실상 기부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저녁은 물론이고 조찬모임에 운동, 종교 활동도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대학을 믿어 달라’며 기부를 호소하고 악수를 할 때는 마치 표를 호소하는 정치인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일부 대학 총장은 해외에 거주하는 동문에게 기부를 요청하기 위해 나라별로 순회 방문을 하기도 한다.
언론 기사에 나온 ‘잘 나가는 기업’을 찾아 무작정 약속을 잡고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 홍보팀장은 “기업 입장에서도 연말에 자금 정리를 위해 돈을 ‘털어야’ 하거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기업을 찾아서 약속을 잡으라고 지시하는 것도 총장의 능력 중 하나”라고 했다.
대학 기부금 1300억 줄어든 이유
하지만 1994년 사학진흥재단이 105개 사립대를 대상으로 집계한 6112억 9000만원에 비하면 1300억 원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학생 교육비와 장학금, 교수 연구비 등이 6~20배 이상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대학 기부금이 감소한 가장 큰 이유로는 세금 혜택 축소가 꼽힌다. 1990년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에는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해 사립학교 등에 기부한 돈은 전액 회사 손익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소득세·법인세를 감면해줬다. 하지만 이 특례는 2005년까지만 적용됐다. 이후 대학 기부금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업이 대학에 기부하면 50%까지만 법인세 소득 공제를 해 준다.
2013년 말에 소득세법 개정으로 기부금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대상으로 전환돼 실질 혜택이 축소된 영향도 있다. 이 때문에 기부금 공제율이 최대 38%에서 15%로 낮아졌다. 한 지방대의 기부 업무 담당자는 “좋은 마음으로 기부하시는 분들도 당연히 기부 후 어떤 세금 감면 혜택이 있는지 따지는 분들이 적지 않다”며 “과거보다 혜택이 적다 보니 기부의 유인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서울권·지방권 대학 평균 기부금 5배 차이
기부금 쏠림 현상도 심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기준 상위 5개 대학(연세·고려·성균관·한양·울산대)의 기부금 합은 전체 사립대 기부금 총액의 40%에 달했다. 2020년(35.8%)보다 비중이 늘었다. 서울권 대학과 지역 대학의 격차도 크다. 지난해 기준 서울의 사립대 1개교 평균 기부금은 82억 697만 원으로 지방대 평균(15억 4935만 원)의 5.3배였다.
일부 대학에선 정치 후원금과 마찬가지로 대학 기부금도 10만원 한도 내에서 100% 세액 공제를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으로 발의돼 있으며, 현재 기획재정위에서 심사 중이다. 기획재정부는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대학 소액기부까지 전액 세액공제하면 기부자 재정이 아니라 국가 재정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결과가 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김병준 대학발전기금협의회장은 “‘학교사랑 기부금’을 만들어 대학뿐 아니라 초·중·고 모두를 포괄하는 기부금 제도를 만들어 소액 기부 공제가 가능하게 해 달라고 건의하고 있다”며 “등록금도 묶여 있는 상황에서 지역의 대학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자발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기부금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연 기자, 송다정 인턴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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