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 덕에 먹고 삽니다" 장송곡 틀던 그 임실의 반전 [르포]

김준희 2023. 12.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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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후 35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전북 임실군 임실읍 상가 거리. PC방과 커피·패스트푸드 전문점 등이 즐비하다. 내년 1월 2일이면 부대 이전 10주년을 맞는다. 김준희 기자


PC방 업주 "손님 40%가 군인"


지난 28일 오후 2시쯤 전북 임실군 임실읍 한 PC방. 20대 남성 10여 명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입구 쪽 이른바 '로얄석' 16석은 텅 비어 있었다.

'임실 토박이'라는 사장 오모(55)씨는 "35사단 장병을 위해 제일 좋은 자리를 비워 놨다"며 "보통 오후 5시40분쯤 (부대 밖으로) 외출하면 3~4시간씩 스트레스를 풀고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님 중 40%가 군인이고, 주말·공휴일엔 전석이 꽉 찬다"며 "PC방뿐 아니라 35사단 덕에 임실 전체가 먹고산다"고 했다.

35사단 신병교육대대 김범수관에서 열린 신병교육 수료식. 고 김범수 대위는 2004년 2월 18일 사단 신병교육대대 수류탄 훈련 중 훈련병이 제대로 던지지 못한 수류탄을 자기 몸으로 감싸안아 폭발 사고를 막고 순직했다. 사진 35사단


장송곡 시위 4명 공동상해 징역형


30일 임실군에 따르면 전북 방어를 책임지는 육군 제35보병사단(이하 35사단)이 내년 1월 2일 부대 이전 10주년을 맞는다. 35사단은 2014년 1월 전주시 송천동에서 임실읍 대곡리로 둥지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일부 주민이 부대와 임실군청 주변에서 밤낮없이 장송곡을 틀며 반대 시위를 했다.

이에 검찰은 2014년 5월 "합법을 가장한 불법 시위"라며 공동상해·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오모씨 등 4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부대 이전을 시작한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부대 앞에서 고성능 확성기를 이용해 44~74dB(데시벨)로 장송곡을 틀어 업무·훈련을 방해하고 군인 4명에게 스트레스 반응과 이명(귀울림) 등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2018년 7월 오씨 등에게 최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같은 해 3월 "소음 시위가 합리적 의사 전달 범위를 벗어나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의도가 있었다면 폭행"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35사단 병사 2명이 서해안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 35사단


노래방·패스트푸드점 늘어…"20대 선호 업종"


논밭과 산·호수로 둘러싸인 임실은 전체 인구(약 2만6000명) 중 65세 이상이 39%인 초고령 사회다. 진학·취업을 위해 청장년이 떠나 거리가 한산했다. 그러나 부대 이전 이후 장병과 군인 가족이 몰리면서 읍내 상가를 중심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실제 이날 둘러본 읍내 곳곳엔 햄버거·치킨·아이스크림·커피 등 20대 청년층이 선호하는 프랜차이즈 전문점이 즐비했다. 평일 낮이라 군복을 입은 장병은 드물었지만, 상인 대부분은 "35사단에 고마운 마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태권도장 관장 박모(36)씨는 "관원 중 직업 군인도 있고, 그 자녀도 적지 않다"며 "35사단이 오면서 코인노래방·패스트푸드점·PC방 등 젊은 장병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이 늘었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김모(43)씨는 "부대에서 단체 주문이 많다"며 "손님 중 면회 온 장병 가족도 상당수"라고 했다. 편의점 사장 김모(63)씨는 "신병 입소식 날 훈련병이 담배와 휴대전화 충전기 등을 사간다"며 "인도에도 전자시계 등을 파는 노점이 줄지어 생긴다"고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24일 '2023 임실산타축제'가 열린 전북 임실군 치즈테마파크에 인파가 북적이고 있다. 뉴스1


면회객 등 연간 7만명 임실 찾아


특히 매달 2~3차례 신병 입·퇴소식 때는 전국에서 온 인파로 읍내가 북적인다고 한다. 훈련병 6500여 명을 비롯해 부모·친지 등 면회객 6만5000여 명 등 연간 7만명 넘게 임실을 찾아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게 35사단 측 설명이다. 옥정호·치즈마을 등 관광지에도 방문객이 늘었다고 한다. 농·특산물 홍보는 덤이다.

35사단은 매년 시설 공사와 부대 운영 등에 약 580억원을 쓴다고 한다. 장병과 군인 가족 소비 지출 등으로 연간 600억원 경제 효과를 낸다고 35사단은 전했다. 35사단 공보정훈부 신민수 중위는 "그간 타지에서 공급받은 주·부식 재료 상당수를 임실에서 생산한 청정 농산물로 대체하면서 지역 농가엔 안정적 소득을 보장하고 장병에겐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35사단에 따르면 임실 인구 10%에 달하는 사단 병력이 오면서 주민세 등 연간 15억원가량 지방 재정 수입이 늘었다. 군 간부와 가족이 전입해 오면서 임실 인구는 2015~2017년 3만명을 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유동 인구 증가로 주택 가격 등이 올라 부동산 경기도 살아났다고 한다.

오혁재 35사단장이 부대를 방문한 지역 주민에게 배식하고 있다. 사진 35사단


오혁재 사단장 "민-군 상생 모델"


부대 이전 초기부터 군정을 이끌어온 심민 임실군수는 35사단 지원에 적극적이다. 장병을 위해 수송 버스를 대고, 외출 시 매월 임실사랑상품권 6000원과 이발비 6000원을 지원하고 있다. 음식점 할인 혜택도 있다. 임실군은 버스터미널 인근에 볼링장과 장병 휴게실을 갖춘 복합문화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군무원 아파트 건립도 추진 중이다.

오혁재 35사단장은 "35사단과 임실군은 상호 배려와 이해를 바탕으로 장병 사기 진작과 지역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민-군 상생 협력 모델로 자리 잡았다"며 "도민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굳건한 통합 방위 태세를 확립하겠다"고 했다.

35사단 장병들이 부대기를 휘날리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 35사단

임실=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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