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프진 도입 늦어지는 사이…병원선 "항암주사로 중절" 홍보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5년이 되어가도록 법 조항 개정과 먹는 낙태약 도입이 미뤄지고 있다. 개원가에서는 “빠르고 안전한 임신 중절”이라며 항암제로 쓰이는 약물을 유산약으로 홍보하고 있어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3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재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임신중절 의약품 ‘미프지미소(이하 미프진)’가 품목 허가를 받기 위한 재심사 절차를 밟고 있다. 1980년대 초 개발된 미프진은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전세계 95개국에서 쓰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해 처방이 어렵고 유통과 거래, 판매, 구매 등이 전부 불법이다.
앞서 현대약품 측이 미프진 도입을 위해 식약처에 허가 신청을 했지만 자료 보완 문제로 지난해 12월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올 3월 다시 허가를 신청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1차 심사 때와 다른 자료를 업체 측이 보완하고 있다”라고 했다. 심사가 올해를 넘겨 계속될 예정이라 미프진 도입 시점이 불투명하다.
이러는 사이 음지에서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프진 거래가 활개치고 있다. SNS에서 미프진을 검색하니 한 사이트는 “약물유산은 자연유산과 같은 과정”이라며 “제대로 배출만 되면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 미프진 정품만 취급한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개원가에서는 항암 치료제로 쓰이는 약물을 이용한 중절을 적극 안내하고 있다. 한 산부인과는 MTX 주사를 임신 초기에 가능한 약물 중절 방법으로 소개한다. 이 산부인과는 “MTX 주사는 항암제로 사용될 만큼 강력한 약물”이라면서 “태아 세포를 포함해 세포 분열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자궁외임신 치료 시 사용되는 약물로 안전성과 효율성이 입증된 방법이다. 미량 사용되며 시간이 지나면 모두 배출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산부인과 역시 “원치 않은 임신, 약물 중절이 가능하다”라며 “10주차 이내라면 소파술, 흡입술 같은 과정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힘들다면 MTX 주사 중절을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홍보한다.
한 여성은 인터넷에 “아이를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 중절 목적으로 MTX를 선택하게 되었다”며 “성공적으로 중절이 되었다”고 후기를 적었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MTX 허가 조건을 보면 중절하기 위한 약물이 아니고 자궁 외 임신에서 제한적으로 사용 가능한 약”이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약물 중절은 인정되지 않고 있어 법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혜성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대변인)는 “항암제로 쓸 만큼 세포 독성이 있는 약물”이라며 “낙태용으로 쓸 경우 학회에서 용인하는 용법과 임신 주수 등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교수는 “자궁 외 임신에서 쓰기 때문에 불법이라 볼 순 없지만, MTX로 완전 유산이 되지 않을 수 있다”라며 “반복 사용이나 과도한 용량으로 인한 백혈구 감소 등 항암제 합병증을 주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할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모임넷)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관련 조항이 법적 효력을 잃은 지 3년 가까이 됐지만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변화는 거의 진척된 바 없다”라면서 “한국 여성들은 비범죄화가 이뤄진 지금까지도 인터넷에서 약을 찾고 해외 단체에 유산유도제를 요청한다. 복지부가 유산유도제 도입을 지연시키지 말고 실질적인 권리 보장 체계 구축을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법률 개정 추이를 보며 미프진 도입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 조항을 다룬 형법개정안과 임신중지 허용범위 삭제 등이 담긴 모자보건법이 발의돼있다. 그러나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현재까지 형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국회와 정부가 직무유기하는 사이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형법은 법사위 1소위에서 논의된 적이 없다”라며 “지난달 18일 열린 상임위에서 형법상 낙태 허용 범위 원칙이 없는데 약물이 바로 들어오는 건 무리가 있다라는 의원들 공감대가 있었다. 법사위 논의를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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