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으로 여는 새해… 빈필들을까 국립국악관현악단갈까
92개국 생중계, 메가박스 관람
독일 거장 틸레만 지휘 맡아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필)의 시그니처 공연은 뭐니 뭐니 해도 신년음악회다. 신년음악회는 평화와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새해 첫날 혹은 1월에 가장 먼저 열리는 콘서트를 가리킨다. 빈필은 수많은 꽃으로 장식한 빈 무지크페어라인에서 1월 1일(현지시간) 오전 11시 15분부터 약 150분간 신년음악회를 연다.
프로그램은 주로 빈을 대표하는 슈트라우스 일가의 흥겨운 왈츠나 폴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곡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은 프로그램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빈필 신년음악회의 인기가 워낙 높아서 같은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12월 31일 전야 콘서트, 30일 프리뷰 콘서트까지 만들어졌다. 한 해 전 2월에 온라인으로 티켓 신청을 받은 후 추첨을 통해 관객을 선정한다. 세 번의 음악회 중 각각 1회씩 신청할 수 있는데, 프리뷰 콘서트와 전야 콘서트의 경우 1인당 4매까지 가능하다. 신년음악회는 2매까지만 가능하다. 가장 인기 있는 신년음악회의 경우 티켓 가격이 최고 1200유로(2024년 티켓 기준 약 171만원)일 만큼 비싸기도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당첨되기 어렵다.
그런데, 빈필의 신년음악회의 역사를 보면 그 시작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바로 오스트리아를 지배했던 나치 독일의 지시에 따라 열린 자선공연이었기 때문이다. 1939년 12월 31일 오전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작품들로만 구성된 송년음악회가 그 시작이다. 이듬해 12월 31일 오전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동생인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다음 날인 1941년 1월 1일 전날과 같은 프로그램이 다시 연주됐다. 이후 슈트라우스 일가의 음악으로 구성된 빈필 신년음악회의 전통이 자리 잡게 됐다. 빈필과 함께 세계 양대 악단으로 꼽히는 베를린필은 31일 스타 성악가들과 함께 오페라 아리아 중심의 송년음악회를 개최한다. 송년음악회 인기가 높기 때문에 29일과 30일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한다.
빈필 신년음악회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방송 중계 덕분이다. 1959년부터 녹화 중계되다가 89년부터 생중계되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전 세계 90여 개국(2023년 92개국)에 중계 되고 있다. 영상에는 공연 전에 미리 촬영해 놓은 빈 국립오페라발레의 발레를 삽입해서 내보낸다. 한국에서는 KBS가 1970년대부터 녹화중계를 하다가 2013년부터 멀티플렉스극장 메가박스가 생중계를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시차 그리고 위성 중계에 따른 지연 현상에 따라 1월 1일 오후 7시에 시작된다. 일반 영화 관람료보다 몇 배 비싸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인기있는 신년맞이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빈필은 오케스트라 자체의 독립성을 위해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매년 신년음악회 지휘를 누가 맡는지는 전 세계 음악팬들의 관심사다. 그동안 로린 마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주빈 메타, 다니엘 바렌보임 등 내로라하는 당대 거장들이 지휘봉을 잡았다. 2024년 빈필 신년 음악회의 지휘는 독일 음악계를 대표하는 거장 크리스티안 틸레만(사진)이 맡는다. 현재 독일 명문 악단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수석 지휘자인 틸레만은 2024-2025시즌부터는 또다른 명문 악단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2024년 갑진년 ‘푸른 용의 해’를 맞아 국내 크고작은 공연장에도 다채로운 신년음악회가 열린다. 공연장이 직접 주최하는 것은 물론 예술단체마다 준비하기 때문에 일일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2월 초순까지 신년음악회가 이어지는 만큼 연주자, 악단 그리고 공연 프로그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 가운데 눈길을 끄는 공연을 몇 개 골라봤다.
아무래도 1월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 신년음악회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서울시향이 한국을 대표하는 악단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첫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 성시연과 한국인 최초로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와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함께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화려하고 웅장한 차이콥스키의 ‘이탈리아 기상곡’을 시작으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라벨의 ‘치간’ 그리고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오페라 팬이라면 1월 5~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진행되는 국립오페라단의 ‘신년음악회 : 큰 울림 기쁜 소리’를 놓칠 수 없다. 5일 공연은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 12명의 무대로 준비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지난 5월 젊은 성악가들에게 안정적인 공연 출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솔리스트 제도를 도입했다. 5일 공연의 1부는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 서곡을 시작으로 레하르 ‘미소의 나라’ ‘유쾌한 미망인’ 속 아리아를 통해 오페레타의 매력을 선보인다. 이어 2부는 2024년 정기공연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죽음의 도시’ ‘탄호이저’에 나오는 아리아들을 들려준다. 6일 공연은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소프라노 오희진, 테너 김효종, 바리톤 양준모 등 국내 중견 성악가들이 오페라 ‘마농 레스코’ ‘라 보엠’ ‘나비부인’ ‘투란도트’ 속 아리아들을 부른다.
빈필의 실내악단들 가운데 하나인 ‘필하모닉 앙상블’은 1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포함해 4개 도시에서 공연한다. 빈필 바이올리니스트 슈켈첸 돌리가 2013년 창단한 필하모닉 앙상블은 현악 5명, 목관 4명, 금관 3명, 타악기 1명, 총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1월 1일 빈필 신년음악회를 마치고 바로 한국에 온다. 2019년과 2020년에 이어 4년 만이다. 슈트라우스 일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연주, 빈필 신년음악회의 감동을 재현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월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정치용 지휘로 신년음악회를 연다. 국악관현악 주요 레퍼토리인 ‘청청(淸靑)’ ‘춘설(春雪)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 ‘파도: 푸른 안개의 춤’ 등이 연주된다. 하프 연주자 황세희, 국립국악창극단 단원 김수인이 포함된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크레즐 등이 협연 무대를 선사한다. 같은 날 국립정동극장도 신년음악회 ‘용(龍)솟음’을 개최한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추구하는 극장의 방향성에 맞춰 크로스오버 그룹 포르테나 멤버 오스틴 킴의 무대, 뮤지컬 작곡가 이성준의 작품 넘버, 포크계 거장 윤형주도 명곡 메들리 등을 만날 수 있다. 국립정동극장 브런치 콘서트 ‘정동팔레트’와 ‘정동다음’을 각각 책임지고 있는 뮤지컬 배우 양준모와 정가보컬리스트 하윤주가 진행을 맡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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