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내 팔자가 상팔자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소 별난 우리 형부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우울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단다. 가끔 살짝 처지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씻은 듯이 말짱해진다나 뭐라나. 마음이 밝으니 표정 역시 밝은 건 당연지사다. 금니가 보이도록 활짝 웃는 형부의 곁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게다가 소싯적에는 동방신기를 능가하는 아이돌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품었을 정도로 외모도 준수한 편이니 거참 부러운 인생이 아닐 수 없다. 딱 하나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가진 거라고는 불평불만밖에 없는 우리 언니와 결혼했다는 점이다.
언니와 가족이 되었다는 건 그녀와 비슷한 처제까지 덤으로 얻었다는 뜻이다. 이제 막 새신랑이 되었던 시절, 시도 때도 없이 툴툴거리는 언니의 비위를 맞추느라 안 그래도 힘이 들었을 텐데, 잘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며 걸핏하면 울고불고 법석을 떠는 처제를 달래느라 형부는 진땀 꽤나 뺐을 것이다. 형부는 그런 나에게 만병통치약인 용돈을 쥐여 주며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물심양면으로 지지해 준 형부 덕에 이제는 제법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지만 징징거리는 그 천성이 어디 가랴. 이따금 사는 일이 힘겹게 느껴져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은 날이면 친구도 아니요, 엄마도 아닌, 형부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며칠 전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쏟아지는 일들을 해치우느라 온종일 쫄쫄 굶은 나는 도처에 널린 식당을 두고 형부네 집을 찾았다. 밥 한 끼 얻어먹겠다는 핑계로 언니와 형부 사이에 끼어 앉아 신세 한탄을 하며 축 처진 기분을 떨쳐버릴 요량이었다. 형부는 “쉿!” 하는 소리로 인사를 대신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형부가 턱 끝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형부네 집 강아지가 벌러덩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녀석을 상전처럼 떠받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형부는 녀석이 차 버린 이불을 도로 덮어주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처제,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야.”
형부네 강아지는 유기견이었다. 이름을 물어봐도 멍! 나이를 물어봐도 멍! 어떻게 하다가 주인을 잃어버린 거냐고 물어봐도 오로지 멍멍!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그것뿐이니 녀석이 어떠한 세월을 살아왔는지 도무지 알 길은 없다. 그저 목덜미에 난 커다란 상처와 몽땅 빠진 앞니를 보며 쉽지 않은 나날을 견뎌왔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형부가 녀석을 집에 처음으로 데리고 온 날, 녀석은 집안을 구석구석 살피며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화장실 바닥에 볼일을 보더니만 작은방으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단다. 아마도 비슷한 구조의 아파트에 살았던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형부는 골백번도 더 한 그날의 이야기를 또 한 번 늘어놓더니만 덧붙여 말했다. “추운 겨울에 길거리를 떠돌던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 거야. 주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만약에 처지를 비관하고 인생을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개 팔자가 상팔자인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거지.” 형부의 모습은 자기 자식이 최고인 줄 아는 여느 부모와 다름없어 보였으나 때마침 잠에서 깨 해맑은 얼굴로 꼬리를 치는 녀석을 보니 형부의 말을 부인할 수만은 없었다. 저토록 표정이 밝으니 마음 역시 밝을지도 모르지, 뭐.
그때, 우리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언니가 버럭 성을 냈다. “배고파 죽겠으니까 수다 그만 떨고 뭐 먹을지 빨리 정해! 지금 주문해도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된단 말이야!” 성격, 하여튼 저놈의 불같은 성격! 아무리 우리 언니라지만 역성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내가 형부였더라면 진작에 갈라서고도 남았을 텐데. 하루에도 열 번씩 ‘참을 인’ 자를 써가며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형부를 보아하니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참말로 맞는가 보다. 그래. 불평불만과 신세 한탄, 한숨과 눈물과 쓸데없는 걱정일랑 모두 버리고 내 인생을 멋지게 만들어 가 보자. 그러한 의미에서 크게 한번 외쳐 본다. 내 팔자가 상팔자다!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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