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외면한 검사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조성식의 통찰]
[조성식 기자]
▲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 남소연 |
이른바 '김 순경 사건'은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1년 이상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뒤늦게 진범이 잡혀 누명을 벗은 전직 경찰관 김아무개씨 사건을 일컫는다. 이 사건은 국가 공권력의 본질과 경찰·검찰의 역할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주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김 순경 사건이 30년 만에 재조명받은 것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때문이다. 이 사건 담당 검사였던 김 위원장은 지난 27일 인사청문회에서 "늘 가슴 아프고 나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던 일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연락해서 (사과) 기회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진심이라고 믿고 싶지만, 미흡하고 어색하다. 이제 와 이렇게 말할 거면 왜 진작 사과하지 않았단 말인가? 30년이 지나는 동안.
김 순경에게 평생 한을 품게 했던 검사 김홍일
1992년 11월 서울 관악구 신림6동에 있는 한 여관에서 여성 변사체가 발견된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관악경찰서는 신림9동 파출소 소속 김 순경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언론에 크게 보도된 사건이라 경찰청에서 보강조사를 벌였으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경찰은 두 사람이 당일 새벽 3시 30분부터 아침 7시까지 그 여관에서 같이 묵었던 사실을 유력한 정황증거로 제시했다. 김 순경이 부인하자 며칠씩 잠을 재우지 않고 구타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김 순경은 거짓으로 자백했고, 경찰은 사건을 검찰(서울지검 강력부)로 송치했다. 김 순경은 '검찰에 가면 바로 잡히겠지'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었다.
▲ 억울한 옥살이끝에 출소한 김 순경의 모습을 보도한 1993년 12월 17일자 한겨레신문. |
ⓒ 한겨레 |
강력/특수통으로 꼽히던 김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 시절 검사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2007년 대통령 선거 직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주가조작 및 서울 도곡동 땅과 다스 차명소유 비리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서울지검 후신) 3차장으로서 이 사건을 지휘했다. 나는 그가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보였던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후 윤석열 검사가 참여한 BBK 특검은 이명박 당선자에게 깔끔한 면죄부를 안겨줬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첫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승진한 후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을 거쳐 특수부 검사의 꿈인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다. 이때 중수2과장으로서 말 많고 탈 많은 부산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한 검사가 바로 윤 대통령이다. 이후 김 위원장은 부산고검장을 지낸 후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변신했다.
김 순경 사건 1심 재판부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김 순경은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상고심이 진행 중이던 1993년 11월 진범 서아무개씨가 잡혔다. 단순 강도범이었는데 우발적으로 성관계를 시도하다 살인까지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공교롭게도 서씨를 체포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힌 곳은 애초 강압수사로 애먼 사람을 잡았던 관악경찰서였고, 진범을 넘겨받아 재수사를 벌인 곳도 서울지검 강력부였다.
분노에 찬 김 순경의 뜨거운 목소리
일요일인 1993년 12월 12일 밤,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12층은 불빛으로 환했다. 검사와 피의자 간 고성이 오갔다.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 이경재 검사와 서울구치소에서 불려 나온 김 순경이었다. 검사는 "확실한 증거 확보"를 내세워 김 순경을 재조사하려 했다. 이에 김 순경과 가족은 "더는 피의자 신문에 응할 수 없다. 참고인 대우를 해달라"며 조사를 거부했다. 당시 나는 김 순경 가족의 협조를 얻어 유일하게 그 현장을 지켜본 기자였다.
김 순경과 가족이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면서 검찰 직원들과 거친 실랑이가 벌어졌다. 잠시 뒤 이 검사 방에서 나온 진범 서씨가 옆방인 김홍일 검사 방으로 들어갔다. 김 순경 가족의 분노가 폭발했다. 밤새 버티던 김 순경은 다음 날 아침에야 서울구치소로 되돌아갔다.
며칠 동안 가족을 설득한 끝에 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구치소 면회실에서 김 순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 누나와 함께였다. 기자를 보고 처음 "당신은 누구냐. 아무도 못 믿겠다"라고 경계하던 김 순경은 "12일 밤 검찰 조사 때 가족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마음을 열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묻자 그의 눈빛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 사건 초기 관악경찰서에서 왜 거짓 자백을 했는가?
"잠을 재우지 않았는데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없었다. 사건 사흘 전부터 잠을 몇 시간밖에 못 잔 데다 형사들이 돌아가며 잠 안 재우기 고문을 했다."
- 처음에는 목격자로 조사받다가 부검 결과가 나온 뒤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걸로 아는데.
"사망 시간, 항문 온도 측정 등 부검 결과가 내게 불리하게 나왔다. 이 부검 결과를 두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가했다.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으니 자백하면 폭행치사 혐의로 조서를 꾸며 나중에 집행유예로 해주겠다'고 했다. 난 '아니다'라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나 스스로를 속게 만들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도저히 누명을 벗을 길이 없다는 절망감에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자포자기했다."
- 경찰청에서는 어떤 조사를 받았나?
"경찰청에서는 더 심했다. 구타와 함께 며칠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 억울해서 도저히 이대로 몰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한 형사가 '한번 솔직히 얘기해보자'며 진지한 낯빛을 했다. '나는 범인이 아니라'라고 말하자 그는 곧 '이 XX 장난치고 있네'라며 구타했다. 나는 다시 거짓 자백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검찰 조사 과정은?
"계장이 3회 조사했는데 '죽이지 않았다'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검사는 마지막에 딱 한 번 조사했을 뿐이다. 그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된 건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면서 내 눈빛을 피했다. 나는 '당신들은 악마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 왜 처음에 자살이라고 허위 신고를 했나?
"원래 시력이 나쁜 데다 그녀가 죽은 모습을 봤을 때 너무 놀라 정신이 없었다. 입술 부위가 거무스레한 것이 약을 먹은 흔적 같았다. 얼결에 '자살한 것 같다'고 말한 것을 그런 식으로 조서에 기록했다."
- 검찰 재조사 과정에서 약간 실랑이가 있었던 걸로 안다.
"조사를 안 받겠다는 게 아니라 가족과 변호인이 입회한 자유로운 상태에서 받겠다는 게 내 뜻이었다. 계속 두 손을 묶은 채 피의자 취급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 김 검사가 사과했는가?
"'경찰에서 잘못했다'라고만 할 뿐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
(기사 원문에는 "경찰서에서 '잘못했다'라고만 할 뿐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로 표기돼 있지만, 김 위원장이 당시 아무런 사과 없이 경찰에만 책임을 돌렸다는 최근 김 순경 인터뷰 기사 내용을 감안하면 '경찰에서 잘못했다'가 정확한 표현일 듯싶어 수정했음을 밝힘).
입회교도관의 제지로 그와의 얘기는 여기서 그쳤다.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는 길
▲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던 지난 12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직접수사가 축소되자 검찰은 강력히 반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 더불어민주당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일부 개정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더 좁혔다. 그러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른바 '시행령 쿠데타'를 통해 검찰 수사권을 복원하고 확장했다. 그에 따라 검찰의 권한과 업무는 거의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른바 '검수원복'이다.
한 장관과 검찰은 "국민의 이익" 또는 "국민의 피해"를 내세웠지만, 검찰개혁을 염원하는 국민 눈에는 검찰권력을 연장하려는 조직이기주의로 비칠 뿐이다. 김 순경 사건에서 보듯이 기소가 본연 임무인 검찰은 무슨 이권 다툼하듯이 직접수사에 집착하지 말고, 경찰 수사를 견제하는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언론사에서 데스크가 자기 기사 욕심내다가는 기자들 기사의 문제점을 제대로 못 보게 된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보완수사 요청과 시정조치 요구, 재수사 요청 등 현행법이 보장한 감독권을 적극 활용해 경찰 수사를 꼼꼼히 점검하고 실수나 과오를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는 길이다. 여러 번 얘기하지만, 이건 특정 정권과 상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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