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컴 이제 주판 된다…양자컴퓨터에 100억 달러 쏟은 이 나라 [BOOK]
양자컴퓨터의 미래
미치오 카쿠 지음
박병철 옮김
김영사
양자컴퓨터는 디지털 혁명의 뒤를 이을 새로운 기술 혁명의 시대를 열어줄 것인가. '궁극의 컴퓨터’라는 별명이 붙은 양자컴퓨터는 최근 인공지능(AI)과 함께 과학의 획기적 도약을 상징하는 첨단기술의 결정체로 떠올랐다. 미국의 미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로 뉴욕시립대 교수인 지은이는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기기가 앞으로 ‘새로운 혁명의 시대’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양자컴퓨터가 떠오른 과정, 그리고 생명과학‧유전학‧AI‧지구온난화‧생태환경‧식량‧에너지‧우주개발은 물론 노화와 영생까지 이 새로운 기기가 개입할 수 있는 광범위한 분야를 점검한다.
양자컴퓨터는 양자 얽힘이나 중첩 원리 등 양자역학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현상‧원리‧이론을 이용해 데이터의 저장·통신, 그리고 연산 등 정보과학 업무를 처리한다. 0과 1로 이뤄진 비트로 가동하는 기존 디지털 컴퓨터와 달리 0도 되고 1도 되는 큐비트를 이용해 연산한다. 이 때문에 연산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시카모어는 기존의 가장 빠른 수퍼컴퓨터로 푸는 데 1만 년이 걸리는 문제를 단 200초 만에 풀 수 있다고 한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이 새로운 컴퓨터(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기존의 최고 컴퓨터조차 주판처럼 보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속도는 물론 해결 가능한 분야도 광범위하다. 예를 들어 미로에 갇힌 쥐의 탈출 경로를 찾는다고 하자. 디지털 컴퓨터라면 모든 가능한 경로를 하나씩 추적하는 연산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모든 가능한 경로를 한꺼번에 분석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컴퓨터를 아무리 길게 돌려도 풀 수 없었던 난제도 해결할 수 있다. 예로 분자 내부의 파동을 파악해 생명현상과 관련한 생화학반응을 원자 규모에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암이나 치매, 루게릭병을 비롯한 난치병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 의학‧제약 분야에서 대대적인 도약이 기대된다. 구글 연구팀은 양자컴퓨터 개발을 라이트 형제의 첫 시험비행과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에 비교할 만한 비약적 발전이라고 자평했다.
반도체와 배터리로 상징되는 기술적‧지정학적 글로벌 대결에 이어 AI‧양자컴퓨터를 앞세운 새로운 경쟁은 이미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2018년 12월 양자연구집중지원법을 통과시켰다. 매년 800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2~5개의 양자정보과학 연구센터의 신설을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미 행정부는 2021년 에너지부가 총괄하는 양자기술 개발에 6억25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IBM은 물론 군수기업 록히드마틴까지 나서 민간에서 3억4000만 달러의 연구비를 별도로 투입하기로 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인텔‧IBM‧리게티컴퓨팅‧허니월 등 실리콘밸리의 선두기업은 한결같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나서고 있다. 주식 시장 등을 통한 투자 열기도 뜨겁다. 딜로이트는 양자컴퓨터 시장이 2030년대에는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도 질세라 국립양자정보과학연구소에 이미 1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중국 과학아카데미의 양자혁신연구소는 기존 수퍼컴퓨터보다 100조 이상 빠른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2019년 말 정부의 지원으로 양자컴퓨터 관련 프로젝트 30개가 가동을 시작했다. 옥스퍼드에 양자컴퓨팅 허브 역할을 할 국립양자컴퓨팅센터도 건설하고 있다.
일부에선 양자컴퓨터 회의론도 있다. 경쟁은 살벌하고 기술은 속속 발달하고 있지만 언제 현실 세계에서 상용화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 개발사업을 1조 달러짜리 도박판에 비유하는 이유다. 원제 Quantum Supremacy.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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