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상·민유숙 대법관 미묘한 퇴임사…새해 재판지연 불가피

윤지원 2023. 12. 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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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상(오른쪽)-민유숙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상(66, 사법연수원 15기)·민유숙(58·사법연수원 18기) 대법관이 29일 동반퇴임식을 열었다. ‘김명수 코트’에서 ‘조희대 코트’로 넘어간 직후에 열린 퇴임식에서 두 대법관은 미묘하게 엇갈리는 퇴임사를 내놨다.

중도 보수로 평가받은 안 대법관은 29일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사법부 독립을 마지막 화두로 남겨놨다. 안 대법관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외부의 부당한 영향이나 내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민주화가 이뤄진 오늘날에도 사법권의 독립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법관은 부단한 성찰을 통해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보편타당하고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하고, 주관적 가치관이 지나치게 재판에 투영되는 것을 늘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지내는 등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내놓은 민 대법관은 “6년 전 여성법관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직무를 시작한 이래 젠더 이슈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에 관한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며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실제로 확인됐길 바란다”고 했다. 또 “후임 대법관을 포함해 앞으로 성별과 나이, 경력에서 다양한 삶의 환경과 궤적을 가진 대법관들이 상고심을 구성함으로써 대법원이 시대의 흐름을 판결에 반영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 2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안철상, 민유숙 신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위해 백악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메시지는 달랐지만 두 대법관은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란 대법관의 전형을 깨는 인사로 평가받았다. 이 가운데 안 대법관은 9월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퇴임 이후 사법부 수장 공백이 74일간 이어지는 동안 선임 대법관으로서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2019년 8월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안 대법관은 ‘삼성의 승마지원’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가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에 해당한다는 다수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2020년 7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이 대표가 유죄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민 대법관은 여성법관으로선 최초로 ‘엘리트 법관의 정석 승진 코스’라는 영장전담 판사를 지냈던 인물이다. 대법관 취임 후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외국인에 대해 한국어 소통 능력 부족을 이유로 자녀 양육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판결, 미성년자가 성관계를 거부하지 않았더라도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성인을 ‘성적 학대’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 등을 이끌어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1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두 대법관의 퇴임에도 ‘조희대 코트’의 완전체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앞서 대법원장 공백 사태로 후임 대법관 추천 과정이 늦게 시작되면서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인 12일부터 후임 대법관 천거 절차를 진행해 다음 주 중 명단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이후 대법관 후보추천위가 후보자 3배수 이상을 추리면, 대법원장이 이들 중 2명을 정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대법원 내부는 안·민 대법관 후임 임명이 3월 초에나 가능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지난 7월 취임한 서경환(57·21기)·권영준(53·25기) 대법관의 경우 공개 천거부터 취임까지 107일이 걸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무리 절차를 압축적으로 진행해도, 국회 청문 절차에만 한 달 정도 시간이 들어가서 최소 두 달 공백을 예상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상고심 재판 지연도 불가피하게 됐다. 대법원 재판은 ▶대법원장 포함한 13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와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로 나뉜다. 대부분의 재판은 각 대법관이 사건을 분담해 주심을 맡는 소부에서 처리된다. 한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대법관 2명이 공석이라는 것은 결국 소부 사건 처리량이 20%가량 떨어진다는 얘기”라며 “소부 사건 가운데 쟁점이 크거나 중요한 사건은 전원합의체로 올려야 하는데 공석 사태 때문에 회부도 요즘 제동이 걸렸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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