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래된 빌라 고집하냐면, 아파트엔 없는 '이것' 있어서요

신부범 2023. 12. 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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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온 '아파트 숲' 사이 오래된 우리 집, 그래도 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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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범 기자]

요즘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들이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미 입주를 마친 아파트가 대부분이라 저녁 무렵 그곳을 바라보면 각 가정에서 켜 놓은 전등불로 휘황찬란합니다. 도시의 진짜 멋은 저녁 야경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말이지요.

아파트가 들어서다 보니 상가도 당연히 따라붙고 있습니다. 그곳의 상가는 최신식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내, 외부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고급집니다. 편의시설 또한 최상급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아파트를 선호하는지를 직간접적으로 대변해 주는 대목입니다.  

어느 날 이곳 아파트 상가 곱창집에서 친한 친구와 술 한 잔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곱창 하면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지요, 알싸한 소주 한잔에 곱창 한점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다 보면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며 소주 두세 병은 금방 빈병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가다 친구와 잠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입에 문 친구가,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 우리 집 쪽을 바라보고는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은 부촌, 저기는 빈촌."

겉보기엔 허름한 빌라촌이지만
  
 좌측 신축 아파트와 우측 우리집 빌라(흰색)의 모습
ⓒ 신부범
신축 아파트와 극명하게 대조된 저 곳은 빈촌이라는 친구의 말에 그냥 웃음으로 넘겼습니다.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사실 그대로 말했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친구가 악의를 가지고 한 말도 아닐 테고요,

그렇지만 맞습니다. 친구말대로 새로 들어선 신축 아파트에 비하면 낡고 허름한 우리 집 빌라는 빈촌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농담일지라도 진담인 거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도 요즘 오래된 빌라에 대한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 만큼 빈 집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빌라에 살기 시작한 초창기만 해도 신혼부부, 젊은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이 사는 빌라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기 울음소리 들리고, 초등학생들이 시끌벅적 뛰어노는, 그야말로 사람 사는 맛이 나는 빌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어느 순간 점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들 아파트 거주를 선호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거주 형태도 불가피하게 변한 까닭이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참 씁쓸하고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본인이 좋으면 그 집이 최고의 집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외양만 보면 우리 집 빌라는 최고의 집이라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외벽은 수십 년 세월의 풍파를 겪은 만큼이나 꾀죄죄합니다. 증축하고 한 번도 안 한 페인트 도색, 외벽은 땟국물로 찌들어 거무튀튀한 게 볼썽사납습니다. 여기저기 곳곳에 페인트 쪼가리들도 떨어져 나가, 밖에서 보면 사람이 살만한 집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남루해 보입니다.
 
 우리집 내부 모습
ⓒ 신부범
 
그렇지만 나에게는 이 집이 좋고 최고의 집이라고 자부합니다. 비록 오래되고 보잘것없는 낡은 집이지만 이 세상 둘도 없는 보금자리요, 휴식처인 그곳으로  빨리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퇴근을 서두릅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요. 제가 사는 빌라도 외면과 달리 안으로 들어가면 사는 데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오래된 구식이지만 사용하는데 별 불편함이 없는 주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냉장고도 떡하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여섯 평 되는 작은 거실이지만 TV도 갖춰져 있습니다.

요즘 세상 무조건 두 개는 있어야 한다는 화장실은 비록 하나지만, 그래도 없는 건 아닙니다. 단지 약간의 불편함만 뒤따를 뿐입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키운다는 음지식물도 어느 집 못지 않게 예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침실에는 튼튼한 침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음이 약간 심한 제습기, 제대로 되는지 안되는지 모를 공기청정기, 한번 가동하면 제트기 소리 나는 유선 청소기 등 비록 최신식은 아니지만 우리 집에는 대부분 다 있습니다. 이만하면 살만한 집은 아닌가요.(관련 기사: 다들 새 아파트 찾지만 나는 낡은 빌라가 좋다).

옆집 이웃이 가져다준 백일떡... 아파트선 찾기 어려운 인간미

그런데 말이지요, 내가 낡은 빌라를 떠나지 못하고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집 빌라에 대한 따스한 정과 추억에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할 때마다 꼭 우리 집에 들러 맛보시라 가져 오시곤 했던 옆집 아주머니의 따뜻한 인간미, 오고 가고 마주칠 때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덕담을 나누곤 했던 어쩌면 빌라만이 가질 수 있는 이웃집 사람들과의 정 깊은 교감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쁜 손글씨로 백일을 축하해 달라는 메모와 백일 떡
ⓒ 신부범
  
특히 인상 깊은 기억은 정성스러운 백일떡을 받았던 일에 있습니다. 몇해 전 일이지만 앙증맞게도 작고 예쁜 포장백에 '안녕하세요! 저희 아기가 100일이 되어 100일 떡을 했어요! 맛있게 드시고 100일 축하해 주세요~!'라는 손수 쓴 예쁜 메모와 함께 눈부시도록 새하얀 백설기를 담아 가져 왔던 어느 새댁의 정성.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그나마 조금 있는 거라도 서로 조금씩 나누며 따뜻한 인간미와 정이 차고 넘쳤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이웃과의 왕래가 남아있는 빌라. 근래에는 옥상에 조그마한 스티로폼 텃밭을 가꾸고 있는 우리 집 빌라. 이런 이유들이 나로 하여금 낡고 오래된 빌라를 최고의 집으로 추켜세우게 합니다.

부자가 따로 있습니까, 행복이 별거입니까.

제게는 이 집이 최고의 집입니다. 주택자금 근심 걱정 안 하고, 넓은 평수는 아니지만 필요 이상 채울 욕심 없이, 마음 편하게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 없이 소소히 살 수 있는 집. 그래서 그 집이 좋아 퇴근 후 빨리 들어가 쉬고 싶은 집이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부잣집이고 행복이 가득한 집은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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