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거장 번스타인의 난잡하고 파렴치한 뒷이야기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포스터. |
ⓒ 넷플릭스 |
나이가 지긋한 레너드 번스타인이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제작진의 질문에 답하길 아내가 사무치게 그립다고 한다. 모두 의외라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시간을 거슬러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 시절의 어느 날, 아픈 지휘자를 대신해 리허설도 없이 본무대에 데뷔한다. 매우 훌륭했기에 번스타인은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한창 젊은 거장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어느 파티 자리에서 한 여자와 마주친다. 번스타인은 배우라는 그녀에게 매우 끌린 듯 많은 부분이 서로 닮았다고 속사포처럼 말을 잇는다. 그녀 펠리치아 몬테알레그레도 비슷한 마음이었나 보다. 그들은 결혼에 골인해 세 아이를 낳고 잉꼬부부로 정평이 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엔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번스타인은 양성애자에 바람둥이였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바람둥이보다 양성애자가 치명적이었다. 몬테알레그레는 남편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결혼생활 내내 여느 남자들과 바람을 폈다. 몬테알레그레의 인내심도 바닥을 향했다. 이 두 남녀의 끝은 어땠을까?
브래들리 쿠퍼와 캐리 멀리건의 빛나는 연기
미국 음악사, 서양 음악사, 세계 음악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특유의 열정적인 지휘폼을 앞세운 지휘자로 명성이 드높으나 작곡가로서도, 교육활동가 등으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모든 분야에서 칭송받았고 큰 업적을 남겼다. 그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건 아무래도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일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레너드 번스타인의 삶을 전반적으로 훑었다. 브래들리 쿠퍼가 완벽하게 소화하며 1990년 세상을 떠난 번스타인을 수십 년 만에 되살려놨다. 2018년 <스타 이즈 본> 때처럼 감독, 각본, 제작, 주연을 도맡았고 호평을 받았다.
정작 영화를 들여다보면 번스타인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그의 위대한 활동들을 칭송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치부에 가까운 사생활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러니 아내 몬테알레그레와 오가는 내밀한 심리가 또 다른 중심이겠다. 캐리 멀리건이 완벽히 소화했다. 영화 자체는 지루하기 짝이 없으나 브래들리 쿠퍼와 캐리 멀리건의 연기가 빛났다.
번스타인의 다방면을 향한 능력과 정력
번스타인과 몬테알레그레가 서로 첫눈에 반한 건 그들의 삶이 내뿜는 다양성 덕분이었다. 태생, 이력과 경력, 가치관 등 삶의 중요한 부분들이 섞여 있었고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했다. 온갖 것들이 뒤섞이고 있던 시대에 맞는 당연한 시대정신일 수도 있겠으나, 여스스로를 사랑했기에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번스타인은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능력을 뽐냈다. 그는 지휘도 하고 싶고 피아노도 치고 싶고 교향곡도 쓰고 싶고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음악도 만들고 싶고 책과 시도 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며 자신에겐 그럴 만한 능력도 있다고 말했다 한다. 영화에서도 간간이 비추는 바 그는 실현시켰다.
문제는 그의 다방면을 향한 능력과 정력이 엄한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다. 주지했듯 번스타인은 양성애자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바람둥이였다. 사랑으로 결혼해 아이들도 낳았지만 끊임없이 젊고 잘생기고 전도유망한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아내한테 들켜서 크게 싸우고 경고도 받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런 행위가 그에겐 영감의 원천이었을까?
위인의 파렴치한 뒷이야기
역사에 길이남을 위인의 뒷이야기는 언제나 신선하다. 재미없을 수 없다. 위인은 만고불변 완전무결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함이 없을 수 없다. 그 모습을 자의로는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까지 말할 수 있을 테고 타의로는 알려져 있는 부분에 더해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수준까지 상상할 수 있을 테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 좋은 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에 황홀하게 빠져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위인일 것이다. 아내 살아생전 끊임없이 괴롭힌 사생활의 진면목을 글이 아닌 영상으로 똑똑히 봤으니 말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짓뭉갰으며 영혼을 파괴하다시피 했지만 영원히 길이남아 전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을 만든 사람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번스타인에게 아내 몬테알레그레와 뭇 남자들은 영감의 소스에 불과했을까. 능력에 비례해 넘쳐흐르는 정력을 어찌할 바 몰라 분출시킬 대상에 불과했을까. 어느 모로 보나 곱게 봐줄 수가 없다. 누구나 칭송해 마지않는 위인의 파렴치한 행동임에 분명하다.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일 수 있을까.
브래들리 쿠퍼의 차기 '음악영화'가 기다려진다. 어떤 이야기를 들고 올지, 어떤 캐릭터로 생각거리를 던져 줄지, 어떤 음악으로 귀를 호강시켜 줄지 말이다. 번스타인과 몬테알레그레의 이야기는 대체로 평이했으나 번뜩이는 면이 있었다. 예상 가능했던 음악영화라기보다 생각지도 못한 '사랑영화'에 가까웠기에 자못 지루하고 재미가 없기까지 했지만 오묘한 생각거리를 남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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