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노회찬' 발언에 정의당 "깊은 유감" 밝힌 이유

곽우신 2023. 12. 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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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젠더 정치' 무시하고 '노동'만 취사선택?... 김준우 "평생 차별 금지와 평등 위해 싸웠다"

[곽우신 기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한 식당에서 국민의힘 탈당과 신당 창당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노회찬의 정의당과 지금 정의당은 다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 대표가 던진 이 한 마디에 정의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발단은 지난 27일이었다. 이 전 대표는 본인의 '정치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식당에서 국민의힘 탈당 및 신당 창당 기자회견을 열었다(관련 기사: 이준석 탈당·창당 선언, '칼잡이 아집' 윤석열·한동훈 직격 https://omn.kr/26w1l).

기자들로부터 '제3지대와의 연합 가능성'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고 노회찬 전 정의당 국회의원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 전 대표는 "제가 함께할 스펙트럼은 노회찬의 정의당까지"라며 "노회찬이 하고자 한 노동의 가치까지는 제가 하는 정당에 당연히 편입할 생각이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다만 노회찬의 정의당과 지금 정의당은 다르다고 생각해서 지금 정의당과는 차이를 두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28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평생 차별금지와 평등을 위해 싸웠던 노회찬 의원과는 매우 다른 길을 걸어온 이준석 전 대표가 고인의 이름을 언급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이준석 "노회찬의 정의당까지" 연대하겠다지만...

이준석 전 대표와 노회찬 전 의원은 모두 서울 노원 병을 터전으로 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관련 기사: '국민의힘은 어렵다'는 서울 이곳, 문제는 이준석 https://omn.kr/25tk6). 이 전 대표는 이 지역구에서 제20대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그리고 그 사이 2018년 재보궐선거에 도전했으나 낙마했다.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했던 노 전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노원 병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19대 선거에서 재수하여 금배지를 다시 달았다.

두 사람은 2012년 MBC '100분 토론'에 함께 출연해 상대 진영 패널로 마주하며 연을 맺었다. 이 전 대표는 예전부터 노 전 의원의 지역구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이 때문에 여러 언론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가 숯불 갈빗집을 기자회견장으로 고른 게 노회찬 전 의원의 어록을 고려해서 한 발언은 아닌지 추측했다. 노 전 의원의 대표적인 어록인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꺼메진다. 판을 갈 때가 왔다"를 연상시킨다는 것.

이에 대해 이준석 전 대표는 "제가 (기자회견 장소로) 이곳(고깃집)을 고르니 어떤 분은 과도한 해석으로 '불판론'을 얘기한 고 노회찬 전 의원을 생각한 게 아니냐고 하시더라"라며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참 좋은 해석인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대표는 "상계동에서 정치하셨고 제 선배이기도 한"이라며 노회찬 전 의원의 이름을 언급했을 때 잠시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 전 대표는 고 노회찬 전 의원을 긍정적으로 회고하며 그가 이야기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런 맥락의 발언이 처음도 아니다.

최근 발언 중에는 11월 9일 KBS라디오 '최강시사'와의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저는 예를 들어 노회찬 의원의 정의당 정도, 그 정도하고도 당연히 대화할 수 있다"라며 "노회찬 의원이 진보 정치인이기도 하셨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분이 예전에 의정 활동하실 때 '6411번 버스를 타는 노동자들 삶을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했는데) 당연히 누구나 공감해야 할 구호"라고 말한 바 있다.

'82년생 김지영' 추천한 노회찬, 부정한 이준석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 유성호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은 발언이기는 하지만, 이준석 전 대표는 '노동을 중시하는 노회찬의 정의당'과 '젠더를 중시하는 현재의 정의당'을 구분한 셈이다. 이전에도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금의 정의당'을 정체성 정치와 소수자 정치에 매몰되어 있다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노회찬 전 의원은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정치인이기도 했다.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이준석 전 대표와 '젠더 정치' 그리고 '정체성 정치' 관련해 상당한 간극을 보였다.

예컨대 노회찬 전 의원은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김지영을 안아주시라"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직접 선물하는 등 '홍보대사'로 활약했다. '2017 예스24 여름문학학교'에 참석해서는 "남자가 최고의 스펙인 대한민국의 많은 제도, 문화, 관습을 깨기 위해서라도,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야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노회찬이 꼽은 "태어나서 맡은 것 중 가장 영광스런 직책" https://omn.kr/1tuu9).

반면, 이준석 전 대표는 2019년 3월 <더 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책을 읽고 기겁했다"라고 평했다. 그는 "(19)85년생이 보기엔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 남녀차별을 심하게 당했고 애를 데리고 벤치에서 커피마시고 있었더니 남편 등골 빼먹는 '맘충' 소리를 들었다는 82년생 김지영은 말도 안 된다"라며 "이런 식의 고난 열거는 차라리 41년생 MB(이명박 전 대통령) 자서전을 보면 화끈하게 돼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가상의 인물 김지영보다는 먹을 것이 없어서 술 담그고 난 찌꺼기를 먹었고 대학교 등록금을 댈 수 없어서 시장청소하면서 겨우 학비 댔다는 MB가 당연히 더 절대적으로 힘들지 않았겠느냐?"라며 "공교롭게 82의 절반이 41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82년생 김지영'은 허구임을 인식해야 한다"라며 소설 속 서사의 실체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사람으로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정적인 사례들의 합집합을 모아 놓고 '넌 불쌍하지 않니'라고 묻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준석 전 대표가 과거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는 '여성할당제'에 대해서도 노 전 의원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노 전 의원이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직의 30% 이상 여성 할당 의무화를 시작해 최종 목표는 50% 여성할당", "여성할당제에 적극 찬성하며 그 방법으로 비례를 늘려 그 절반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방안"을 제시한 게 2005년이었다.

그는 2007년 제17대 대선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도, 민주노동당 첫 여성 대표인 김혜경 전 대표에게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겼다. 공동 본부장의 50%를 여성으로 하면서 여성할당제 50%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관련 기사: "반성합니다", 노회찬이 붉은장미와 함께 쓴 편지 https://omn.kr/1r42i).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2월 제4회 노회찬상을 받은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이준석 전 대표는 박경석 공동대표와 직접 장애인 이동권 토론에 나서기도 했지만,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한 이들의 투쟁 방식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노회찬 전 의원은 17대 국회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박경석 대표의 곁에서 함께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노회찬, 여성과 장애인과 약자의 곁은 지켰던 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에 대해 제안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정의당이 불편해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장혜영 국회의원은 27일 본인의 SNS을 통해 "탈당을 할 거면 곱게 하시기 바란다"라며 "아무리 정의당이 약해보여도, 돌아가신 남의 당 선배 정치인의 정치까지 갈라쳐 울먹이는 것, 정치 도의상 맞지 않다"라고 직격했다. 

이어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건네던 사람, 호주제 폐지 법안을 발의한 사람, 학력 차별과 성소수자차별에 맞서 온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분이 고 노회찬 의원"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여성과 장애인과 약자의 곁을 지켰던 분"이라는 지적이다.

장 의원은 "고 노회찬 의원은 권리를 외치는 장애인의 시위를 비문명이라 폄하하고 손가락으로 뜨거운 소시지 집냐고, 집게손가락 억지 페미니즘 마녀사냥 선동에 앞장선 이준석 대표 같은 정치인이 쉽게 선배라고 들먹일 분이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2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제3지대로 나와서 새로운 신당 창당을 하는 데 있어서 무운을 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면서도 "다만 어제(27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고 노회찬 대표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평생 차별금지와 평등을 위해서 싸웠던 노회찬 의원의 유지와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걸었던 길은 분명하게 궤적이 달랐다고 생각을 한다"라며 "행여나 이후에 정의당 출신의 정치인 한 두 명이 영입된다고 해서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거듭 고인의 이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고인뿐만 아니라 정의당에 대한 충분한 예의와 존중을 지켜주시길 바란다"라고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이준석 전 대표가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유산 중 특정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현재의 정의당과 '갈라치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반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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