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투쟁정신 발휘하라"…대사들 소집해 '전랑외교' 강조

신경진 2023. 12. 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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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외사공작회의에 참석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붉은 동그라미). 2020년 1월에 부임해 만 4년 임기를 채운 싱 대사가 회의에 참석하면서 임기 연장을 비준 받았음을 과시했다. 사진 CC-TV 화면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7~28일 베이징에서 5년 만에 열린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투쟁 정신을 발휘하라”고 지시했다고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29일 보도했다. 시진핑 3기(2023~2028년) 중국의 외교 기조를 제시하는 확대 공관장 회의에서 ‘투쟁’을 강조함에 따라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로 불리는 중국의 거친 외교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중앙외사공작회의에 참석한 시진핑(단상 중앙) 중국 국가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신화사

이번 회의는 시 주석 집권 이후 2014년과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렸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 당정은 이번 회의에서 "지난 10년간 중국은 대외 공작에서 적지 않은 커다란 풍랑을 헤치며 어려움과 도전에서 승리했다"며 "외교 전략의 자주성과 주도권을 현저하게 강화했다"고 밝혔다. "국제적 영향력, 혁신적 지도력, 도덕적 호소력을 갖춘 책임 있는 대국이 됐다"고도 자평했다.

이와 함께 "향후 대외업무의 전체 계획을 수립했다"며 "미래를 전망하면 중국의 발전은 새로운 전략적 기회의 시기를 맞았고,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는 더 역할을 발휘(更有作爲)할 수 있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회의에선 '서구 중심의 기존 국제 질서를 바꾸겠다'는 시 주석의 의지도 강조됐다. 중국 당정은 "인류의 미래 운명과 세계의 발전 방향에 관한 문제에서, 국제적인 도덕과 의리의 주도권을 굳게 장악하고 '세계 대다수의 단결'을 쟁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국의 책임과 독립·자주 정신의 발산”을 거론하며 “투쟁 정신을 발휘하며 모든 강권 정치와 집단 따돌림 행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선 2014년과 2018년 회의에서 추이톈카이(왼쪽) 당시 주미 중국대사가 발언한 것과 달리 장쥔(오른쪽) 뉴욕 주재 유엔대표가 발언했다. 향후 중국 외교가 미국보다 유엔 외교를 더 중시할 것임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 CC-TV 화면 캡처

중국이 "세계 대다수의 단결"을 강조한 것을 두고 "유엔을 무대로 미국과 다수결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전망"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를 반영하듯, 2014년과 2018년 회의에서 추이톈카이(崔天凱) 당시 주미대사가 별도 발언을 한 것과 달리 올해 회의에선 주미대사 대신 장쥔(張軍) 주유엔대사가 발언하는 모습을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내보냈다.

중국이 190여 유엔 회원국 가운데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맹주를 자임하면서 미국 주도의 기존 국제 질서에 숫자를 앞세워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중국 당정은 이번 회의에서 “우리는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의 다극화와 보편·호혜·포용의 경제 글로벌화를 주도하며, 크고 작은 국가는 모두 평등함을 견지해 패권주의와 강권 정치에 반대해 국제 관계의 민주화를 절실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변국 외교 언급 없이 대국 외교 강조


올해 회의에서 중국 외교의 우선순위는 별도로 언급되지 않았다. 시 주석 집권 후 처음 열렸던 2014년 회의에선 주변국 외교 → 대국 외교 → 개발도상국 외교 → 다자 외교 순서로 외교의 우선순위를 드러냈다. 집권 2기에 열린 2018년 회의에선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외교 → 대국 관계 → 주변국 외교로 순서를 조정했다. 그런데 이번 회의에선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7차례), ‘대국’(11차례), ‘인류 운명 공동체’(5차례), ‘인류’(10 차례), ‘개발도상국’(1차례) 등을 언급하면서도 한·일을 아우르는 ‘주변국 외교’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 외교가 동아시아에서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중앙외사공작회의에 참석한 왕야쥔 주북한 중국대사(붉은 동그라미). 지난 3월 말 임명 2년만에 평양에 부임한 왕 대사가 다시 베이징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평양과 베이징 사이에 외교관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졌음을 보여줬다. 사진 CC-TV 화면 캡처

싱하이밍(邢海明·59) 주한 중국대사도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 CC-TV 뉴스 화면에는 싱 대사와 대사 지명 2년 만인 올해 3월 27일 평양에 부임한 왕야쥔(王亞軍) 주북한 대사의 모습도 보였다. 지난 2018년 6월 22~23일 열렸던 회의 뉴스 화면에는 리진쥔(李進軍) 당시 주북한 대사와 달리 추궈훙(邱國洪) 주한 대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20년 1월에 부임해 통상 대사 임기인 만 4년을 채운 싱 대사가 전임과 달리 중앙외사공작회의에 참석하면서 임기 연장을 비준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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