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달이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방법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송주연 기자]
▲ 삼달은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지만, 후배의 모함으로 한순간에 모든 걸 잃는다. |
ⓒ JTBC |
우리는 살면서 갖은 일들을 겪는다.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때도 있고 때로는 구설에 휘말려 '추락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또한 삶의 풍파를 겪고 있는 누군가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잘 나갔다'가 '추락'한 삼달(신혜선)이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드라마는 삼달과 용필(지창욱)의 로맨스를 큰 줄기로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삼달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삼달은 고향 사람들에 의해 더 상처받기도 하고 반대로 치유되기도 한다. 삼달을 대하는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은 삶의 불행 속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삼달을 대하는 드라마 속 삼달리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 JTBC <웰컴투 삼달리>의 한 장면. |
ⓒ JTBC |
성공한 사진작가 삼달은 함께 일하던 후배 어시스트 은주(조윤서)의 모함으로 졸지에 '갑질로 사람을 죽일 뻔한' 포토그래퍼가 된다. 10년 넘게 함께 일해온 유명인들과 동료들은 그를 모른 척하고, 오랜 시간 준비한 전시회도 무산된다. 언니 진달(신동미), 동생 해달(강미나)과 함께 사는 서울의 집 앞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고, 갈 곳이 없어진 삼달과 자매들은 어쩔 수 없이 제주도 부모님의 집으로 피신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오랜만에 집에 세 딸이 왔는데도 이들의 부모는 반가워하지 않는다. 아버지 판식(서현철)은 찬찬히 딸들의 마음을 살피려 하지만, 엄마 미자(김미경)는 퉁명스럽기만 하다. 세 자매는 판식에겐 자신들의 사정을 털어놓지만 엄마에겐 비밀로 하며 눈치를 살피며 지낸다.
미자는 딸들의 사정이 궁금하지만, 딸들에게 직접 묻지 않는다. 혼자 추측하며 답답해하거나, 이웃의 수근덕거림으로만 딸들에게 일어난 일을 짐작하며 속을 끓인다. 그리고 마침내 삼달이 겪은 일들을 알게 된 후에도 삼달을 위로하기보다는 내복 바람으로 동네를 뛰어다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가서 따지지 않냐"며 화를 낼 뿐이다.
나는 이런 미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인생에서 힘들 때 딸들이 집을 찾는다면, 세 딸이 한꺼번에 왔을 때 무슨 일인지 물어보며 위로하고 힘이 되어 줘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도대체 왜 미자는 그러지 못했던 걸까. 그 이유는 3회 판식과의 대화에서 잘 나타난다. 잠 못 이루는 미자에게 판식이 왜 직접 묻지 않냐고 묻자 미자는 이렇게 답한다.
"무서워서 못 물어봤어."
바로 이거다.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진짜 마음'을 잊곤 한다. 미자는 딸들의 행복을 몹시 바라기 때문에 딸에게 일어난 불행을 아는 것조차 두려웠을 것이다. 또한, 그 마음엔 자신의 기대와 욕망이 투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커진 두려움은 누구보다 딸을 위로해주고 싶고 잘 되길 바라는 '진짜 마음'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감정에 매몰되거나 욕망을 투사할 때 적절하게 누군가를 위로해주지 못한다. 가까운 이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부적절한 감정들이 든다면 그 감정의 이유를 잘 성찰해봐야 한다. 그리고 감정 뒤의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를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미자가 두려움보다 '진짜 마음'에 좀 더 집중했더라면 삼달이 조금 더 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 함달의 고향 친구들은 삼달을 걱정하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라 우왕좌왕한다. 하지만, 진심은 전달되고 삼달은 이들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는다. |
ⓒ JTBC |
반면, 삼달의 고향 친구들은 삼달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삼달의 소식을 들은 후 안타까워면서 진심으로 삼달을 걱정하지만, 위로의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할 뿐이다.
삼달은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으면서도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친구들의 위로를 기다린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들끼리 자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삼달은 마침내 친구들과 마주하게 되고 술에 취해 이렇게 오열한다(3회).
"니들이 친구면 내가 망해 돌아온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뉴스에 난 것처럼 정말 나 때문에 사람이 죽으려고 했는지 그게 진짜면 내가 왜 그랬는지 그게 궁금해야 되는 거잖아. 해명할 필요 없는 사람들은 다 물어보는데 내가 해명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무도 안 물어주잖아."
삼달의 이 말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가까운 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삶의 위기에 놓였을 때 사람들은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 삼달처럼 '쪽팔려서' 먼저 다가가지는 못해도 내 편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법이다. 그래서 힘든 일을 겪는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다면, 그 마음에 나의 어떤 욕구가 투사되어 있는지를 점검한 후 진심을 전달하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4회 용필은 삼달의 위의 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매일 수십 개씩 쏟아지는 기사 보고도 왜 안 궁금하냐 그랬지. 아닌 거 아니까. 너 그런 짓 할 애 못 되는 거 아는데 그게 뭐 그렇게 궁금하냐."
용필의 이 말은 삼달을 믿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삼달을 믿는다면 삼달의 마음을 물어봐주는 게 더 현명한 태도 아니었을까. 사실 그리 긴 말도 필요 없다. 그저 "너 괜찮아?"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니 말이다. 다행히도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의 진심은 삼달에게 전달되고 삼달은 자신의 속마음을 친구들과 나눈다. 그러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 마을 사람들은 주변의 일들을 악의는 없지만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호기심을 자제하지 않고 표현한다. |
ⓒ JTBC |
반면, 말을 아끼고 무심한 척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이들도 있다. 바로 삼달의 가족과 친구들을 제외한 삼달리의 이웃들이다. 작은 시골 마을인 삼달리 이웃들은 악의는 없지만 주변 일에 관심이 참 많다. 삼달과 자매들이 제주에 온 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마을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이들은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삼달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은 마을 주민들의 주요한 대화 소재가 되어 버린다.
심지어 초등학교 2학년인 해달의 딸 하율(김도은)조차 이런 시선을 감지하고 불편해한다. 6회 동네 산책을 하고 돌아온 하율은 "한적하고 좋냐?"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싫어 이 동네. 할아버지 이 동네 사람들은 나만 보면 아이고 쯧쯧쯧 이래. 그래서 싫어."
아마도 아버지 없이 자라고 있는 하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말이겠지만, 이는 하율에게 상처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왜 마을 사람들은 악의가 없으면서도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되는 걸까? 나는 이들이 삼달을 돕기보다는 자신들의 호기심을 채우는 걸 우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사정을 궁금해하는 마음은 조심스럽게 표현되어야 한다. 궁금함이 상대방을 돕기 위한 것인지, 나의 호기심 때문인지를 잘 구분한 후, 상대방을 도우려는 마음이 더 클 때만 표현되어야 한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 중 누구도 자신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걸 바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마을 사람들의 이런 호기심은 삼달이 절친한 이들에게 조차 솔직해지는 걸 방해했을 것이다.
삶의 위기에 놓인 누군가를 대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자칫 위로하고자 하는 말을 건네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땐 일단 내가 왜 위로를 건네기 어려운지 성찰해보자. 상대방에게 어떤 기대와 욕망을 품고 있거나 두렵기 때문이라면, 그 감정 이면의 내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면 된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나 소중해 더 조심스러운 것이라면 용기 내어 먼저 다가가 보아도 된다. 그저 "괜찮아?"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전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는 거라면 그땐 표현을 자제하며 모른 척하는 게 돕는 태도일 것이다.
<웰컴투 삼달리>의 인물들은 이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지금 어떤 태도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대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 나를 비춰보자. 아마도 드라마를 보는 시간도 나를 둘러싼 관계도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첫 번째 시련' 이겨낸 안은진, 반전 거듭한 성장 캐릭터
- 블랙리스트 수준으로 되돌아간 영진위 새해 예산
- 비공개 거부, 무분별한 보도... 끝까지 이선균 몰아세운 70일
- 홍석천의 연애 취향? 이토록 소중한 TMI라니
- "역사에 가정 없다? '과몰입 인생사'로 나비 효과 보여줄 것"
- 배우자 13명, '고려판 여인천하' 나올 만한 현종시대
- '골때녀' 액셔니스타, 우승팀의 관록 보여준 4강 선착
- '서울의 봄' 천만, 2013년엔 이 대통령 영화가 있었다
- 낯선 여행지에서 이어진 인연, 어디까지 계속될까
- 외신 '이선균 사망' 긴급 타전... "수사 과정서 평판에 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