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함께 신촌 클럽에 가는 교사, 여기 있습니다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여행,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연극 등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자립과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기다리는 연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연말이 그리 즐겁지는 않다. 직장인에게 연말이란 미래에 대한 고민과 부담이 새삼스럽게 밀려오는 시기인 것 같다. 성과급이나 연봉인상 같은 보상이 있으면 더 즐거우려나? 잘 모르겠다, 겪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있는 곳, 대안학교에서 근무한다는 건 현재의 보람과 미래의 안정을 맞바꾸는 일이다. 인정되지 않은 경력과 올라가지 않는 연봉을 추에 달고, 작은 행복과 의미를 샅샅이 그러모아 무게를 잰다. 명확한 답을 표시하지 않는 저울을 두고, 한 해 두 해 지나온 것이 어느덧 열두 해가 됐다.
열두 해를 버티게 한 원동력
빡빡한 현실과 막막한 미래를 앞두고 열두 해를 버티게 한 힘을 고민해 본다. 답답한 연말에 기분전환이 되어주는 이벤트들이 있다. 우선은, 하나둘 전해지는 재학생들의 취업소식. 물론 취업이 끝은 아니고, 이후의 유지가 더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기뻐하고 설레는 아이들을 보면 그 순간만은 온전히 행복하다. 다사다난했던 대학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새로운 사회로 한 발 내딛는 것에 함께 감사하고 응원하게 된다.
또 하나는 취업자들과 갖는 송년모임이다. 우리 학교에는 취업지원센터가 있어 취업 이후의 보수교육이나 이직 등을 지원하고, 졸업생들이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신촌의 파티룸에서 진행한 취업자 송년회 |
ⓒ 권유정 |
취업자 송년회는 DJ가 있는 파티룸을 빌려 클럽처럼 운영을 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대학생이고, 성인이라는 것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고 또 성인으로서의 욕구가 있다. 사실 미성년자에게는 제한되는 것들은, 대개 그리 건강하고 건전하지 않다. 성인에게 허용함은 자유와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넘기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자유가 주는 달콤함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욕구를 갖게 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무작정 제한한다고 그 욕구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절능력이 약하고 온전히 책임을 지기 어려운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무한정 자유만 줄 수는 없으니 적절한 선에서 욕구를 채우고 절제하는 법 또한 가르쳐야 한다.
사실 십여 년 전에는 우리끼리 따로 MT를 가서 음주를 허용한 적도 있고, 졸업여행 때 나이트클럽을 가기도 했다. 물론 그래봐야 술은 맥주 한 캔으로 제한하고, 클럽은 대관을 해 이른 저녁에 갔다가 본격적인 오픈 전에 나온 것이지만, 비장애 성인들이 즐기는 문화를 자신들도 똑같이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아이들의 만족도가 몹시 높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분은 개개인의 욕구도 차이가 크고, 각 가정의 가치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라 매해마다 지속적으로 운영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대신 지금은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학생들만 모이는 연말 송년회를, 클럽 같은 분위기의 파티룸에서 진행하고 있다.
▲ 작은 공간이지만 아이들은 진짜 클럽 못지 않은 흥으로 채운다. |
ⓒ 권유정 |
연말의 신촌은 대학생들로 북적거린다. 금요일 저녁 파티룸을 예약하기가 쉽지 않지만 몇 년째 연을 이어온 이스케이프룸에서 12월의 하루를 빌릴 수 있었다.
이날 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서울 신촌으로 내달렸다. 서울의 교통체증을 뚫고 경기 청평에서 신촌까지 가는 데에만 두 시간이 걸렸다. 늦은 밤 신촌에서 다시 집까지 돌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 까마득하지만, 도착하기가 무섭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는 제자들을 보면 그런 걱정은 흐려진다.
하루 연차를 내거나 퇴근을 하고 곧바로 온 취업생들은 학교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르게 번듯한 사회인의 분위기를 풍긴다. 배경이 달라서 그런 걸까, 익숙한 얼굴인데도 어둑어둑한 신촌 한복판에 깔끔한 차림새로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게 영락없는 '직장인 포스'다. 어쩌면 힘든 직장생활을 잘 견뎌내 주는 것에 대해 교사인 내 눈에 대견함의 콩깍지가 씌여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이날, 저녁식사를 위해 모이는 대로 소그룹을 지어 식당으로 보냈다. 퇴근시각이 달라 아이들도 제각각 모여들었고, 70여 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하기에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파티룸으로 입장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미니바와 화려한 조명, 디제잉만으로 아이들은 벌써 흥이 차오르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가무를 참 좋아한다.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MT나 축제 등 교내 행사에서 장기자랑을 하려면 예선전을 거쳐야 한다. 출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모두 본선에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 지치지 않고 춤을 추는 댄싱머신들 |
ⓒ 권유정 |
땀 흘리면서도 두 시간째 흔드는 아이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송년회 내내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뛰고 흔든다. 간간이 캔맥주를 부딪히며 기분을 내는 녀석들도 있다. 기실 이런 파티룸들은 공간 대여료보다 주류판매로 내는 수익이 중요할 텐데, 70여 명이 와서 맥주 몇 캔만 마시며 내리 춤만 추는 우리는 사장님께 반가운 손님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송년회의 취지를 이해하고 매년 우리를 반겨주시는 신촌 이스케이프룸 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열기만큼은 강남 핫플레이스 못지않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원 없이 춤을 추고 헤어졌다. 한파가 무색하게 땀을 송골송골 흘리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저희들끼리 2차를 결성하기도 했다.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집에다 꼭 연락하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이제는 워낙 알아서들 잘하는 베테랑 취업자들이라 크게 염려가 되지는 않았다. 친구들 만나 신나게 놀고, 그렇게 충전된 힘으로 또 직장생활과 일상을 잘 살아내기를 응원할 뿐이다.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멀어지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한 마음 한편으로는, 저런 욕구들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학교에서 만들어주는 모임 외에는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고,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고, 원하는 여행지를 찾아가는 등 삶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선택지와 제한된 기회만이 주어진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은 아이들인데 말이다.
보다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풍부한 감정으로 삶을 채워가기를. 그래서 너희들의 세상이 눈부시게 찬란하진 않아도, 꺼지지 않고 반짝이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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