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주목한 약물 부작용, 한국은?

김성호 2023. 12. 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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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19] <사이드 이펙트>

[김성호 기자]

미국 사회가 약물로 들끓고 있다. 대도시 곳곳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지각을 잃고 이상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 급격히 퍼져나간 이상징후는 펜타닐을 중심으로 한 아편계 마약성 진통제 때문으로, 값이 싸고 쾌락창출 효과가 강력한 약물의 유통을 정부가 제어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 결과다.

단순한 중독을 넘어 사망과 신경계에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는 사례가 속출하며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에 완전히 패퇴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불법으로 제조된 마약이 아니라 제약사에 의해 개발되고 합성된 향정신성의약품의 남용이 더욱 치명적 결과를 야기했단 사실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거대한 실패 뒤에 거대 제약사와 FDA로 표방되는 미국 정부의 오류가 빼곡히 자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익 앞에 윤리를 저버린 거대 제약사의 만행은 <세기의 범죄> 같은 다큐멘터리와 여러 보도를 통해 사후적으로 알려졌다. FDA의 승인을 받아내기 위한 자료조작과 날조, 또 제약회사의 로비를 받은 의사들이 제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필요 이상으로 처방해온 사실 등이 미국 의료계가 얼마나 자본주의의 부정적 영향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영화 <사이드 이펙트> 포스터
ⓒ 오픈 로드 필름즈
 
폭증하는 약물 부작용, 할리우드가 주목했다

이같은 문제는 미국사회가 약물의 심각성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할리우드 또한 자극적 설정이 크지 않은 약물의 부작용 문제를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화하기 시작했다. 2013년 제작된 <사이드 이펙트>가 스티븐 소더버그 같은 명감독 연출 아래, 주드 로와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캐서린 제타-존스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의 출연으로 만들어진 것도 그 일환이라 하겠다.

영화는 제목에서 표방하듯, 약물 부작용을 전면으로 다룬다. 남편(채닝 테이텀 분)의 수감 이후 우울증을 앓던 여자 에밀리(루니 마라 분)가 약물에 의존하고, 그 부작용으로 예기치 않은 일을 저지르며 일어나는 사건을 그리는 것이다.

멋지고 부유한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여자 에밀리다. 그랬던 그녀가 삶의 정점이라 해도 좋을 순간 완전히 나락까지 떨어진다. 사업을 벌이던 남편이 사기죄로 검거되고 만 것이다.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닥을 친 에밀리는 그로부터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다. 때때로 다가오는 비관적 감정을 스스로 당해내지 못해 정신과에 나가 약을 처방받기에 이른 것이다.
 
 영화 <사이드 이펙트> 스틸컷
ⓒ 오픈 로드 필름즈
 
삶을 바꾼 약, 삶을 망친 약

남편이 형기를 모두 마치고 출소한 뒤 에밀리의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남편만 출소하면 모든 문제가 해소될 줄 알았건만 문제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화려한 미래를 약속하지만 여느 실패한 사업가들이 그렇듯 허황되기 그지없다. 성실히 일하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 큰일을 벌이기만 도모하는 그가 언제쯤 제가 잃어버린 삶을 가져다줄지, 에밀리는 전혀 확신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남편과 에밀리의 관계 또한 좋기만 하지 않다. 성생활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낭만적인 감상도 살아나지 않는다. 에밀리가 거듭 낙담하니 남편 또한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에밀리는 다시 정신과를 나가기 시작하고, 그렇게 의사 뱅크스(주드 로 분)와 만난다.

모든 건 약 때문에 달라진다. 에밀리는 기존에 먹던 항우울제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한다. 우울감은 해소된다 하더라도 충동적 행위부터 구토, 성욕감퇴 등 다양한 부작용을 겪는 탓이다. 우연히 주변에서 이같은 부작용이 없는 신약을 경험했다는 추천을 들은 에밀리가 그 말을 뱅크스에게 전하고, 뱅크스가 다시 이 신약을 처방하며 에밀리의 삶은 극적으로 개선된다.
 
 영화 <사이드 이펙트> 스틸컷
ⓒ 오픈 로드 필름즈
 
약 부작용이 심리스릴러로, 이 영화의 착상

우울감도 대폭 개선되고 남편을 향한 성욕 또한 돌아와서 에밀리의 일상이 나아진 것이다. 직장에서 겪는 여러 문제 또한 훨씬 나아져서 에밀리는 전혀 우울증 환자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신약을 먹고 난 뒤 잠이 들면 홀로 거실을 걷고 상을 차리는 등 몽유병 증세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약을 먹고 잠에 들었던 에밀리가 남편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소식이 뱅크스에게 들려온다.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에밀리의 증언으로부터 어쩌면 약의 부작용일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뱅크스를 사로잡는다.

영화는 제약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부도덕함부터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약의 효능에만 집착하는 환자들의 행태 등 다양한 문제를 건드린다. 한편으로 약과 그 부작용이란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를 극화시키기 위하여 흥미로운 설정들을 중첩시키기도 한다. 부도덕한 의사와 문제 많은 환자의 관계가 몇 차례나 뒤집어지며 관객은 한 편의 심리스릴러로 <사이드 이펙트>를 바라보게 된다.
 
 영화 <사이드 이펙트> 스틸컷
ⓒ 오픈 로드 필름즈
 
할리우드는 하는 걸 한국은 왜 못하나

영화가 인상적인 건 그저 두 시간의 자극적 재미만이 아니다. 옥시콘틴이나 펜타닐 등 마약성 진통제가 제 앞에 떨어지는 이득 앞에 윤리를 내려두는 의사들에 의해 널리 퍼져나갔듯, 의료계에 만연한 로비며 청탁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를 알도록 한다. 대응은 사후적으로, 또 개인의 일탈로만 다뤄질 뿐이다. 그로부터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약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영화까지 미쳤다는 점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그저 마약과의 전쟁 정도에 그쳤던 약물이 옥시콘틴과 펜타닐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뒤 영화 안으로 들어와 <사이드 이펙트>를 비롯한 여러 영화의 제작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2012년 작 <리미트리스>, 2014년 작 <루시>도 모두 그 영향권 안에 있는 작품으로, 할리우드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약물의 위험성을 비로소 극화시켜 다루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할리우드는 현실 사회문제를 기민하게 영화로 제작해나간다. 반면 한국의 사회문제는 영화와 동떨어져 존재할 때가 훨씬 더 많으니 영화가 한국의 주류문화로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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