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북카페, 내향적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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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기자]
처음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올 때 마음 한 쪽 주머니에 두려움이라는 꽤 무거운 소품을 달고 있었다. 성가셔서 떨어뜨리려고, 떼내어 버리려고 애썼다. 그런데 얼마나 질긴지, 흡착력이 강력 본드만큼이나 강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결국 얼마 동안은 그냥 그렇게 달고 살기로 마음먹고는 체념하기로 했다. 때론 걸리적거리는 그 애물단지를 봐도 못 본 척 그저 눈 감아보기도 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낯선 곳, 그것도 산을 여러 개 넘어 고개를 돌아 들어오는 시골은 해외에 나가는 것만큼이나 용기와 패기가 필요했다. 그저 고요한 자연 속에서 나무와 들판의 야생화를 벗삼고, 하늘과 더 친해지며, 새들의 동무가 되기로 결심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이곳에 들어온 지 만 3년 3개월이 되었고, 북카페 문을 연지도 1년 6개월이다(관련 기사: 시골서 북카페 연 지 1년 반, 젊은 날 꿈을 이뤘습니다).
두려움 넘어서니 보이는 산과 노을, 사람들
어느 날, 주변을 돌아보니 내 곁에는 나무와 산과 하늘과 노을뿐만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닌가? 나를 귀찮게 하며 불편하게 했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상처 입은 손가락 위를 감싸고 있던 딱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떨어져 나가고는 뽀얀 새살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처럼. 두려움은 그렇게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홀연히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버린 것이다. 작별도 구하지 않은 채.
지금 현재 내게 아무런 걱정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가 예상하는 것처럼, 북카페를 운영하는 일은 수익을 내기에는 힘든 일이 아니던가? 그것도 시골 산자락 아래에 있는 외진 북카페를 끌고 나가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지난 주말에는 백암 시내에서 만났던 한 카페 사장님으로부터 이쪽 인근 지역 카페가 최근에 세 군데나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 싱그런 날의 북카페 마당 |
ⓒ 정은경 |
희망을 만들고 싶다. 북카페를 꿈꾸고, 동네 작은 책방을 꿈꾸는 이들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심어주며, 그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 우리 시골 작은 북카페를 사랑으로 돌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곳엔 너무나 많은 축복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북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내게 큰 축복이다. 이런 저런 일들로 몸이 너무 지칠 때면 때론 오늘은 손님이 안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손님이 오시면 그 모든 피로는 어느새 등 뒤로 금세 숨어버린곤 했다. 마음은 뛰고, 손끝은 바빠지며, 발가락이 즐거워했다.
종종 조용한 북카페를 지키며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다 이내 문밖으로 나가 홀로 분주하게 정원을 돌보거나 풀을 뽑는 시간도, 강아지들과 잠시 한가하게 놀아주던 그 시간까지도 기쁨과 힐링을 주었다. 비록 육체가 피곤하다고, 허리가 고통스럽다고, 다리가 찌릿찌릿, 손목이 욱신욱신, 피부는 햇볕에 그을리며, 얇고 가늘던 손가락 마디는 어느덧 퉁퉁하게 부어 모양을 더해가고 있지만 말이다.
만남은 언제나 감사하다. 언제나 좋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정원의 꽃들과의 만남까지도 그렇다. 하물며 먼 시골 북카페까지 찾아와주시는 손님들과의 만남을 풀꽃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텃밭서 막 따온 방울토마토 맛보는 손님의 표정
나는 워낙 낯가림도 있고, 쑥스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다. 원래 그렇다고 뒤로 물러설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또 언제 뵐지 모를 이름 모를 손님들을 만나는 일에 용기와 사랑과 정성을 쏟는 것은 당연할 일 아니겠는가? 얼마나 감사한 분들인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물론 한 번 다녀가시고 안 오시는 분들도 당연히 있다. 반면에 멀리 지방을 다녀오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네비를 고쳐 북카페 '꿈꾸는 정원'을 향해 운전대를 돌리셨다는 손님들도 있다. 미소와 작은 흥분에 쌓인 부드러운 목소리의 따스한 톤은 내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은퇴하신 노 교수님 내외분이 조용히 앉아 책을 보시며 담소를 나누시고 가시는 게 너무 아름답고 좋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 말을 시켜버리고 방해꾼이 되어버린 정원지기가 바로 나다.
텃밭에서 막 따온 방울토마토를 작은 접시에 담아 대접하고, 비록 작고 신 노지 딸기지만 깨끗이 씻어드렸을 때 맛보던 손님들의 화사한 표정과 입가를 잊지 못한다. 주렁주렁 열린 가지가 신선하게 매달려 있도록 두었다가 그 가지를 좋아하는 주인이 오실 때면 커다란 보랏빛 가지 끝에 달린 가시를 조심조심 잘라내어 따 드리면, 봉투에 담아 가방 속에 쏙 담아 가시면서 우리 북카페 커피를 맛있다고 칭찬해 주시는 그분의 미소가 내게 에너지를 더했다.
두 번 세 번,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북카페 마스코트 꽃순이(강아지)를 만나기 위해 찾아와 주신 그 사랑스러운 가족이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한바탕 꽃순이와 공놀이를 하더니 아이의 아버지가 우리 꽃순이에게 '강아지 야구선수'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시고, 들러주시는 가족 손님은 마치 가족처럼 느껴진다.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고, 잔디밭에서 달음박질을 하고, 때론 비눗방울을 날리다가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그 아이들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그 작은 만남들에 감사한다.
삶을 풍성케하는 만남
북카페에서 진행하는 북토크와 작가 만남, 심리학 특강, 독서모임, 미니 특강에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은 또 얼마나 귀한지. 북카페를 하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만날 수 없었던 그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만날수록 배울 수밖에 없는 좋은 작가님들, 멀리 홍성에서 오시는 예술가와 서예가, 수원과 분당에서 오시는 강사님과 은퇴하신 유명 기업 대표님까지. 북카페 지기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뵐 수 있었겠는가? 멀리 인천에서 독서모임을 위해 달려와주는 젊은 청년, 내 곁의 아리따운 부산 아가씨도. 부산 아지매도. 모두가 귀하다. 그러고 보니 권인숙 국회의원도 오시지 않았던가?
왠지 '꿈정'(주위 몇몇은 우리 '북카페 꿈꾸는 정원'을 애칭으로 '꿈정'이라 부른다.)에 자꾸 마음이 간다는 내 이웃들. 동네에 북카페가 들어와서 너무 좋다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30여 년을 이곳에서 살았더니 이렇게 복을 받는다고 기뻐하는 우리 부녀회장님. 종종 우리를 위한 맛난 먹거리뿐만 아니라 강아지들 간식거리까지 챙겨서 들고 와 우리 모두를 황홀하게 만들어주는 나의 따뜻한 친구. 모두 감사의 대상들이다.
사실 긴장되고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러운 것은 나뿐 아니라 북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구나 처음보는 낯선 이들을 대할 때는 어색하기 마련일 테다. 나또한 그렇지만, 첫만남을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용기 내어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한다. 카페지기가 미소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너면 서로가 약간의 아이스브레킹을 할 수 있으니, 사실 이건 내 몫이겠다.
낯가림도 있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기도 하지만, 내가 북카페지기로 북카페를 지키고 버텨나갈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남은 삶을 풍성케 한다. 두려움을 몰아내고, 마음을 채운다. 허기진 배가 푸근한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북카페가 이러다가 시들어버리면 어떡하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과 마주할 때도 있지만, 이곳을 사랑해 주는 분들이 계시니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 아닐까?
오늘도, 내일도 나는 싱그러운 노래가 흐르는 북카페에 앉아 그런 축복의 만남을 사모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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