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집만 봤을 뿐인데... 이 남자의 특별한 능력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장순심 기자]
인간에게 집은 생존과 안정의 공간이다. 음식과 수면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연대와 교류를 통해 사회적 관계의 기초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스스로의 정체성도 찾을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외부 세계로부터의 안전과 타인과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며 가족으로서의 소속감과 더불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공간이다.
때문에 우리는 집을 고를 때 신중해진다.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것만큼 집도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야 한다는 말을, 30년 전 내가 집을 구하러 다니던 그때 처음 들었다. 그리고 이내 긍정했다. 운명이 현실을 만든 것인지 말이 운명을 이끈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집과 운명적으로 만났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
▲ 책표지 책은 집 보는 남자 테오를 통해서 ‘집’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
ⓒ 장순심 |
태오는 차고를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서 자신의 자아를 닮은 완벽한 공간으로 꾸민다. 어느 날, 자신만의 아지트였던 차고에 직장을 그만둔 동생 고희가 들어온다. 테오는 불청객 고희를 내보내기 위해 동생을 대신해서 살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고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집 안의 모습과 여러 생활의 흔적만 보고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까지 읽어 낼 수 있는 태오의 특별한 능력이 발현된다.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또한 본성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먼지처럼 쌓인다. 과도하게 예민한 태오의 감각은 집 안의 모든 데이터를 종합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읽는다. 집이 주는 수많은 자극과 정보는 차고 안이 인생의 전부였던 태오를 바깥 세상으로 안내한다.
<집 보는 남자>는 어느 평범한 동네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연쇄 죽음을 파헤쳐 나가는 일종의 추리물이다. 그렇지만 책은 집 보는 남자 테오를 통해서 '집'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저마다의 집'은 어떤 의미일까. 그 집에 사는 '나'는 안녕한가.
소설에서는 다양한 집의 형태와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40대 상철의 옥탑방. 집주인이 쫄딱 망해서 경매로 넘어가는 집의 창고로 쓰던 지하방. 집주인들이 과연 이 집을 정말로 세놓고 싶어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구조가 특이하고 이상한 집, 문을 닫으면 암실이 되는 창문이 없는 방과 4명이 살지만 한 명의 흔적밖에 드러나지 않는 집 등. 월세는 싸고, 싼 월세만큼 결정적인 단점을 가진 집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누군가는 집이 자신을 표현하는 세계고 그곳에 배치된 가구와 소품, 향기까지 사는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완벽한 인테리어에 고습스러운 취향을 드러내는 집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소설 속 태오의 눈에 들어온 집들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는 한 몸 뉘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공간이며 누구에게는 위험에 노출된 공간이고, 학대받는 공간이며 외로운 사람들의 공간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2023 통계로 보는 1인 가구'(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4.5%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중 29세 이하 1인가구가 19.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30대까지 넓히면 40%를 차지할 정도로 청년들의 1인가구 비율은 압도적이다. 반면 1인가구 소유율은 70대 이상이 48.8%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는 1인 가구의 대부분이 가난한 청년이거나 외로운 노년이라는 말이 된다.
1인 가구 중심의 가족구조 변화는 사회적 고립과 단절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한다. 복지부의 2023년 '고독사 위험군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히 20대의 고독사 자살 사망 비율은 56.6%, 30대는 40.2%이고, 중·장년도 58.6%로 나타나 이들에 대한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모두가 같은 열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압박과 스트레스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향한다. 태오에게 그러한 스트레스는 스스로 고립하게 만들었다. 부동산 업체 대표 임서라에게 스트레스는 타인에 대한 살인으로 나타난다. 서라에게 가난한 인간은 유희의 도구일 뿐이므로.
집이란 인간에게 가장 오래되고 당연한 욕망이라고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말한다. 욕망은 탐욕이 되고 쟁취하고 싶은 도구가 되며 집착하게 만든다. 지난 우리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일생의 과업이며 욕망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세대에게도 집은 여전히 욕망일까?
이제라도 집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독립 영화 <소공녀>(Microhabitat)의 미소(이솜)처럼은 아닐지라도 집은 더 이상 당연한 욕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4년 차 가사도우미인 미소의 하루 일당은 4만 5천 원. 쌀은 늘 부족하지만 담배와 위스키는 포기할 수 없다. 담배값의 상승과 월세의 인상은 지출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미소는 과감히 집을 포기한다. 미소는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영화는 한때 뜨겁고 행복했던 시절을 보낸 미소와 친구들을 보여준다. 친구들은 집은 있지만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집이 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친구들, 집은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있는 미소. 집이 없는 미소는 친구들에게 위로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위로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추억 여행은 정리된다.
식물들 중에는 시련을 좀 당해야 더 잘 크는 놈들이 있다고. 벌레도 없고 비바람도 없는 곳에선 꼼짝도 안 하던 녀석이 폭탄이 터지고 비바람까지 다 맞고 나니까 이렇게 쑥쑥 자라고 있잖아요.
토마토를 보며 마치 태오를 표현하는 것 같은 고희의 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멋진 집이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집을 정의하고 삶을 정의한다.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현재의 삶은 바뀔 수 있다. 이제 어디에 사는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지 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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