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택시 사납금제 전제로 한 미납금 공제 약정은 무효"

최석진 2023. 12. 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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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택시 사납금 제도를 전제로 1일 최저 운송수입금 미달액을 임금에서 공제하도록 한 약정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납금제는 택시기사가 벌어들이는 수입 중 하루 일정 기준의 액수를 회사에 내고 나머지 초과분을 가져가는 제도다. 요금 수익이 사납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택시기사가 거꾸로 모자란 만큼 채워 넣어야 하는데, 택시기사들의 생계 유지를 위한 최저 생계비도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관련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택시회사 대표 정모씨의 상고심에서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 중 일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퇴직급여법위반죄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지급기일 연장의 합의도 없이 4명의 택시기사에게 합계 760여만원의 퇴직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퇴직급여법은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사용자가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정씨는 재판에서 자신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먼저 A씨, B씨, C씨 등 3명에게 제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이들이 미처 채워 넣지 못한 사납금 미수액과 상계 처리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택시기사들과 체결한 단체협약서나 취업규칙에 '가불금, 벌과금, 운송미수금 등을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D씨의 경우 한달 안에 3번 이상 무단결근을 해 취업규칙에 따라 근로관계가 자동으로 종료됐고, 근로기간이 1년이 안 되기 때문에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은 정씨의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13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근로기준법에서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사용자가 상계할 수 없고, 퇴직금 역시 임금의 성질을 갖고 있어 상계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피고인 주장과 같은 미납금 채권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위 근로자들과 상계에 대한 합의가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 채권으로 이들에 대한 퇴직금채권과 상계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또 D씨의 경우 본인이 무단결근을 한 사실을 다투고 있는 데다가 정씨가 근로계약이 자동 종료됐다는 근거로 든 취업규칙 조항의 개정에 기사들의 집단적 동의가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정씨의 주장을 배척했다.

반면 2심은 정씨의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정씨가 퇴직급을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지급하지 않았다는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운영하고 있는 법인택시의 경우, 이른바 '사납금제'를 운영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회사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서 사납금 미수금을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 입장에서는 이미 발생한 운송미수금 등을 퇴직금에서도 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을 개연성이 상당히 크다"고 판단했다.

D씨의 경우 애초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은 정씨의 미지급 퇴직금을 약 700만원으로 계산했는데, 이후 검사의 재수사지휘를 거쳐 주 15시간 미만인 기간이 퇴직금 산정에서 빠지며 미지급 퇴직금이 8만5180원으로 변경됐다.

재판부는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구체적인 퇴직금 산정에 있어 일부 오류가 발생했고, 이러한 계산 오류에 대해 피고인에게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다시 결론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사납금제 자체가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전제로 한 공제 약정 역시 무효라고 봤다. 그리고 사법상 효력이 없는 무효인 약정을 이유로 정씨의 퇴직금 미지급에 대한 고의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정한 금액을 운송사업자에게 입금하고 이를 초과하는 초과운송수입금은 운수종사자 자신의 수입으로 하는 이른바 사납금제는 운송수입금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운수종사자들의 임금액의 변동이 심하고, 고정급이 크지 않기 때문에 운송수입금이 적은 때에는 운수종사자가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정도의 임금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이에 1997년 여객자동차법이 개정돼 이른바 전액관리제를 규정했으나 이를 우회해 사실상 사납금제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 후 2019년 여객자동차법이 개정됨에 따라 '운송사업자는 일정 금액의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정하여 수납하지 말고 운수종사자는 이를 납부하지 말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조항이 신설돼 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와 같이 일정 금액의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정해 수수하는 행위가 금지됨을 명확히 해 사납금제의 병폐를 시정하겠다는 신설 경위와 취지 등에 비춰 보면, 위 규정은 강행법규로 봄이 타당하므로 설령 이에 반하는 내용으로 사용자와 노동조합과 사이에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합의는 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씨가 운영하는 회사의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에 '운송미수금을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앞서 본 법리에 비춰 보면, 이는 강행규정인 여객자동차법에 반해 무효"라며 "결국 사용자인 피고인은 위와 같이 사법상 효력이 없는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을 내세워 퇴직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편 대법원은 무단결근으로 근로계약이 자동 종료됐는지가 다퉈졌던 D씨에 대한 정씨의 혐의도 유죄 취지로 2심 판결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월 3일 이상 무단결근을 당연퇴직사유로 취업규칙에 규정하고 그 절차를 통상의 해고나 징계해고와는 달리 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용자 측에서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면 성질상 이는 해고로서 근로기준법에 의한 제한을 받는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당연퇴직 사유가 동일하게 징계사유로도 규정돼 있는 경우에는 당연퇴직 처분을 하면서 일반의 징계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씨 회사는 취업규칙과는 별도로 월 3일 이상 무단결근을 징계해고 대상으로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징계 절차를 거쳤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없어 정씨가 근로관계가 자동으로 종료됐다고 생각하고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정당한 이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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