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붕괴 이미 시작"…내년 응급의학과 전공의 턱없이 모자라
"위급 상황 많아 과실 위험 높아, 지원 더 줄 듯"
응급의학과 내년 상반기 레지던트(전공의) 확보율이 모든 모집과목 중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지원율이 매년 급락하면서 기존 압도적 기피 과목인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에 이어 밑에서 3위를 기록했다. 의료계는 불가항력적 응급의료 사고에 대해 의료진에 법적 책임을 묻는 판결이 이어진 탓으로 분석한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144개 대학병원에서 2024년도 상반기 전공의 1년 차를 모집한 결과, 2792명을 선발했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응급의학과는 모집정원 193명 중 148명 선발로 확보율은 76.7%에 그쳤다. 세부적으론 수도권의 경우 모집정원 112명에 88명(78.5%)이, 비수도권의 경우 81명 중 60명(74%)이 선발됐다. 응급의학과보다 확보율이 떨어지는 과는 소아청소년과(26.2%)와 산부인과(63.4%)뿐이다.
응급의학과의 전공의 선발 인원이 모집 정원보다 적은 것은 이미 결정된 수순이었다. 전공의 지원자 수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이번 모집에서 응급의학과 지원자는 152명에 그쳤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상반기 기준 2022년 86%였던 지원율은 2023년 85.2%로, 2024년은 79%로 급락했다.
응급의학과는 분초를 다투는 치료 과정에서 생긴 사고에 대해 응급의료진을 형사처벌하는 판결이 이어지며 기피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4일 업무상과실치상 및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씨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 차였던 2014년 9월11일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가 대동맥박리 증상을 보이는데도 단순한 급성 위염으로 판단해 퇴원시켜 뇌병변장애를 앓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응급실에서 환자가 심정지로 응급처치를 받은 후 뇌 손상을 입은 사건에 의료진과 병원의 책임이 인정되기도 했다. 인천지방법원 민사 14부(김지후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응급환자 A씨측이 인천의 한 대학병원 학교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A씨는 2019년 4월 호흡 이상 등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의료진은 A씨의 호흡수가 정상이 아닌 데다 의식마저 잃어가자 마취 후 기관삽관을 했다. 이후 인공호흡기까지 부착했으나 A씨는 곧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심폐소생술로 심장 박동은 살아났으나 A씨는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응급의학과 의사를 포함해 국내에서 의료과실로 재판에 넘겨지는 의사는 하루 평균 2명을 넘는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공개한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18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는 6095명으로 연평균 762명이다.
의료계는 의료행위의 특성을 무시한 판결이 계속 이어진다면 응급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지난 27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응급환자가 숨지면 이유 불문 막대한 비용을 청구 당하고 형사 책임까지 져야 하는 나라에서 누가 응급의학을 맡으려 하겠나"라며 “우리나라 응급실 붕괴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모집 전망은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지난달 일반 형사 법규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의료인에 대해서도 면허가 취소되는 '의료인 면허취소법'이 시행되는 등 의료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은 계속 무거워지고 있다"며 "의료 과실의 위험이 높은 응급의학과에 가장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남궁인 이화여대 응급의학과 교수도 "통상 하루에 환자를 100~150명 보고 있다. 응급의학과의 경우 진단을 직접 밝혀내야 하고 위급한 상황이 많아 의료 과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며 "응급실 근무는 삶의 질도 나쁜데 소송이 걸리고, 국가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응급의학과로 안 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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