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워크아웃…증권사 유동성 위기로 번지나
보증 이행 위한 자금 조달 난항 불가피
중견 건설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발 위기가 증권사들의 부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사태로 부동산발 PF 위기에 대한 공포심리가 시장에 퍼지면 증권사들이 단기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특히 대형 증권사보다 자금조달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증권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2020년 말 92조5000억원에서 올 9월 말 134조3000억원으로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 45.2%(41조8000억원) 급증했다. 이 중 증권사의 부동산 PF 채무보증 규모는 9월 말 21조7000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16%가량을 차지했다. 증권사들은 통상 직접 대출보다 채무보증 형태로 PF 자금을 지원해왔다. 부동산 사업이 지연·무산돼 시행사가 PF 대출을 갚지 못하면 보증 증권사가 대신 돈을 변제해야 한다.
대출 규모는 은행권, 여신권보다 작지만 눈여겨봐야 할 점은 연체율이다. 상호금융, 저축은행은 1일 이상 원금 연체 또는 한 달 이상 이자 연체를 기준으로 연체율을 산정하는데 증권사 연체율은 작년 10.4%에서 9월 말 13.9%까지 뛰었다. 금융권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돈을 빌려 가고도 원금이나 이자를 갚지 못해 연체한 사례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말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면서 현장이 엎어지거나, 분양이 지연되는 사업장이 늘면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시행사·건설사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태영건설발 위기가 증권사로 당장 전이될 가능성은 작지만 부동산 PF 위기가 재점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악화한 투자심리로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A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태영건설 이후 부동산발 PF 부실에 대한 불안심리가 시장에 퍼지면 악화한 투심을 고려해 기업어음(CP)을 발행할 때 금리를 높이 책정할 수밖에 없다"며 "이러면 발행이 아예 안 되거나 유통이 잘 안 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증권사보다는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증권사일수록 PF 리스크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중소형 증권사들이 이자 수익을 목적으로 사업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에 대출 보증을 서준 경우가 많아서다.
또 주택경기 침체기 때 상대적으로 집값·분양 실적이 양호한 수도권보다 지방, 선순위보다 후순위에 보증 비중이 높은 점도 우려할만한 대목이다. 실제 고정이하비율(보증 중 주채무자 연체 등 채무불이행이 난 규모)은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9월 말 기준 2.5%로 1년 전(0.5%) 대비 크게 급등했다. 채무보증이 현실화해 증권사가 직접 갚아줘야 할 위험이 높은 중·후순위 PF 보증 비중도 중소형사가 74.1%에 달했다.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회사의 중·후순위 비중이 29.3%인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B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태영건설 사태가 당장 재무 이슈로 비화할 가능성은 적으나 부동산 PF 시장이 경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PF 연체율과 대출금리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어 채무보증 잔액이 큰 증권사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PF 대출 회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이는 데다가 금리 인상 기조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PF 대출금리는 2020년 말 연 4.8%에서 작년 말 연 6.9%, 올 6월 말 연 7.1%로 올랐다.
한편 금융당국은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금융권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태영건설 관련 금융사의 총 익스포저(위험 노출 금액)는 4조5800억원으로 총자산의 0.09%에 불과해서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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