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 낳고선 "남편이 강간해 결혼"…이런 무고죄 38% 증가 [가짜가 뒤흔드는 대한민국]
20대 여성 A씨는 2020년 6월 20대 남성 B씨와 사귀기 시작했다가 임신 사실을 알고 같은 해 11월 혼인신고를 하며 부부가 됐다. 얼마 뒤 태어난 아기의 혈액형은 A씨와 B씨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출산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안 B씨가 2021년 6월 혼인취소 소송을 제기하자 A씨는 같은 해 8월 경찰에 “결혼 전 B씨한테 강간을 당하고 혼인신고 후 ‘배 속에 있는 태아를 없애고 다시 임신하자’는 말을 들으면서 재차 강간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김유미 부장판사는 지난 11월 8일 A씨의 주장을 거짓말로 판단하면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법원서 거짓말하는 위증도 심각…검찰 올 상반기 인지 49% 증가
상대방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거짓말로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무고(誣告)는 수사와 재판 과정을 방해해 정의(正義)의 공백을 초래하는 걸 넘어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꿔 정의 자체를 뒤집는 중대범죄다. 이런 무고 범죄가 최근 급증한 것은 ‘거짓말 범죄’가 진실을 호도하는 대한민국의 단면이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연간 무고범죄 발생 건수는 2016년 3617건에서 2019년 4159건, 지난해 4976건으로 늘었다. 7년 새 38% 불어난 것이다. 한 경찰 간부는 “2021년(4133건)에 2020년(4685건) 대비 12%가량 감소했던 건 그해 초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시행착오를 겪었던 탓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선서한 후 거짓말을 하는 범죄인 위증(僞證) 범죄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찰 통계에서 매년 위증 범죄는 1500건 안팎씩 발생하고, 지난해(1395건)엔 전년(1290건) 대비 8% 증가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올해 상반기 직접수사에 나서 위증죄로 입건한 비율은 전년동기 대비 49% 늘었다. 한 검찰 간부는 “위증 사건 대부분은 형사재판 과정에서 현장에 있던 검사가 직접 인지하면서 수사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민사사건을 다루는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 사이에 ‘증인의 증언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인식이 뚜렷해, 서류증거 같은 물증 위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지 오래”라고 말했다.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이 자신과 친한 피의자의 처벌을 막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례도 만연하다. 지난 22일 대전지법 형사합의 12부(재판장 나상훈)는 여신도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준강간 등)로 구속기소된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정명석(78) 총재에게 징역 23년 등을 선고하면서 “참고인들에게 의도적으로 허위 진술을 지시하며 사법절차를 방해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앞서 정 총재 측근들이 검찰에서 “성범죄는 없었고 있을 수도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기 때문이다. 또 정 총재는 수사 과정에서 반성은커녕 피해자인 고소인들을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는데, 이를 두고 1심 재판부는 정 총재 본인의 무고죄로 판단하기도 했다.
법조계 “솜방망이 탓…사법방해죄 도입 등 처벌 강화해야”
거짓말 범죄 확산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법조계에선 사법방해죄 도입 등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가 많다. 이 전 지검장은 수년 전 세계적인 반부패 수사조직으로 평가되는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PIB)의 한 간부를 만났을 때 “우리 반부패 성과의 비결은 사법방해죄”라는 말을 들었다.
국회에도 사법방해죄 신설 법안(형법 개정안,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타인에게 형사 처분을 받게 하거나 면하게 할 목적으로 수사·재판 중인 사건과 관련해 허위진술을 하거나 허위진술 증거를 제출하는 등 사법방해 행위를 하면 징역 5년 이하 혹은 벌금 1500만원 이하에 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법안을 두고 법무부는 27일 “실체진실 발견을 통한 형사처벌의 공백 방지, 사법방해죄 입법 규정을 마련하라는 국제연합 부패방지협약 규정을 존중한다는 점 등에서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해외 주요 국가는 이미 사법방해죄 등을 도입한 상태다. 미국은 참고인의 허위진술뿐만 아니라 피의자가 자기 사건을 부인하는 것도 처벌 대상으로 한다. 2008년 2월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케이시 애서니는 증거부족으로 무죄 평결을 받았지만, 수사기관에서 허위 진술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4년형을 받은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프랑스는 중죄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사기관 등에 통보(신고)하지 않는 경우까지 처벌한다. 이 밖에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도 사법방해죄나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한 고위 검사는 “거짓말 범죄가 극성인 건 처벌 강도가 선진국들과 비교해 심하게 약하기 때문”이라며 “기존의 무고·위증죄 등의 처벌 규정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고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위증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로 상한이 더 낮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의 온정주의적 판결의 개선을 요구했다. 이 교수는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등 엄벌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시스템에 거짓말을 하는 범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사기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거짓말을 이용한 사기 범죄도 심각하다”며 “솜방망이 처벌 규정과 온정주의 판결을 바꿔야만 만연한 거짓말 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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