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화양초, 주차장 신세로…골칫거리 폐교 358곳
지난 2월 폐교한 서울 광진구 화양초등학교. 21일 찾은 이 학교의 텅 빈 운동장을 긴 펜스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펜스 한 쪽은 임시 주차장이 됐고, 다른 쪽은 예전에 쓰던 운동장 트랙이 그대로 남았다.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던 화양초는 이달부터 주민 주차장으로 개방되고 있다. 남은 공간은 주민들이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쓴다는 계획이었지만, 버려진 공간을 찾는 것은 동네의 개들이었다. 이날 밤 화양초 운동장에는 주민 서너명이 개를 풀어놓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얼마 전 근처 강아지 놀이터가 문을 닫아 갈 곳이 없었는데, 이곳 운동장으로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저출산으로 대도시에서도 폐교가 이어지면서 남겨진 학교 부지가 새로운 골칫거리가 됐다. 교육부의 ‘전국 시·도교육청 폐교재산 현황’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에서 미활용 중인 폐교는 358곳에 이른다. 전체 폐교 3922곳 중 이미 매각한 곳을 제외하고 각 교육청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1335곳인데, 이중 26.8%가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방치된 셈이다. 미활용 폐교의 가치(공시지가 기준 대장가액)는 총 3681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시·구·교육청, 1년째 논의 중
이런데도 활용 방안이 표류하는 이유는 관계 기관들 사이의 힘겨루기 때문이다. 당초 서울시교육청은 화양초 부지에 평생학습시설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광진구청은 인근에 청년 인구가 많다며 청년 복지시설을 요구했고, 서울시는 청소년 숙박시설인 유스호스텔을 세우는 안을 들고 나섰다. 세 기관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폐교에서 범죄나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서로 이용하고자 하는 기관이 많아 조율이 어렵고, 예산 문제도 있다”며 “구에서 관제센터를 설치하고 순찰을 하는 등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고 올려도 안 찾는다…. 소송전도
폐교 부지 활용은 각 시도교육청의 몫이다. 교육청에선 폐교가 발생하면 자체 활용을 먼저 검토하고, 마땅한 활용 방안이 없으면 지자체나 민간에 매각·대부하게 된다. 어렵게 매수·대부자를 찾아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일도 부지기수다. 또 다른 지역교육청 관계자는 “지역에서는 학교가 중심지다 보니 주민들이 민간 활용을 꺼린다”며 “캠핑장 등이 들어선다고 하면 시끄러워지는 게 싫다며 반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방치된 폐교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갈등도 이어진다. 일부 대부자들이 계약 기간이 끝나고도 퇴거하지 않거나, 계약금을 내지 않고 무단 점유해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재 무단 점유로 갈등을 겪고 있는 폐교가 경기, 전남, 경북, 경남 등에서 20곳이 넘는다.
“교육청에만 맡기지 말고 다 같이 고민해야”
최근 시도교육청은 폐교 활용을 위해 지자체와 손을 잡는 추세다. 경북교육청은 지난 10월 폐교 활용 방안에 대한 주민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선정된 곳엔 교육청이 부지를 제공하고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주민들은 공공 활용을 원하는데, 교육청에선 교육 목적 이외의 활용은 어렵다. 지자체에선 보다 폭넓게 활용할 수 있어 지자체에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강정규 동의대 재무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용도가 제한되면 큰 업체들은 폐교 활용에 참여하기 어렵고, 소규모 업체만 참여하게 된다. 폐교가 도심의 흉물로 남지 않으려면 공공성과 상업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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