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인생은 향기로운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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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이면 엄마는 술을 담갔다.
엄마는 국자로 술을 떠서 간을 본 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곤 했다.
엄마의 솜씨가 괜찮았는지, 가끔 이웃도 찾아와 술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갔다.
오랜 기다림과 정성 끝에 얻은 술처럼, 엄마가 남겨준 향기로운 기억을 받아 한 모금 머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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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이면 엄마는 술을 담갔다. 명절에 쓸 요량으로 가족과 친척끼리 먹을 만큼만 만들었다. 술독에 누룩을 넣고, 그 가운데 용수를 박아 두었던 기억이 난다. ‘용수’는 술을 거르는 데 쓰는 물건인데 대오리로 만든 통발처럼 생겼다. 누룩이 발효되면서 찌꺼기는 걸러지고 연한 미색의 술이 용수 안으로 고여들었다. 엄마는 국자로 술을 떠서 간을 본 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곤 했다. 엄마의 솜씨가 괜찮았는지, 가끔 이웃도 찾아와 술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갔다.
두툼한 밍크 이불을 두르고 아랫방에서 술이 익어갔다. 설날에 친척들은 그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윷놀이했다. 감칠맛이 좋아 홀짝이다 보면 어느결에 취해버렸다. 일어서려고 하면 거꾸러질 듯 눈앞이 핑 돌았다. 하지만 세 판 정도 윷을 던지고 나면 얼음물에 세수한 듯 깔끔하게 취기가 가시는 신기한 술이었다. 나중에야 자료를 찾아보고 알게 되었는데, 그 술의 정식 명칭은 누룩을 적게 사용한다고 해서 ‘소곡주(小麯酒)’ 혹은 ‘소국주(小麴酒)’라 부른다고 한다.
글을 쓰는 과정도 술이 익어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누룩 찌꺼기가 걸러지고 용수에 맑은 술이 고이듯이, 글쓴이라면 누구나 정신의 가장 순도 높은 문장을 고이게 하고 싶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넘치게 채우는 편이 아니라 조금 모자란 듯 언어를 덜어내는 것.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풍성한 여백을 채울 수 있도록 비워둘 것. 최소한의 재료로 담그는 술처럼 간결한 언어로 향기로운 술을 빚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흰 벽에 엄마의 그림자가 국자처럼 길게 늘어지던 밤. 이따금 탄산수를 부은 듯, 누룩 터지는 소리가 들리던 조용한 겨울. 나의 기억은 웃풍이 센 아랫방에서 그림자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기다림과 정성 끝에 얻은 술처럼, 엄마가 남겨준 향기로운 기억을 받아 한 모금 머금어 본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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