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새해에는 너그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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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배우가 자기 목숨을 끊었다.
범죄 혐의가 뚜렷이 밝혀지기도 전에 난무하는 구설을 견디다 못해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다.
사람마다 약점과 숨기고 싶은 일이 있게 마련이니, 잘못이 확인될 때까지만이라도 모른 척하는 것은 서로를 위하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다.
그보다 큰 문제는 어떤 이유로든 경쟁에서 한 번 밀리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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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배우가 자기 목숨을 끊었다. 범죄 혐의가 뚜렷이 밝혀지기도 전에 난무하는 구설을 견디다 못해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다.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가 적정했는지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이 모든 사달의 끝에 결국 드러나는 것은 어느새 너무나 모질어진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공권력만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약점과 숨기고 싶은 일이 있게 마련이니, 잘못이 확인될 때까지만이라도 모른 척하는 것은 서로를 위하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다. 설사 잘못이 확인되어 죗값을 치르게 된 경우라도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그 벌과 비난이 도를 넘어서는 안된다. 이는 모든 실수, 실패, 잘못에도 마찬가지다. 단 한 번의 헛발질, 아니 헛발질의 혐의조차 용납하지 않는 남에 대한 엄격함은 종국에 자기 학대로 이어진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그 증거다. 우리 국민의 경제력, 교육열, 지적 수준, 성취동기 등은 매우 높지만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는 최악이고 자살률은 최고다. 심한 경쟁도 문제겠으나, 경쟁이야 도처에 있으니 그것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그보다 큰 문제는 어떤 이유로든 경쟁에서 한 번 밀리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다. 그것이 대학입시의 성공이건 연예인의 인기이건, 우리는 흔히 성공의 길은 외길이요 외줄이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런 압박은 절박함을 하나의 미덕으로 만들고 두 번째 기회에 대한 기대는 게으르거나 심지어 부도덕한 것이 된다. 그 결과 자신과 남에게 모질게 대해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젊은이가 형식적 공정에 목을 매고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를 박대하며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평등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의 가치를 배운 적이 없고 스스로조차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구실이 생기면 사정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모진 습성이 권력 앞에서는 또 가라앉는다. 대중의 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예인에게는 엄격하던 판단의 잣대가 권력의 뻔뻔함과 염치없음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언론이 연예인의 일탈 혐의를 보도하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의 십 분의 일이라도 권력자들의 비정상적 행태에 할애했다면, 그리고 그런 보도에 우리 사회가 조금만 귀 기울였다면 우리의 불행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이 현실이 더 서글픈 이유는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기독교회가 그 흐름을 전혀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약함과 악함을 오히려 긍휼히 여기시고 자기 죽음으로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차없이 남을 정죄하고 막다른 지경에 몰아넣는 우리 사회의 모진 모습 앞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은 악한 권력에 굴복하지 말고 약한 죄인을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한국의 교회는 권력에 걸림돌이 되지도, 실패자가 재기할 기회를 변호하지도 않는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좀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되 너무 몰아세우지 않고, 자기 실수를 반성하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이 “인생은 한 방”이라 생각하며 두 번째 기회를 포기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좋겠다. 꼭 한 마디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면 나보다 약하거나 만만한 사람 말고 힘 세고 무서운 사람을 향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모든 바람이 교회 안에서 먼저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래야 죄인과 병자의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의 너그러움과 넉넉함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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