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평범’하게 이 정도는 해야지
‘남들이 다 하는 건 나도 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강박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시대가 변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다양성의 범위도 넓어지는 듯했다. 꼭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재능이 있으면 성공의 길이 열렸다. 자수성가한 웹툰 작가, 유명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를 보면서 ‘세상엔 정말 여러 길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개념도 흐려지고 있었다.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도 늘었다. 결혼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인 이들은 그들의 꿈을 찾았고, 혼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친구는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목격한다. 얼마 전 한 여성 유튜버가 해외에서 장기간 머물며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봤다. 그는 자신을 서른다섯 살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해외에 머무는 동안은 일도 잠시 쉰다고 했다.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보통의 ‘힐링 영상’이었다. 그러나 댓글은 평화롭지 못했다. ‘젊을 때나 혼자 놀고먹는 삶이 좋겠지’ ‘늙어봐라. 결혼 안 한 걸 후회할 거다’는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남겨져 있었다. 이 사람의 결혼 여부가 대체 왜 불편할까. 그게 약점이 되고 비난받을 지점이 되는 것일까.
어느 사회나 그 안에서 만들어진 ‘평범한 삶’의 범주가 있다. 이 여성은 결혼에 있어서 이 ‘평범’의 범주에 들지 못한 셈이다. 결혼뿐만 아니라 학벌, 취업, 생활방식까지 ‘남들은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평균값이 있다. 여기에 들지 않을 때 불행이 시작된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요즘 대한민국은 평균이 상향화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많은 이가 공감했다. 평균의 조건은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어 높은 연봉과 고용안정이 보장된 대기업에 들어가고, 내 집을 마련해 신혼을 시작하는 게 ‘한국인의 평균’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였다. 사실, 이 모든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전혀 평범하거나 평균적인 일이 아니다.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기업의 99.9%는 중소기업이고, 기업 종사자의 81.3%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2022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상위 10위권에 든 대학의 입학정원은 2023학년도 수능시험 응시정원의 7.4%에 불과했다. 30대 젊은 신혼부부가 ‘내 집’을 갖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2022년 통계청의 ‘연령대별 주택소유자 현황’ 통계를 보면 30대는 10.1%에 그쳤다. 결혼 적령기인 30대의 미혼 비율은 2020년 50.8%로 절반을 넘어섰다.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이 반인 셈이다.
불행의 시작은 이 ‘어려운 일’이 마치 해내야 하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데 있다. 강요된 평범을 해내지 못하면 멸시와 조롱도 겪어야 한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지잡대’라고 무시하고, 누구나 알만한 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X소기업’이라고 불리거나 자조한다. 미혼인 30대가 태반인데도 ‘젊을 때나 좋지 혼자 늙어봐라’는 저주를 언제 들을지 모른다. 때로는 30대 대다수가 하지 못하는 ‘내 집 마련’의 꿈이 마치 혼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비싼 취미로 여겨지던 골프는 요즘 ‘국민 스포츠’로도 불린다. SNS에는 1박에 수십만원인 호캉스(호텔에서 보내는 휴가)에 다녀왔다거나 한 끼에 1인당 20만원이 넘는 고급 코스요리를 먹었다는 인증이 수두룩하다. 이게 평범한 삶일까 싶을 정도다. ‘남들이 다 하는 것’에 나도 동참해야 한다는 초조함을 느끼진 않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최예슬 온라인뉴스부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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