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상술에 열받고 푸바오 덕에 웃었다

손민호 2023. 12. 29.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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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행·레저 7대 뉴스


2023년, 관광업계가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200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해외여행에 나섰고, 4년간 썰렁했던 서울 명동 거리가 외국인으로 북적거렸다. 코로나 시기 반짝 특수를 누렸던 제주도는 좌절을 곱씹었고, 고물가에 시달리던 국민이 전국 주요 관광지의 바가지요금에 분노를 터뜨렸다. 답답한 일이 많아서였는지 푸바오의 재롱을 보려는 줄이 1년 내내 길게 이어졌다. 올해 여행레저 부문 7대 뉴스를 선정했다.

1. 외국인 방한, 2019년 대비 62%

외국인 방한, 2019년 대비 62%

2023년은 해외여행 부활의 원년이라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5월, 한국 정부는 6월을 기점으로 엔데믹을 선언했다. 올해 11월까지 출국자는 203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16만명)보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77% 수준이었다.

신재민 기자

방한 관광은 해외여행에 비하면 회복세가 확연히 더딘 분위기다. 올해 11월까지 방한 외국인 수는 999만명으로, 2019년의 62%에 그쳤다. 국가별로 보면, 일본·중국·미국·대만·베트남 순으로 방문객이 많았다. 2019년 전체 방한 외국인의 34%를 차지했던 중국인의 발길이 뜸한 게 치명적이었다. 지난 8월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했지만, 중국 경기 불황 탓에 시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해외여행의 부활, 방한 외국인 관광의 더딘 회복이라는 불균형은 막대한 관광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올해 10월까지 관광수지는 78억 달러(약 10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9년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2. 엔화 싼 덕분에…일본여행 열풍

올해 일본은 엔화 약세에 힘입어 2000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교토 관광지인 기요미즈데라 앞 상점가. [AFP=연합뉴스]

일본 여행은 신드롬이라 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올 11월까지 한국인 617만명이 일본을 방문했다. 아직 12월 수치가 반영이 안 됐는데도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록(558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신재민 기자

일본 여행 신드롬은 엔데믹과 양국 관계 회복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역대급 ‘엔저’가 마중물 역할을 했다. 12월 27일 현재 100엔 환율이 907원 수준으로, 지난달엔 100엔에 약 850원까지 하락했다. 엔화 가치 폭락에 더해 수년째 일본 물가가 제자리 수준이어서 “택시비 빼곤 한국보다 모든 게 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값에 열광하고, 귀국길에는 과자·술·옷 등을 양손 가득 챙겨오고 있다.

내년에는 에어재팬 같은 일본 국적 항공사의 취항도 예정돼 있어 방일 한국인 수가 사상 최고를 찍은 2018년(753만 명)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3. 막 내린 제주도 천하

지난 봄 서귀포 한 유채밭의 관광객들.[연합뉴스]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제주도 천하’도 끝나는 분위기다. 제주도관광협회가 집계한 관광객 현황을 보면 올 1~11월 제주 방문 내국인 수는 누적 1171만명으로, 지난해(1280만명)보다 100만명 이상 줄었다.

김주원 기자

제주도 관광 업계는 방문객 감소보다 씀씀이가 줄어든 상황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2년간 역대급 매출을 올렸던 제주 면세점은 상반기 매출(약 2872억원)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719억원(-20%)이 빠졌다. 골프장도 전년 대비 이용객(제주도민 제외)이 25% 줄었다. 특급호텔과 리조트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국내 물가는 계속 치솟고 있어 제주 관광 침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보복 여행, 보복 소비는 옛말이 됐다”면서 “신혼 여행객처럼 씀씀이가 큰 투숙객은 제주도에서 거의 증발해버렸다”고 말했다. 다른 리조트 관계자는 “객실 단가를 낮추는 등 프로모션을 강화하고 있지만, 매출 감소세를 막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4. 온국민 판다앓이

푸바오를 만날 수 있는 에버랜드 판다월드는 하루 7000명 이상이 몰릴 만큼 입장 열기가 뜨거웠다. [사진 에버랜드]

2023년 관광레저 최고 인기 스타는 에버랜드의 아기 판다 ‘푸바오’다. 올해 푸바오의 인기는 에버랜드 판다월드를 넘어 출판·유통·방송까지 확장됐다. 에버랜드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7개월간 대략 150만명이 판다월드를 다녀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가량 입장객이 늘었다.

푸바오를 만날 수 있는 에버랜드 판다월드는 하루 7000명 이상이 몰릴 만큼 입장 열기가 뜨거웠다. [사진 에버랜드]

푸바오의 성장 과정을 담은 포토에세이 『푸바오, 매일매일 행복해』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인형·머그잔 등 굿즈와 카카오톡 이모티콘(‘푸바오는 세 살’)도 쏟아졌다. 지난달 열린 팝업스토어에는 2주간 2만명이 찾아 약 10억원어치(약 11만개)의 굿즈를 사갔다. 지난 7월에는 팬들이 만든 생일 축하 광고가 지하철역에 걸리기도 했다.

김주원 기자

유튜브 반응도 뜨겁다. ‘죽순 먹방만 찍어도 100만뷰’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푸바오의 인기를 견인한 에버랜드 공식 유튜브 채널은 지난 7월 업계 최초로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푸바오의 폭발적 인기 배경에는 한국 팬과의 만남이 시한부라는 아쉬움이 깔려 있다. 푸바오는 중국의 ‘판다 소유권 정책’에 따라 내년 상반기 한국 팬과 작별을 예고하고 있다.

5. ‘과자 1봉지 7만원’ 전통시장 뭇매

인천 소래포구 상인들이 섞어 팔기, 바가지 근절을 약속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어묵 한 그릇 1만원, 모둠전 한 접시 1만5000원, 과자 1봉지 7만원….

올해 지역축제와 전통시장은 바가지요금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진해 군항제, 함평 나비축제, 서울 광장시장,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 등 주요 지역 축제와 전통시장이 줄줄이 도마에 올랐다.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축제장의 도 넘은 상술이 여과 없이 중계되면서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 상술은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

여론이 악화되자, 논란이 불거졌던 함평군·양양군 등이 사과문을 올리는 등 곳곳에서 진화 작업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광장시장에 정량표기제를 도입하고 암행 순찰을 강화했다. 문체부는 전국 86개 문화관광축제의 먹거리 가격을 공개하는 ‘착한 가격 캠페인’을 시작했다. 뒤늦은 수습 작업이 이어지고 있으나, 넉넉한 정(情)과 인심을 앞세워 왔던 지역축제와 전통시장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6. 자칭 낙하산의 예견된 추락

이재환

올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의 최고 화제(?) 인물은 이재환 한국관광공사 전 부사장이었다. 이 전 부사장은 국감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12일 뒤 사퇴했다.

10월 19일 국감장에서 공개된 영상이 공분을 일으켰다. 영상에서 이 전 부사장은 관광공사 직원들에게 “낙하산”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부산 그 촌동네에서 무슨 행사를 하느냐”며 부산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가장 논란이 컸던 영상은 이 전 부사장 지시로 관광공사에서 제작했다는 개인 홍보영상이다. 관광공사의 주요 사업이 개인 업적인 것처럼 그려져, 영상을 본 야당 의원들이 일제히 “대선 출마 영상이냐”며 질타했다.

이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논란 속에 임명됐다. 관광 분야 경험이 전무한 윤석열 대선 캠프 출신 인사가 부사장으로 온다는 소문이 돌자 관광공사 노조가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전 부사장이 임명된 뒤 관광공사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국감 뒤 문체부가 감사를 요청하자 이 전 부사장은 11월 1일 사퇴했다. 부사장에 임명된 지 11개월도 못 채운 때였다.

7. 반년간 981만명 다녀간 순천만정원박람회

지난 4~10월 개최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는 981만명이 방문했다. 올해 박람회는 2013년 1회 때보다 행사장 면적을 5배 늘렸고, 정원 속 숙소를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최승표 기자

올해 열린 메가 이벤트는 국제 망신만 산 세계 잼버리 대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전남 순천의 국제정원박람회도 있었다. 지난 4~10월 6개월간 열린 정원박람회에는 무려 981만 명이 다녀갔다. 2013년 첫 박람회보다 두 배 이상 방문객이 늘었다.

지난 4~10월 개최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는 981만명이 방문했다. 올해 박람회는 2013년 1회 때보다 행사장 면적을 5배 늘렸고, 정원 속 숙소를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최승표 기자

특히 정원박람회는 지역 관광 콘텐트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순천시는 정원도시, 생태도시를 자처하고 나섰고 전국 지자체가 순천을 배우겠다며 박람회장을 찾았다.

순천시는 ‘정원에 삽니다’를 박람회 주제로 내걸고 순천만 습지, 국가정원 외에도 도심 쪽으로 박람회장을 확 넓혔다. 1회 때보다 다섯배 가까이 확장했다. 도심 침수를 예방하는 저류지를 ‘오천그린광장’으로 탈바꿈해 박람회의 핵심 공간으로 활용했고, 개인 농경지를 매입해 풍경정원도 꾸몄다. 정원 속 숙소 ‘쉴랑게’는 예약률이 90%가 넘었다. 순천시는 박람회 수익은 333억원, 경제 효과는 2조원이 넘었다고 밝혔다.

손민호·최승표·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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