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란의 쇼미더컬처] 수집광 구본창이 빠뜨린 것, 남긴 것
방 하나에 일생을 집약하라면 어떤 사물들을 고르겠는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작가 구본창(70)의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내년 3월10일까지)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작품 500여 점 외에 관련 자료 및 작가 수집품 600여 점으로 서소문 본관 1·2층을 빼곡하게 채웠다. 한국 현대사진의 선두에서 다채로운 실험과 미학을 펼쳐온 건 알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파노라마다. 수집광으로 소문 난 그의 집요한 수집품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1974년 연세대 교양학부 강당에서 열린 연상 극우회 정기 공연 티켓도 있다. 당시 연출을 맡은 친구 배창호의 부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졸업 후엔 부모 뜻을 따라 기업에 입사했으니 아직 사진이나 예술을 하겠단 포부가 없었을 때다. 하지만 그는 메모지만 한 자신의 창작품을 소중히 간직했다. 아버지가 해외 출장길에 가져온 1964년 도쿄올림픽 브로슈어도 서랍에 넣어뒀다. 해외여행 자율화 전, 갈 수 없는 먼 나라의 이국적 색채가 그를 자극했다. 차곡차곡 모으고 분류한 사물들이 45년 작품세계에 대한 힌트가 될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좀처럼 버리질 못한다. 그렇다고 다 끌고 다닐 수도 없지 않으냐. 작가로서 성장하다 보면 버리고 남기는 것에 대한 기준도 달라진다. 그렇게 남기고 의미 부여한 것 중에 고르고 골라 전시품으로 내놨다.” 구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빠진 것’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전시를 기획한 한희진 학예연구사가 실마리를 줬다. “오래전 영화 관련 사진에서 훗날 ‘미투’에 연루된 배우·감독 등을 일부러 뺐다.” 결과적으로 태흥영화사와 작업한 주요 영화 포스터가 빠지고, 배창호 감독의 ‘개그맨’과 이두용 감독의 ‘업’ 정도만 대표작으로 전시됐다. 작가 본인도 달라진 사회적 기준을 의식했고, 여성 학예사의 눈썰미도 한몫한 셈이다.
무엇을 버리고 남길 것인가. 전시장 막바지엔 미공개작 시리즈 ‘콘크리트 광화문’(2010)이 소개된다. 경복궁 복원사업에 따라 2007년 해체·철거된 광화문 콘크리트 누각을 찍었다. 개발독재 시대, 전통 목조 방식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려 콘크리트로 목조 흉내만 냈던 속살들이 남루하게 드러난다. 화려하던 누각이 해체돼 볼품없이 방치된 모습이 “그조차 쓰라린 역사의 상흔 같아서, 버려진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절로 잊히고 버려지는 것도 있고, 애써 감추고 지워서 사라지는 것도 있다. 시간도, 공간도, 사람도 그렇게 선택된다. 한때 추앙받았을지라도 다른 기준에 따라 추락하고, 그러다 제3의 눈으로 재조명되기도 한다. 버리고 남기는 것이 쌓여 문화가, 역사가 된다. 이래저래 사람도, 물건도 정리하게 되는 세밑에 되묻는다. 내 ‘인생의 방’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나.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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