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총회 내용 전달에 그쳐, 정부대책 더 따졌어야
독자위원회 | 중앙일보를 말하다
제45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위원장 김준영 전 성균관대 이사장)가 지난 26일 중앙일보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독자위원들은 12월 한 달 동안 중앙일보 지면과 디지털에 실린 주요 기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전병율 차의과학대학교 보건산업대학원장=25일자 1면 ‘달동네 어르신의 겨울, 7년간 덥혀준 목욕탕’ 기사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노원구 중계동의 백사마을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공공목욕탕을 만들어 운영하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이용자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부담했다는 미담 기사였다. 이 사례가 계기가 돼서 다양한 지역에 이런 형태의 시설이 많이 설립됐으면 좋겠다고 느낀 따뜻한 기사였다.
중앙일보는 8일자 1면 ‘의대정원 23% 늘린 일본 의사도 국민 먼저 생각했다’, 11일자 1면 ‘“전공의 1.4만명 증원” 미국선 의협이 요구’, 18일자 10면 ‘국민 90%, 의대증원 찬성하는데…의협은 ‘파업’ 만지작’ 등의 기사를 통해 우리보다 의료진 부족 문제를 앞서 해결한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봤다. 이런 기사는 국내 의료단체의 협조,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의료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영주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장=8일자 18면과 14일자 12면에 이명박 전 대통령 서예전 관련 기사가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비록 사면은 받았지만, 뇌물 등 비난 가능성이 높은 범죄로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런 전직 대통령이 서예전을 개최한 건데, 관련 기사를 단기간에 두 번이나 게재한 게 적절한가 의문이 든다. 내용에도 별 차이는 없어 보인다.
최근 개각이 있었다. 총선을 위해 일부 장관을 차출했는데, 그러면 청문회 준비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고 그사이 중요한 현안 결정도 미뤄지는 문제가 있다. 또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장에 지명됐는데 전문성에 대한 비판도 있다. 중앙일보에는 그런 비판 목소리가 부족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더 적극적인 기후변화 취재가 있어야 한다. 14일자 14면에 ‘COP28 “탈화석연료 전환” 합의…‘퇴출’ 대신 ‘감축’ 그쳐’라는 제목의 COP28(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기사가 실렸는데, 분석적이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총정리 수준이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배로 확대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했는데, 정부의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헤치고 대책은 무엇이 있는지 더 따져 묻는 부분이 약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사들이 있었는데, 기업의 목소리가 우선시된 측면이 있다. 11일자 B1면에 ‘중소기업들 “중대재해법 준비할 사람이 없다”’ 기사는 중소기업의 하소연으로 기사가 구성돼 있는데, ‘중대재해법 도입 어렵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기사가 작성됐다. 또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노동계의 목소리는 거의 담고 있지 않아 일방적인 느낌을 주는 기사가 많았다.
▶홍지혜 오픈갤러리 디렉터=4일자 B4면에 ‘백화점 사양산업? 요즘은 MZ 성지’라는 기사에서 더현대서울 백화점이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없이도 영 패션을 강화해 MZ들의 성지가 됐다는 내용을 다뤘다. 그런데 더현대서울 백화점의 성공 신화는 이미 1년도 더 전부터 이야기됐다. 왜 이 시점에 다시 기사로 나왔는지 의아하다.
좋았던 기사는 한국문학 번역자를 다룬 7일자 16면 ‘“한강·이승우 등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기사다. K컬처라고 하면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 쪽 유명인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문학과 이를 번역하는 작업도 중요한 K컬처라고 본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언론이 발굴해서 이렇게 알려주면 좋겠다.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1일자 B3면에 ‘“여대 출신 이력서는 거른다” 글 논란, 고용부 실태조사 나섰다’는 직장인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여대 출신 이력서는 거른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이런 신고가 2800여 건 접수돼 정부가 3곳의 기업 조사에 착수해 마치 잘한 것처럼 보도했는데, 내가 볼 땐 2800건의 신고가 접수될 때까지 고용부가 뭐하고 이제야 고작 기업 3곳을 조사하는 건가. 이건 비판적으로 볼 문제였다.
18일자 B5면에 ‘“개 식용 금지법” 급물살…‘최대 4조원 요구’ 보상 조율이 과제’ 기사가 실렸다. 개 식용 금지법을 빨리 만들라는 식으로 가면 오히려 갈등만 부추길 것 같다. 지금 현행법에도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걸 개선해야 하는지 좀 차분히 탄탄하게 만들어 가야 하는데 법을 만들라고 채근하는 것 같은 보도여서 아쉬웠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윤석열 정부의 최근 개각의 핵심은 외교·안보 쪽이었다. 국가정보원장, 국가안보실장, 외교부 장관, 흔히 말하는 외교·안보의 트라이앵글이 다 바뀌는 인사였다. 그런데 정보맨을 찾았다는데 왜 찾지 못하고 외교 전문가가 또다시 국정원장으로 중용되었는지, 안보실장의 공백은 왜 이렇게 길어지는지 등의 문제를 중앙일보가 더 집요하게 지적했어야 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1년간 외교를 중앙일보가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과도한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비판도 있고, 네덜란드 국빈 방문과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논란도 있었다.
좋았던 기사로는 19일자 1면 ‘한·미에 1발씩…북, 고도의 미사일 협박’이 있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해 중앙일보가 다른 언론보다 더 논리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했다.
▶임유진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14일과 15일 ‘고립의 늪 빠진 청년들’ 기획 보도가 있었다. 과거 ‘이상 동기 범죄’ 가해자였던 은둔 청년을 다루었을 때 은둔 청년들을 피상적으로 하나의 집단으로 분류하고 특징을 서술하는 것에 머물렀는데, 이번 기획 기사는 다른 차원에서 분석적인 접근으로 돋보였다. 은둔 청년들의 규모와 다양성을 적절한 그래픽을 통해 잘 보여줬고, 사회적 심각성을 잘 부각했다. 그리고 여러 은둔 청년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목소리를 전달했다. 은둔 청년의 문제 진단과 현실, 그리고 대안 제시까지 했다는 점에서 잘 구조화된 기획 기사였다.
8일자와 11일자에 ‘의대정원 늘린 국가’ 기획 기사가 실렸다. 미국·일본에서 의대 정원 확대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의대 정원 논의에 함의를 제공하려고 해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였다. 다만 우리나라는 미국·일본의 의료 상황과 상당히 다른 상황도 충분히 고려했으면 한다.
▶정진욱 시어스랩 대표=20일 2면 ‘네·카 ‘플랫폼 반칙’ 미리 막는다’ 기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거대 온라인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으로 지정하고, 독과점 플랫폼의 시장질서 교란 행위를 차단하는 취지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을 도입하는 내용을 다뤘다. 과도한 규제가 국내 디지털 경제의 성장동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시장의 독점력을 남용한 불공정 행위를 원천 금지하여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신중한 검토를 거쳐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아직 ‘지배적 플랫폼’의 세부적인 지정 기준이 확정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네·카 ‘플랫폼 반칙’ 미리 막는다’와 같은 헤드라인은 신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배적 플랫폼으로 평가받기는 하지만 아직 선정되지도 않은 두 플랫폼을 찍어서 “플랫폼 반칙”과 같은 부정적인 문구와 함께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김준영 전 성균관대 이사장=한국의 출산율 문제를 지난달 31일과 이달 4일 크게 다뤘다. 출산율을 다른 매체도 많이 다루고 있는데, 중앙일보는 전체적으로 더 큰 시각에서 들여봤으면 좋겠다. 또 출산율 관련 대책은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다. 그래서 인구 문제와 출산율 대책은 지금까지 발표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산발적으로 각개약진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인구부와 같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정부가 정책을 다뤄야 한다고 보는데, 중앙일보에서 이 문제를 더 비판적으로 쓰면 좋겠다.
14일자 6면에 ‘“AI·일자리 공생법 찾자” MS, 미국 최대 노조와 손잡았다’는 좋은 기사가 실렸다. 대개 일자리를 인공지능(AI)이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상당히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점으로 주로 언론이 다루는데, 중앙일보에서 일자리 공생법을 다뤄줬다. 결국 앞으로 AI와 사람의 상생이 중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좋은 기사였다. 이어지는 보도를 통해 AI와 사람의 상생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확산하면 좋겠다.
정리=윤성민 정치에디터, 임근홍 인턴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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