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한마디에 호감 급등한 회장님…PI에 빠진 CEO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12. 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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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초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 깡통시장을 찾았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날의 주인공은 윤 대통령이 아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을 비롯한 재계 주요 기업 총수들이 동행 중이었다. 시민들은 이 회장을 보자 “이재용! 이재용!”이라고 외치며 환영했다. 이 회장은 시민들의 악수 요청에 한 명 한 명 화답했다. 이 회장의 ‘연예인급’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이 계속해 이름을 연호하자 “이름… 이름 부르지 말아주세요”라며 웃으며 부탁했다. 화제가 된 ‘쉿’ 동작은 여기서 나왔다. 당시 자리에는 윤 대통령을 비롯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자신의 이름만 외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쉿’ 동작은 이 회장을 더 화제의 중심으로 올려놨다. 누리꾼들은 “재벌이고 뭐고 저 스타성에 관심 안 가겠냐고… 쉿 하면서도 다 악수해주고” “나 같아도 이재용 외칠 듯” “미친 스타성이다” “저항 없이 웃음 터지네”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회장의 ‘쉿’ 표정은 패러디 게시물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재용 회장과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이미지를 활용해 유튜브 섬네일처럼 가공한 ‘동생 몰래 신라호텔 계산 안 하고 튀기’라는 글이 덧붙여진 이미지 등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각종 ‘짤’을 생산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지난 12월 초 부산 깡통시장을 방문했을 때 ‘쉿!’ 장면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뒤 ‘잠이 안 깨서’라며 턱을 잡는 포즈 역시 인터넷을 달궜다. 무거운 청문회장에서의 ‘웃참(웃음참기)’ 장면도 화제를 모았을 만큼 ‘특급 연예인’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엄·근·진’ CEO 시대 끝나

대중적 인기로 브랜드 호감 ‘쑥’

이 회장은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다. 범접하기 어려운 경영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미지가 덧붙여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그의 대중적 인기는 특급 연예인에 버금간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회장과 연관한 조그만 이벤트조차 화제가 된다. 청문회장에서 억지로 웃음을 참는 모습에 ‘웃참재용’, 식당에서 국수를 먹는 장면에는 ‘호록재용’, 가볍게 손 흔들어 인사만 나눠도 ‘하이재용’이라는 애칭이 붙은 ‘움짤’이 돈다. 이 회장은 최근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길에도 동행했다. 귀국하며 기자단을 만나자 그는 “잠이 막 깨서”라며 두 손으로 턱을 잠깐 감쌌다. 이 사진조차 뉴스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 회장은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미 ‘핫한 재용형님’이다.

최고경영자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기업 브랜드 명성과도 연결된다. CEO의 높은 이미지는 주가를 올리며, 기업과 상품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무형의 자산으로 평가된다. 버슨-마스텔라 분석에 따르면, CEO가 쌓은 명성은 기업 영향력을 크게 키운다. 미국 애널리스트 중 약 95%가 주식을 거래하거나 추천할 때 CEO의 명성을 중시한다. 좋은 성품을 느끼게 하는 CEO PI(President Identity·개인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PI 마케팅은 벤처기업 등 CEO의 역할이 중요한 소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한 측면이 있었다. 최근 몇 년 새는 대기업도 적극적으로 PI에 나선다. 대기업 최고경영자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대중적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MZ세대 등장에 맞춰 기업인들이 격의 없이 소통하는 ‘친구 리더십’을 부각하는 식이다.

강함수 에스코토스컨설팅 대표는 “재벌 3~4세로 넘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모습이 호감도를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CEO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퍼질 때 기업이 발 빠르게 진화하기도 한다. 이 회장이 ‘쉿’ 동작으로 화제에 오르는 동안 ‘의문의 1패’를 당한 CEO가 있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다. 같은 날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영상에서는 김 부회장이 떡볶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젓가락으로 뒤적거리기만 하는 모습에 ‘입맛 없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삼성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라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돌았다. 하지만 오후에 다시 회자된 영상에는 반전이 있었다. “김 회장이 떡볶이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난 후의 모습”이라며 맛있게 먹고 접시를 비우는 장면이 퍼졌다. 이 영상을 찾아서 돌린 곳은 한화그룹으로 알려졌다. 그룹 최고경영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지 않도록 순발력 있게 대응에 나선 셈이다.

최태원 회장도 소탈한 모습 강조

PI도 과유불급…경영 못하면 역효과

국내 대기업 총수 중 PI에 신경 쓰는 대표적인 CEO가 최태원 SK 회장이다. 그는 젊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주로 SNS를 활용한다. 그는 2021년 “밤 12시에는 몰래 끓여 먹는 라면이지. 양파, 감자, 새송이버섯, 조랭이 떡 때려 넣고 파 많이”라는 글과 함께 ‘제주 딱새우라면(딱멘)’을 먹음직하게 끓여낸 사진 한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평범해 보이는 글과 사진이었지만, 순식간에 ‘좋아요’가 수천 개가 넘었다. 최 회장은 실생활에서 쓰는 제품을 올리면 누리꾼들은 제품을 써본 후기를 물어보고, 다른 제품을 추천해달라는 댓글을 남긴다.

대기업 총수가 쓰는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따라 사는 ‘추종 소비’를 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SNS를 통해 총수에게 직접 제품 관련 질문을 하고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CEO가 인플루언서 역할까지 한다. 최 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치실 사진과 함께 “치실을 사용하는데 실을 좀 많이 길게 뽑아서 썼더니 막내가 옆에서 보다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빠 재벌이야?’라고. 이에 막내딸에게 ‘응? 어? 음… 아니… 아껴 쓸게’ ”라고 답했다는 소소한 일상을 적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회사가 아닌 ‘스스로’ PI에 나선 대표적인 CEO다. 2021년 인스타그램에 가입한 정 부회장은 팔로워 수가 81만명에 달하는 ‘슈퍼 인플루언서’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SNS 활동을 시작한 그는 사진을 올릴 때부터 제품 브랜드, 정보 등을 함께 적을 때가 많다.

물론 신세계 계열사 마케팅에도 나선다. 이마트와 스타벅스 공식 계정에도 등장하면서 사업 홍보에 나서기도 한다. 정 부회장이 신세계 이마트 PB 브랜드인 노브랜드와 피코크의 밀키트 메뉴를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스타벅스 공식 채널에 출연해서는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나이트로 콜드브루’를 꼽았다. 그러자 2주 만에 해당 메뉴 판매량이 2.5배 이상 늘었다. 그가 총수 중 PI 마케팅을 가장 영리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CEO의 PI도 ‘과유불급’이다. 최태원 회장은 서민적인 이미지를 얻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유명세는 반작용을 불렀고, 이혼 소송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다. 이 때문에 SK그룹 관련 기사 댓글에는 기사 내용과 상관없는 이혼 소송 관련 비판의 글이 올라오고는 한다.

정 부회장도 긍정적인 이미지만 얻은 것은 아니다. 정 부회장이 지난해 ‘멸공(공산주의 세력을 멸한다는 뜻)’이라는 단어를 자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는 정치적 논쟁으로 번지고 신세계 계열사 주가 폭락 원인이 됐다. 또한 이마트와 스타벅스를 대상으로 한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강함수 대표는 이벤트성으로 PI 전략을 짜면 안 된다고 했다. CEO의 정체성은 자질, 성품, 언어 스타일, 경영 철학, 비전, 리더십, 개인적 매력이 녹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PI 전략을 쓰면 지속성이 떨어지고 기업가치와도 연결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평상시 관심이 없는 일을 PI 전략 차원에서 이벤트로 만들어봐야 소비자와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게 강 대표 설명이다.

강 대표는 “CEO 브랜드는 기업 브랜드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내부 조직 구성원에게 조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고 조직 구성원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0호 (2023.12.27~2023.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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