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 거부권 행사" 엄포... 윤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박소희 2023. 12. 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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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법 찬성 여론 압도적으로 높은데... "국민들과 싸우자는 것"

[박소희 기자]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날 국회에서 통과된 특검 관련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12.28
ⓒ 연합뉴스
'즉각'이라는 단 두 글자로,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에게 넘어온 공을 곧바로 받아쳤다. 

28일 오후 4시 42분, 국회에서 '쌍특검법(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자마자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지금 국회에서 쌍특검 법안이 통과됐다"며 "대통령은 법안이 이송되는 대로 즉각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임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세 번이나 야권이 처리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이송되자마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격노'의 표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지금까지의 특검은 여야가 합의로 처리해왔고, 야당이 임명한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경우에도 여야 합의로 했다. 선거 직전에 노골적으로 선거를 겨냥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처음인 것 같다"고 야권을 향해 날을 세웠다.

헌법 53조 2항은 대통령이 국회가 의결한 법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이송 후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쌍특검법의 운명은 명약관화다. 윤 대통령이 이송 즉시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 법안은 국회에 돌아오더라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재의결에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모두 '200석'의 벽을 넘지 못해 번번이 폐기됐다.

'격노' 윤 대통령, 노무현과도 다른 두 가지

여론은 분명하다. 국민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7~8일 실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무려 70%에 달했다. YTN-엠브레인이 17~19일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도 응답자의 65%가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은 모습이다. 여권이 25일 당정대 긴급회동, 26일 한동훈 비대위원장 발언 등으로 '수용 불가'를 예고하긴 했지만, 대통령의 반응 수위는 한층 더 높았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없진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과 측근비리 특검법의 재의를 요구했다. 다만 노 대통령은 측근비리 특검법의 재의를 요구하며 "특검법안의 수사대상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에 있다"며 검찰 수사 부진이 명분이었던 다른 특검법과 상황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대북송금 특검법 역시 기존 특검의 연장이었던 터라 '무분별한 수사 대상 확대 시 수용 불가'라고 했다. 물론 노 대통령도 비판받았다.
 
▲ '김건희 특검법' 국회 본회의 통과 '김건희 특검법'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퇴장한 가운데 통과되고 있다.
ⓒ 남소연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다르다. 첫째, 김건희 특검법은 수사 대상이 자신의 배우자다. 또 '50억 클럽 특검법'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관련자들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특검의 수사망이 넓혀지면 윤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까지 들어갈 수 있다. 즉 윤 대통령 본인과 배우자가 직접적으로 얽힌 사안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법이 있다. 그리고 당시 이 대통령은 "대승적 차원에서" 법안을 수용했다.

둘째, 노무현 대통령은 두 개의 특검 모두 '조건부 수용'이었다. 대북송금 특검의 경우 2003년 3월 출범한 특검팀이 현대그룹의 150억 원 비자금 의혹을 추가로 포착하자 이를 연장하자는 안이었다. 그해 6월 26일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국회가 150억 원 부분으로 수사대상을 한정하고 수사기간을 적절하게 설정해 특검을 결정하면 수용"이라는 대통령의 입장을 알렸다. 하지만 협상 결렬로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재의결을 시도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측근비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2003년 11월 25일 "결코 수사를 회피할 생각은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다만 "사정이 달라지거나 재의결이 되지 않는 경우 검찰 수사가 끝나면 정부가 이번 특검법안의 취지를 살리는 새로운 특검법안을 제출해 다시 국회와 국민의 판단을 받도록 하겠다"며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저는 국민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지는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후 특검법은 재의결됐고, 수사로 측근비리가 드러나자 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반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일관되게 '특검은 악법'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본회의 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원래 있던 여당 지도부와는 합의가 불가능했지만 새로 출범한 한동훈 지도부와 다시 합의를 시도해볼 여지가 있냐'는 질문에 "그랬으려면 벌써 제안이 왔어야 됐다"고 답했다. 그는 "최근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대통령이 격노했다'"라며 "협상을 하려는 내용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집안이나 감싸는 대통령? 자업자득될 것"
 
  윤석열 부부 네덜란드 국빈 방문.
ⓒ 대통령실
한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자기네 집안이나 감싸는 대통령이 되어서야 되겠나"라며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일을 이렇게 반대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총선이 4개월 남았으니까 국민들은 잊어버릴 거다' 아니면 대다수의 국민은 결국 (정치권에 실망해) 투표 안 할 테니, 우리 핵심 지지층만 결집시키면 된다'는 생각 같다"며 "자업자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투표 때 국민의힘에서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도 사실상 없다고 봤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올 때부터 '야당과, 또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과 싸우자'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향후 정국을 두고는 "선거는 미래 비전 경쟁이기도 하다"며 "저쪽은 얼굴을 바꾸고, '운동권 정치 불신'을 공략하는 등 뭔가를 하려고 할 테고 자연스레 민주당과 비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선거가 100일 더 남았는데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변화들도 생길 수 있다"며 "민주당도 '플랜'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노 대통령 "150억원 특검만 수용" https://omn.kr/1pf0
노 대통령, '새 특검법' 거부권 행사 https://omn.kr/3fik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 '조건부 거부' http://bit.ly/Z6dQg0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 공포 https://omn.kr/9jiw
MB "정략적 특검... 당당함 보이기 위해 수용" http://bit.ly/Vimn08
김건희·대장동특검법 국회 가결에 대통령실 "즉시 거부권" https://omn.kr/26wis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 개요는 다음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국민일보-한국갤럽 : 2023년 12월 7~8일 전국 18세 이상 1033명 대상 무선 전화 면접,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P - YTN-엠브레인퍼블릭 : 2023년 12월 17~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6명 대상 무선 전화 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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