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때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일

안지훈 2023. 12. 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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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감동 실화를 전하는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안지훈 기자]

▲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포스터 9.11 테러 당시 캐나다의 작은 마을 갠더에서 벌어진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컴프롬어웨이>가 한국 초연을 펼친다. 남경주, 최정원, 이정열, 신영숙 등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컴프롬어웨이>는 2024년 2월 18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 (주)쇼노트
 
2001년 9월 11일, 비행기를 이용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테러가 미국 대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테러로 인해 주변을 비행하던 민항기들은 목적지에 예정대로 착륙하기 어려워졌고, 그렇게 38대의 민항기가 캐나다 뉴펀랜드의 작은 마을 '갠더'에 불시착한다. 졸지에 갠더 주민들은 마을의 인구만큼이나 많은 이방인들을 맞이하게 되며 혼란에 빠지지만, 그도 잠시뿐 이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조금씩 발견해나간다.

이러한 9.11 테러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컴프롬어웨이>가 한국 초연을 펼친다. '1세대 뮤지컬 배우'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남경주, 최정원을 비롯해 이정열, 서현철, 고창석, 신영숙, 차지연 등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되었고, 현석준, 나하나, 홍서영 등 라이징 스타들도 함께 한다. 11월 28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시작된 <컴프롬어웨이>는 2024년 2월 18일까지 관객들을 만난다.

그럼에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 사진
ⓒ (주)쇼노트
 
인간이 낯선 타인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편견을 갖는 것 또한 오랜 역사에서 늘 있었던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우리가 흔히 행하는 방어 기제의 하나로 '투사'를 제시한 바 있다. 우리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 충동이나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불안한 것이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나쁜 짓을 저지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낯선 사람과 조우했을 때 더 극대화된다.

멀리서 온(come from away) 사람들에게 갠더 주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가뜩이나 인접 국가에서 테러가 발생했고, 불시착한 민항기에는 이슬람교도도 타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오타와 같은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 갠더에 민항기들이 불시착하게 된 것을 한탄하는 주민에게 갠더의 시장 '클로드'는 "문제가 생겨도 처리하기 쉬우니까"라며 숨을 고른다. 그래도 일단 사람들이 왔으니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다.

자신들의 인구만큼이나 많은 이방인을 맞이하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각기 출신 지역이 달랐고, 사용하는 언어도 제각각이었다. 종교도 달랐고, 성적 지향이 다른 이들도 있었다. 갠더 주민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적잖은 불편을 느꼈다.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어려운 건 이방인들도 마찬가지, 종교의 차이 때문에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마땅히 기도할 곳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도 있었다. 갠더 주민들과 이방인들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간다.

그렇게 하루하루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다르다고 생각했던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려워하는 아프리카인을 발견했지만 언어가 달라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하던 갠더 주민은 어느 순간 아프리카인의 손에 들려있는 성경책을 발견한다. 언어는 달라도 성경은 같은 법, 곧장 아프리카인의 성경책을 펼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구절을 짚어 위로를 건넨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발견한 임신 상태의 갠더 주민은 자신의 아기방을 기꺼이 내어준다. 소방관 아들이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걱정하는 여성에게 한 갠더 주민은 자신의 아들도 소방관이라며 다가와 위로를 건네고, 유대인을 본 또 다른 갠더 주민은 자신도 유대인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처음에 갠더 주민들의 눈에는 차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시착한 이들에 대해 아는 것뿐이라곤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점점 서로의 사정을 알아가고, 공통점을 발견한다. 차이를 발견하려던 이들은 어느새 공통점을 발견하려 애쓰고, 이방인을 두려워하던 이들은 이제 이방인을 환대한다. 그런 면에서 1막의 마지막 넘버인 'Screech In'은 매우 상징적인데, 의례를 통해 이방인을 자신들과 같은 뉴펀랜드인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들이 발견했던 차이는 무의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 사진
ⓒ (주)쇼노트
 
재난은 참혹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기능을 갖는다. 재난이 야기한 고통에 동시대인들이 공감하고 서로 연대해 사회 통합을 실현할 수 있다. 나아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치적 고민이 가능해지고, 앞으로 다가올 재난을 예방하거나 대비할 수 있다. 불시착한 이방인들에 대한 갠더 주민들의 환대는 이런 재난의 사회적 기능이 바람직하게 구현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 듯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나 2022년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과연 성숙해졌는가? 쉽사리 긍정할 수 없다.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고통을 조롱하고 소비하는 이들도 있었다. 일각에선 각종 비아냥과 음모론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통합은커녕 분열됐고, 재난을 낳은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필자 역시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컴프롬어웨이> 속 갠더 주민들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재난에서 일상으로 돌아간 갠더 주민과 이방인들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달리다 멈췄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고백. 치열하게 일상을 살 땐 몰랐는데, 뜻하게 않게 일상의 시공간을 떠나 멈추게 되니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그럼 생각해보자. 멈췄을 때 이들은 무엇을 했는가? 주위를 둘러보고, 주변을 돌아봤다. 그제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걸 인식했고, 함께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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