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기업이 어쩌다… 건설업계 ‘패닉기브업’ 공포
시공능력순위 16위 중견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신청까지 가도록 탈이 난 건 공격적으로 늘려온 자체 개발(시행) 사업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건설업계 자금난이 더욱 심해지고 신규 개발 사업이 급감하면서 건설 경기 및 분양 시장 침체가 한층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발채무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참여한 시공사가 PF 대출 보증을 선 뒤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직접 떠안게 되는 빚이다. 기업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21일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A-(안정적)에서 A-(부정적)으로 어둡게 바꾸면서 ‘과중한 PF 우발채무’를 주요 이유로 들었다.
한국기업평가는 보고서에서 “동사(태영건설)가 사업 철수를 진행 중인 사업장과 관련해 차환(신규 채권 발행을 통한 기존 채권 상환)이 필요한 PF 우발채무 규모는 1조2565억원”이라며 “착공사업 중 지방자치단체 관련 청년주택 등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PF 우발채무 규모는 약 1조원”이라고 추산했다.
태영건설은 입장문에서 산은의 부실징후기업 지정으로 어쩔 수 없이 워크아웃을 선택하게 됐다는 인상을 풍겼지만 당장 이날 만기가 도래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오피스 개발 사업의 PF 대출 480억원을 상환하지 못했다. 태영건설은 이미 지난 18일이었던 만기를 열흘간 유예받았지만 끝내 상환에 실패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부도설’ 태영건설 “워크아웃 등 검토”).
성수동 오피스 PF 대출은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신용평가는 태영건설이 내년 4분기까지 갚아야 하는 부동산 PF 보증 채무를 올해 11월 말 기준 3조6027억원으로 추산했다. 우발채무가 9639억원인데 이 중 67.4%인 6492억원이 첫 삽도 뜨지 못한 미착공 사업에 걸린 빚이다. 태영건설은 총사업비 9600억원 규모의 성수동 오피스 개발 외에도 강원 강릉 남부권 관광단지 조성(1조5300억원), 경북 구미 꽃동산공원 민간공원 조성(1조2000억원), 대전 중구 유천동 주상복합 신축(5600억원), 충북 천안 제6 산업단지 조성(3700억원) 등에도 손을 댔지만 대다수가 착공도 못 했다.
태영건설이 시공사로 나설 때는 발주처로부터 공사를 따내기 위해 PF 대출 지급 보증 규모를 크게 잡은 것도 막대한 빚더미에 앉은 원인이다. 사업 주체인 시행사는 대개 영세해서 부동산 개발 자금을 조달할 때 시공사가 연대 보증을 선다. 금융권은 사실상 시공사를 보고 돈을 빌려주는데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실제 부담이 시공사에 돌아간다.
참여 방식이 어떻든 사업이 잘되면 돈을 벌었을 테지만 태영건설은 수도권보다도 지방 사업장이 많아 갑작스러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더욱 취약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자체 시행 사업은 손실이 고스란히 태영건설 몫이다.
태영건설은 “워크아웃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유지하면서 정상화를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채권단-공동관리기업 간 자율적 협의를 통해 단기간에 진행되므로 성공률, 대외 신인도의 회복, 채권 회수 가능성이 기업회생(법정관리)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주장했다.
또 “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신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기존 수주 계약도 유지할 수 있고 일반 상거래 채권은 정상적으로 지급된다는 장점이 있어 기업 영업활동에 큰 제약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워크아웃이 회사의 기사회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거 쌍용건설 벽산건설 남광토건 등 여러 건설사가 워크아웃을 개시하고도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법정관리에 들어가서도 정상화에 실패하면 청산(파산)으로 갈 수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방의 경우 PF 대출 못 막는 사업장이 많을 것”이라며 “건설사들이 개발 사업을 하려고 땅을 샀다가 착공을 못 하면 돈이 돌지 않아 75% 수준으로라도 경매에 내놓게 된다”고 말했다.
중견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은 더 작은 건설사들의 손발을 묶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1군 건설사 관계자는 “태영건설은 아파트 사업을 많이 안 하지만 중견업체고 ‘회사가 탄탄하다’고 했던 곳”이라며 “여기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건 지방 중소 건설사가 어려운 것과는 파장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건설업계 금융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내년 상반기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환경에서 (소규모) 건설사들이 ‘패닉 기브업’(혼란 속 사업 포기)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시장 전반에 불안감이 커져 주택 미분양으로 이어지며 악순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태영건설이 단독 혹은 컨소시엄으로 짓는 올해 분양 아파트는 경북 ‘구미 그랑포레 데시앙’(1350가구), 경기 ‘의왕 센트라인 데시앙’(532가구), 전북 ‘익산 부송 데시앙’(745가구), 광주 ‘더퍼스트 데시앙’(64가구) 등 4개 단지 2700가구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광주 더파크 비스타 데시앙’(1690가구)을 비롯해 4개 단지 3757가구가 공급돼 현재 공사 중이다.
태영건설은 “하루빨리 경영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워크아웃 절차를 성실히 이행해나가겠다”며 “더욱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태영건설로 거듭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태영건설은 민영 방송사 SBS를 소유한 태영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SBS 지분 36.92%를 가진 티와이홀딩스의 지분 27.80%를 보유하고 있다. 태영건설 위기로 인한 매각 가능성에 이날 SBS 주가는 장중 한때 17.3% 치솟았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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