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공들인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만났습니다

임명옥 2023. 12. 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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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노량>

[임명옥 기자]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극장에 가 영화를 보았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이 담긴 <노량>을 김한민 감독이 어떻게 담아냈을지 궁금했다. 

충무공에 대한 나의 관심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깊이감 있는 간결체의 문장 안에 한 인간으로서 이순신의 고뇌가 시대적 배경 속에 녹아들어 인상깊게 읽은 책이었다. 

그 후로 10년 전에 영화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왜선 130여 척을 격퇴시킨 역사적 사실을 스크린으로 마주하면서 전율이 일었고 작년에는 영화 <한산>에서 구선을 앞세워 왜군을 박살내는 장면을 보고 지키려는 자의 처절함을 느꼈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에는 용맹과 지략이 함께 있다. 세작을 통해 적의 동태를 파악해 적보다 앞서 보았고 적보다 먼저 가 닿았다. 장군이 전쟁에 임하는 태도는 뒷일을 계산하며 명예를 얻거나 높은 벼슬자리를 위함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겨야 한다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적을 알고 나를 알고 싸워서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영화 <노량>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는 철군을 명하고 죽는데 영화 전반부에서는 그의 죽음 후 고니시와 시마즈를 필두로 한 일본군의 움직임, 진린을 대장으로 세운 명의 움직임, 조선 조정이 바라보는 전쟁의 입장이 그려진다.

그들은 모두 철군하는 왜군을 조용히 돌려보내자는 입장이지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만이 왜군의 배를 조용히 돌려보낼 수 없다는 굳은 의지로 바다를 막는다. 모두가 일본이 철군하도록 바다를 내어주자는 의견에 장군은 한치의 타협도 없다. 나는 그런 장군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일본은 임진(1592)년에 군사를 몰고 부산으로 쳐들어와 7년 동안 우리 강토를 짓밟고 피로 물들였다. 백성들을 참혹하게 죽였으며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고통과 치욕을 안겨주었다. 짓밟히는 나라를 구해보려고 싸우다가 수많은 동료 장수들과 병사들이 눈앞에서 죽어갔다. 더구나 그들은 아산까지 숨어들어 장군의 셋째 아들 면을 칼로 베었다.

함께 싸우던 수많은 부하들과 아들을 죽인 그들을 장군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무자비함과 잔혹성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철군하도록 바다를 내어 준다면 그들은 언젠가 다시 쳐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장군은 일본의 야만성과 침략성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바닷길을 내어주면 안 되었다.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 안 되었다. 그렇게 노량에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왜군들과 그들을 돌아가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장군의 결기가 담긴 처절한 전투가 1598년 노량의 겨울 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수군을 훈련시키고 전함을 건조하면서 왜군의 침략에 대비해 힘을 길렀다. 육지에서 왜군이 강토를 피로 물들이며 20여 일 만에 한양까지 당도하는 동안 장군은 남해 바다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했다. 옥포에서 당포에서 한산에서 부산포에서 장군의 수군은 언제나 승리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의심 많고 시기심 많은 임금과 조정 대신들에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고초를 당하고 나서도 정유(1597)년의 가을 바다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훗날의 나라 걱정으로 그들에게 돌아갈 길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게 노량은 죽기를 각오하고 지키기 위해 싸운 장군의 마지막이 된다. 

둥, 둥, 둥, 장군이 치는 북소리는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지옥 같은 전투에서 조선 수군의 가슴에 울림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 조선 수군은 노량에서 왜군의 전선 200여 척을 침몰시킨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장군은 역사적 사실이 말해주듯 노량에서 53년의 생을 마감한다. 

스크린에서 김한민 감독은 하늘을 덮을 정도의 만장이 나부끼는 장군의 장례 행렬을 보여준다. 만가 소리와 함께 백성들의 울음소리를 들려준다. 장군을 잘 보내드리고 싶은 감독의 마음에 나도 눈물을 닦으며 공감했다. 

극장을 나오면서 오늘의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공동체를 지킨 이들의 희생 덕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지키려는 마음, 자신의 안위보다 큰 우리를 생각하는 그런 이들의 숭고한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한민 감독이 10년에 걸쳐 만들어낸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그래서 묵직하다. 그가 보여주는 장군의 전쟁을 따라가며 임진왜란의 상처와 백성들의 고초와 장군의 고뇌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노량>은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의미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임명옥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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