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삶기' 연구에 장장 4년, 무용해서 더 즐겁다네요

박정우 2023. 12. 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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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저자 박치욱 교수

[박정우 기자]

우리는 모두 좋든 싫든 공부라는 걸 한다. 살면서 그 무엇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몇 축복받은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에게 공부라는 것은 괴롭고,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영역에 속해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른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 퍼듀대학교(Purdue University)에서 생화학과 약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4만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트위터리안 박치욱. 화학과 생화학 박사로 연구 분야는 단백질 생물리학이며, 미국에 온 지는 29년, 퍼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는 19년이다. 아마 그가 트위터에서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지식 덕분일 것이다.

박 교수는 그간 자신이 천착했던 주제를 추려, 공부의 과정을 담은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를 최근 출간했다. 이 책에서 박치욱은 그간 자신이 탐험해 왔던 지식의 바다를 유유히 헤엄친다. 그리고 스스로를 즐겁게 하고, 더 재미있는 삶을 만드는 데 기여했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전에 어떤 트위터리안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트위터에서 일단 박치욱을 팔로우하면 뭐라도 배운다." 이번 박치욱의 신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를 읽다 보면 뭐라도 배운다. 지난 21일, 박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뭐 하고 놀았는지 쓰다보니 책이 됐습니다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표지이미지
ⓒ 웨일북
 

- 교수님 트위터를 보면 정치 사회 문화 과학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지적 유희가 펼쳐지는 놀이터 같다는 생각이다. 교수님에게 트위터는 어떤 곳인가?

"트위터는 언제나 내가 편한 시간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한국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또 교수라는 직업상 혼자 일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많다. 꼭 직업을 떠나 이 나이쯤 되면 사람을 만나도 한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 대부분은 각자의 경험에 갇혀 살기 마련이다. 그런데 트위터 덕분에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취미도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의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배우고, 살아온 궤적에 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트위터란 일종의 보물 찾기와도 같다."

- 최근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를 출간했다. 어떤 책인지 저자가 소개한다면?

"사실 공부라고 했지만, 내가 미국에서 심심하게 살면서 뭐하고 놀았는지를 썼다고 보는 게 맞다. 새로운 걸 접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더 알고 싶어 파고들면서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여러 번 겪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대학 교수가 쓴 책이라 공부 더 하라고 하는 거냐 하는 이들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 공부는 그런 공부가 아니다. 책 서문에도 명확하게 밝혔는데 가치와 무관한 공부, 이유가 필요 없는 공부, 그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그런 공부에 대해 썼다."
   
- 개인적으로 음식 파트가 재미있었다. 이걸 보면 언제나 일정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맛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을 찾아내고, 심지어 김치 담그는 방법을 1년에 걸쳐 정량화한다. 삶은 계란의 껍질이 잘 까지지 않는 것에 대해 '극대노'하여 장장 4년에 걸쳐 계란 삶는 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웃음)

"역시 이유는 없다.(웃음) 요리든 뭐든 문제가 있으면 내가 한번 풀어보고 싶어지는 성향인 것 같다. '왜 안 되지?', '왜 막혔지?', '어떻게 하면 맛있어지지?' 이런 궁금증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 해결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면 아주 신난다. 이런 신나는 경험을 하면 더 도전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삶은 계란.
ⓒ 픽사베이
 
- 판화가 이철수 선생의 작품 중에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라는 글이 있다. 자연을 대하는 교수님의 관점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편으로 이런 태도가 이철수 선생은 삶에서 나온다면, 교수님은 앎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알게 되면서 다르게 보게 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 준다면?
"자연에 관한 공부가 가장 대표적인 것 같다. 내가 일하는 학교 약대 주변에 나무가 하나 있는데, 예전에는 그냥 나무였다. 그러다 내가 자연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게 되면서 그 나무가 모감주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찾아보니 한국과 중국이 원산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살던 나무가 언제, 어떻게,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여기까지 와서 너무 예쁘게 잘 자라고 있구나 싶어 뭉클해졌다.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웃음) 그렇게 십 년이 넘게 이 학교를 다니면서 이제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다. 만약 내가 그 나무가 모감주나무라는 걸 몰랐다면 아무 의미나 느낌이 없었을 거다."
 
 퍼듀대학교 모감주나무
ⓒ 박치욱
 
- 책을 읽으며 '공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부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 나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한 수단 정도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교수님의 그 공부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쓸데없고, 무용해 보이는데?

"사실 내가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가 항상 무언가를 공부하고, 학습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야구를 좋아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 경기를 보고,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규칙이나 전략을 꿰고 있다. 다만 이런 학습이 학교 성적과는 무관해서 그걸 공부라 부르지 않는 것뿐이다. 나는 무언가를 항상 공부하고 해결해 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뭔가에 빠져들 때 행복하다. 빠져들 게 없으면 삶이 무료하고 괴로워진다. 그렇게 빠져 있으면서 새로운 걸 찾거나 만들어내면 금상첨화다."

두 사회를 경험하다 보니 깨닫는 것들

- 한편 트위터에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데, 최근에는 넥슨 사태와 관련한 글이 이슈가 되기도 했고, 평소에 올리는 글을 가지고 '남페미'라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한국에서도 살았고,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이렇게 두 개의 사회를 경험하다 보면 한 사회에서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다른 사회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걸 체감한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회 안에 있는 가치관, 문화, 전통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보게 되면서 '이런 건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관점으로 트위터에 글을 쓰곤 하는데, 그게 이슈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미국 사회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인데, 그게 어떤 한국 남성들에게 '극렬 페미니스트'로 불릴 만큼 과격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왜 그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실 인간에게는 감정적인 욕구와 필요(emotional needs)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는 자존감, 성취감, 안정감 같은 것들이 포함되는데 이러한 감정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정말 살기 힘들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만 인정하는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감정적인 욕구가 충족이 안 되고 있다. 그 와중에 여성의 인권, 여성의 권익을 이야기하면 자기가 가진 무언가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사회가 각박해지는 거다. 지금 반페미니즘 사태도 그런 현상이 아닐까 싶다."
 
 박치욱 교수
ⓒ 박치욱
 
- 정서적 불만족 상태의 청년들에게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라는 조언을 건네도 괜찮을 것 같은데? (웃음)

"책을 통해서 20~30대의 젊은 청년들과 교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물론 정서적인 불만족이나 여러 불안과 같은 문제들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민하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점진적이고, 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나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자신의 정서적인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보고 고민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20~30대 때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고, 굉장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 자괴감, 좌절감, 불안을 똑같이 겪었다. 사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더 잘할 자신은 없다. 다만 무용하고 쓸데없는 공부들이 그런 힘든 과정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준 건 분명하다. 청년들이 이 책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저자로서 정말로 보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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