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까지 은행 막힐라"…태영건설 워크아웃에 건설업계 초긴장
“은행 지원이 막힐까 봐 걱정이 큽니다. 당장 금융권에서 태영건설보다 규모가 작은 중견·중소 건설사에 대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 연장을 꺼릴 수 있어요.”
28일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태영건설 악재가 도미노처럼 번질까 두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공능력 16위의 태영건설이 이날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하자 건설 업계가 ‘초긴장’ 상태에 빠지는 분위기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앞으로 태영건설 협력업체로 위험이 확산하고, 해당 업체를 낀 사업장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다”며 “이래서 한 군데가 무너지면 그 파장이 업계 전체에 퍼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설 업계에선 대형 건설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자금조달 능력이 떨어지는 시공능력 50위권 아래 중소 건설사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PF 대출 부실과 관련해 우선 지원에서 ‘옥석 가리기’로 정책 방향을 튼 것도 부담이다.
최근 3~4년 새 주요 건설사들의 PF 대출 보증 규모는 큰 폭으로 늘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자체 유효등급을 보유한 건설사 중 PF 보증이 존재하는 16개사의 PF 보증액은 총 28조3000억원이었다. 2019년 15조6000억원이던 PF 보증은 이듬해 16조1000억원, 2021년 21조9000억원, 지난해 26조1000억원으로 불어났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착공·분양으로 이어져 문제가 없지만, 불황 국면에서 시행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 PF 대출을 보증한 시공사가 채무를 떠안게 된다. 이게 부동산 PF 우발 채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는 리스크가 큰 시행사에 대해선 보증을 잘 안 하는데, 중견 이하 건설사는 그렇게라도 안 하면 수주를 하기 어려우니 보증을 서는 사례가 많다”며 “2~3년 전 부동산 시장이 좋을 때 태영건설처럼 무리하게 PF 대출 보증을 한 곳은 상황이 악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다른 건설사로 유동성 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 올해 초에도 ‘이안’ 브랜드로 알려진 대우산업개발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건설, 대창기업, 신일 등이 회생절차에 들어간 바 있다.
업계에선 코오롱글로벌·신세계건설·동부건설 등에 대한 PF 우발 채무 우려가 나온다. 현대건설·GS건설·롯데건설 등 대형 업체의 PF 대출 보증 규모도 적지 않다. 다만 대형 건설사의 경우 매출 규모가 크고, 충당금도 여유가 있는 만큼 부실 우려는 적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날 주요 건설사들은 자금 경색 우려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여는 등 분주하게 돌아갔다. 시공능력 30위권 한 건설사 임원은 “PF 사업장에 대한 검토를 거쳐 사업성이 확실한 곳만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0위권 건설사 관계자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매우 보수적이고 선별적으로 수주에 나서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지나친 위기감 조성은 지양해야 한다는 호소도 많았다. 가뜩이나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데 착공으로 넘어가려던 사업장도 좌초될 수 있는 만큼 이 위기를 차분하게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전체 건설 산업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없다”며 “대기업보다 중견·중소·지방업체가 더 취약한 만큼 이를 고려한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도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면 PF 부실 악순환이 계속되는 만큼 주택 공급 대책도 병행돼야 한다”며 “금융 당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국토교통부가 거래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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