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왕의 기도터에 황룡 한 마리가 누워 있었네
[이완우 기자]
▲ 성수산 삼청동 태조 기도터 원경 |
ⓒ 이완우 |
임실 성수산(聖壽山, 876m) 상이암에는 팔공산(八公山, 1151m) 도선암 창건 설화가 상이암사적기(上耳庵事蹟記)에 전해온다. 도선(827~898)국사가 팔공산 기슭에서 구룡쟁주(九龍爭珠) 풍수지리 형국을 살펴보고 기뻐하며, 임금을 맞이할 천자봉조(天子奉朝)의 성지라고 하여 도선암(道詵庵)을 창건(875년)하였다.
도선은 곧바로 송악(개성)으로 올라가서 해상 무역 세력의 호족인 왕융(王隆, ?∼897)의 가문을 찾았다. 왕융의 가문에서 곧 삼한을 일통할 영웅이 태어날 터이니 팔공산 도선암에서 기도를 드리라고 권하였다고 한다. 왕건(877~943)은 17세(894년) 때 이곳 팔공산 도선암을 찾아서 기도하고 목욕을 하던 중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는다. 왕건은 이곳에 환희담(歡喜潭)이라는 글씨를 바위에 새겼고, 24년 후에 고려를 건국했다.
▲ 삼청동 왕의 기도터 전망대 |
ⓒ 이완우 |
고려 말 동북면에서 성장한 군벌 세력의 계승자인 이성계(1335~1408) 장군은 1380년에 남원 운봉에서 황산대첩으로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하면서 팔공산 도선암에 이른다. 장군이 이곳에서 하늘에 기도하는 중에 용이 나타나 세 번 몸을 씻겨주는 발용대몽(發龍大夢)을 경험하였고,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성수만세(聖壽萬歲)라며 축원을 세 차례 하였다고 한다. 장군은 기쁜 마음에 '하늘, 산과 물이 맑다' 하여 '삼청동(三淸洞)' 글씨를 바위에 새겼고, 12년 후에 조선을 건국했다.
▲ 삼청동 왕의 기도샘 |
ⓒ 이완우 |
성수산 상이암 도량은 고려와 조선의 개국 설화 배경지로서 환희담 비석, 삼청동 비각과 구룡쟁주 풍수지리 형국의 중심인 여의주 바위가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기도터는 상이암 위쪽 계곡의 거친 너덜겅 지대를 지나 600m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이곳에 바로 접근하는 길도 없어서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숨겨진 장소이다.
왕의 기도터를 찾아가는 가장 빠른 길인 성수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곡길의 분기점에서 지장재계곡길로 방향을 잡았다. 12월 하순 눈이 내려서 성수산 산록에는 적설량이 20cm가 넘었다. 겨울 산 등산에 눈이 덮여 보이지 않는 바위 틈새를 조심하고, 잎과 줄기에 눈이 쌓여 좁은 산길을 막은 산죽 군락지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컸다.
▲ 삼청동 왕의 기도터 암자와 칼바위 |
ⓒ 김진영 |
전망대에서 왕의 기도터에 접근하려면 험한 너덜 지대를 건너며 덤불숲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기도터 주위는 찬바람도 없고 겨울 산속답지 않게 포근했다. 집채 만한 바위 아래에 기도샘에서 맑은 물이 샘 솟고 있었다. 기도터에는 비워진 암자 건물이 한 채 있는데, 오래전에 멈춘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암자 건물 뒤에 태조 기도터였음을 확인하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앞면 글자]
朝鮮太祖高皇帝祈禱處(조선 태조 고황제 기도처)
[표지석 뒷면 글자]
一九九二年八月十五日(1992년8월15일)
開國六百年記念日(개국 600년 기념일)
太祖高皇帝御筆三淸洞碑閣(태조 고황제 어필 삼청동 비각)
重修委員會 謹立(중수위원회 근립)
▲ 삼청동 왕의 기도터 표지석 ⓒ 이완우 |
'천지가 암흑이 되고 지축이 흔들리는 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며 직각으로 우뚝 선 불기둥이 장군에게 달려들었다. 불기둥이 너무 밝아서 눈을 뜰 수 없었고, 이성계 장군 홀로 외로이 불기둥과 대적해야 했다. 장군이 칼로 힘차게 불기둥을 내리치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 뜨거운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장군이 눈을 뜨고 깨어나자, 몸과 마음은 깃털처럼 맑고 가벼웠다.' -(발췌 요약) <성수산 왕의 숲> 2022년. 임실문화원
용이 꿈틀 솟아나올 듯한 형상
▲ 삼청동 왕의 기도터 칼바위 |
ⓒ 이완우 |
이성계 장군의 꿈에 불기둥이었던 칼바위에 손바닥을 대어 보았다.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를 불기둥의 열기를 느끼고 싶었다. 기도터 암자 마당에서 칼바위의 앞면을 보려면 다시 약간의 모험을 하여야 했다. 눈 덮인 험한 지대를 수십 미터를 돌아서 칼바위 앞면으로 다가갔다. 기도바위 앞에 서서 바위를 올려다보며 그 위용에 감탄하다가, 바위 아래의 원통형 긴 암맥을 보면서 벼락을 맞은 듯 전율이 일어났다.
칼바위 아랫부분의 바위틈에 길이 7m, 원통형 지름 0.8~1.0m의 거대한 암맥이 꿈틀거리는 형상이었다. 거대한 황룡 한 마리가 바위를 힘차게 뚫고 세상으로 나오며 박진감이 넘치는 듯하였다.
▲ 삼청동 왕의 기도터 칼바위 황룡 형상 암맥 |
ⓒ 김진영 |
왕의 기도터를 떠나며 기도샘을 다시 살펴보았다. 김진영 씨는 이 기도샘이 이 지역 둔남천의 발원지라고 주장한다. 이 용천수(湧泉水)의 기도샘은 산기슭 너덜강 아래를 흐르다가 계곡물을 이루어 상이암의 삼청동 비각과 성수산 휴양림 왕의 숲을 지나 25km를 흘러서 오수천과 합류하는 섬진강 상류이다. 태조 기도샘에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1장과 제2장의 가사를 읊어 보니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의미가 더 새로워지는 듯하다.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 하시니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새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새 내히 이러 바랄에 가나니
▲ 성수산 등산 지도 |
ⓒ 이완우 |
왕의 기도터를 찾아가면서 성수산 등산로의 지장재 능선으로 가는 길은 상이암에서 2.5km 거리였다. 태조 기도터의 기도샘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상이암에서 기도터까지 600m의 짧은 거리이지만 이곳에는 현재 길이 없다. 옛 지도에는 상이암에서 곧바로 지장재로 오르는 산길이 표시되어 있었다. 상이암에서 왕의 기도터로 오르는 길이 열리고, 이 길 중간에서 지장재로 오르면 성수산 정상의 등산로가 더 짧아지는 효과도 있겠다.
▲ 성수산 정상 연화봉 보현봉 원경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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