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의 연애 취향? 이토록 소중한 TMI라니
[이진민 기자]
취향을 찾다 못해, 전시하고 브랜드로 삼는 세상. 너만의 취향을 찾아보라며 과소비 독촉하는 커머셜 광고들에 '취향'이란 두 글자가 바래졌다. 애초에 취향이란 나 자신을 찾기 위함인데 관심사, 가치관, 정체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쌓아 올리면 무슨 소용일까. 그러니 이 남자의 취향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취향의 정수다. 삶을 던져야만 꺼낼 수 있었던 그의 보석 같은 취향.
대한민국 최초 커밍아웃 연예인, 탑 게이, 안전한 오빠. 그를 향한 수식어는 넘쳐나지만, 대부분 유머와 차별 사이에 아슬하게 걸쳐있어 이 시대에 부를 만한 적확한 호칭이 필요하다. 유튜브 웹 예능 <홍석천의 보석함>이 그 답을 건넸다. 남다른 미남 탐지 능력 덕에 사람들은 그를 '미남 감별사', '미남 공인인증서'라 칭한다. LGBT로서 취향을 드러낸다는 것, 홍석천의 취향 전시는 절대 사소하지 않다.
▲ 유튜브 채널 <홍석천의 보석함> 화면 갈무리 |
ⓒ Youtube |
시작은 홍석천의 인스타그램. 5천 명이 넘는 그의 팔로우 목록에는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 미남이 많다는 입소문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졌다. 이후 '홍석천이 SNS 팔로우하면 뜬다', '홍석천은 미남 인증 공인서다'라는 누리꾼들의 증언에 홍석천은 몇 년간 모은 미남 보석들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홍석천의 보석함'을 만들었다.
웹 예능 <홍석천의 보석함>은 잘생긴 남자만 출연할 수 있는 토크쇼다. 호스트 홍석천은 탑G(탑 게이) 자아를 숨기지 않는다. 과감하게 파인 의상으로 나타나 얼굴, 키, 매력 등 자신만의 기준에 입각하여 고른 미남 게스트를 소개한다. 그의 성 정체성은 영상 곳곳에 녹아 있다. 홍석천의 시선에 빙의해 게스트 외모를 감상하는 '외모 자랑' 코너, 게스트가 홍석천에게 스킨십할지 혹은 당할지 고르는 '마지막 관문'까지 오직 LGBT 호스트만이 가능한 프로그램 구성이다.
특히 홍석천의 취향을 다루는 방식은 기존 예능과 확연히 다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홍석천이 이상형이나 취향에 대해 언급하면 주변 남성 연예인들은 경계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반대로 여성 연예인들은 '안전한 오빠'라며 편하게 대하는 에피소드는 줄곧 반복되어 왔다. 그의 취향을 존중하기보단 '게이는 아무 남자나 좋아한다', '게이는 여성스럽다' 등 LGBT를 둘러싼 편견을 유희적 요소로 재현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홍석천의 보석함>에선 게스트와 제작진 모두 누군가의 평범한 취향으로서 청취하고 도리어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며 홍석천을 칭찬한다. 시청자 반응도 마찬가지다. "여기 출연하면 미모 공식 인증받은 것이다", "호스트와 시청자 모두 행복한 콘텐츠다", "연예인에 입덕하기 좋은 프로그램이다" 등 긍정적인 평가가 대다수다. 보석함이란 명칭처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취지가 색다르다는 평이다.
▲ 홍석천 커밍아웃 당시의 헤드라인 |
ⓒ 일간스포츠 |
<홍석천의 보석함>이 환영받는 데에 변화한 시대가 한몫한다. 2000년 9월, 홍석천은 자신이 게이라며 연예계 최초로 커밍아웃했다. 언론은 "난 호모다", "난 남자가 좋아요" 등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앞세웠고 커밍아웃과 동성애를 향한 혐오가 쏟아졌다. 그는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3년 동안 방송 출연이 끊겼다. 복귀 이후에도 그를 향한 차별적 시선은 그치지 않았다.
2019년 JTBC2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출연해 커밍아웃과 둘러싼 '악플'에 대해 털어놓으며 "홍석천은 그냥 홍석천이고 개인적인 취향이 다른 건데 이름 앞에 뭔가가 붙는다. 나라는 사람의 진정성을 어디까지 보여드려야 할까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커밍아웃한 지 2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커밍아웃 2호 연예인'이 없다는 점이 현실의 벽을 체감하게 한다.
시대는 점차 변화했고 중심에 홍석천이 있었다. 홍석천은 "청소년 게이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주고 싶다"는 다짐처럼 <메리 퀴어>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 <엄마 나 왔어> 등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해 커밍아웃 이후 겪은 어려움과 성소수자로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연예계와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 LGBT의 존재성을 가시화했다.
2023년의 미디어에는 더 많은 LGBT가 등장하고 있다. 예능인 '풍자', 유튜버 '김똘똘', '단하나' 등 LGBT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나'로 존재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물론 활동 영역이 넓은 LGBT 예능인이 드물고 여전히 많은 성소수자들은 아웃팅과 악플을 염려하여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먼 훗날 '퀴어 프렌들리' 예능계를 기대하게 한다.
▲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화면 갈무리 |
ⓒ CHANNEL A |
"석천이 형만큼 내 삶의 가치를 위해 싸워본 적이 있었나?"
지난 2021년 11월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정형돈이 꺼낸 고백에는 홍석천의 삶이 담겨 있었다. 이날 정형돈은 홍석천을 보며 크게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홍석천이 울컥 눈물을 보였던 이 말에는, 누군가에겐 처음부터 주어진 평범한 삶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평생을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가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겹게 묻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가 홍석천에게는 이토록 오래 걸렸을까. 그에게 남자 취향을 묻고, 온전히 답하기까지 23년이 걸렸다.
삶을 걸어야만 누군가를 좋아하고, 자신의 취향을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그토록 '취존(취향 존중)'을 외치고 나만의 취향을 찾으라고 보채면서, 정작 누군가의 성적 지향은 음소거 되는가. 나는 홍석천의 취향 전시를 열렬히 응원한다. 그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지겹게 듣고 싶다. 투쟁하며 지켜낸 홍석천의 보석함, 어쩌면 가장 먼저 넣어야 할 보석은 그 자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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