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신년 인터뷰 | “숲으로 잘사는 글로벌 산림강국으로 지평 넓힐 것”
남성현 산림청장에게서 듣는 새해 산림정책
기존 재난방지와 산업화 강화하며 탄소배출권 확보·빅데이터 정보공개 등 추진
선진 산림과학기술로 ODA 시혜국으로… “산림 정책에 대해 국민 공감 키울 것”
'숲으로 잘사는 글로벌 산림강국.’ 2024년부터 산림청이 새롭게 추구하는 정책 목표다. 종전까지 산림청은 ‘숲으로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아가겠다고 했다. 그 범위를 글로벌로 확장한 것이다. 12월 11일 여의도 산림비전센터에서 만난 남성현 산림청장은 이 분야 고수(高手)다운 명확함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짚었다. 안전과 경제라는 기존의 업무 외에도 탄소중립 시대에 어떻게 산림청이 기여할 수 있을지, 산림정책의 디지털·스마트·빅데이터 촉진 그리고 국제적 산림협력 확대로 시야를 넓혔다.
남 청장은 “2023년이 국토녹화(綠化) 50주년이었다. 이 시기에 맞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강원세계산림엑스포 개최라는 상징적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제는 지난 50년의 교훈과 성과를 바탕으로 산림청이 ‘앞으로의 50년’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접어들었다. 50년 전 한국이 ‘산림선진국’ 독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듯, 이제 우리나라가 후발 국가들에 돌려줄 차례가 왔다는 의미로 들렸다. 어느덧 한국은 독일의 ‘숲전략 2050’ 이행에 동참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올라왔다. 캐나다에서 대형 산불이 났을 때에는 산불진화대가 최초로 파견됐다. 우리의 산불 대응 역량이 세계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의 지향과도 부합한다.
“산림 분야도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산림청은 2023년까지 유엔(UN)에 가입한 195개국 중 39개 국가와 산림협력을 체결했다. 2024년부터는 산림녹화 기술만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터득한 선진 산림과학 기술로 지평을 넓혀갈 것이다.”
산림청은 이미 한국의 산림과학 기술이 세계 10위권이라고 자평한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2011년 UN 사막화방지협약당사국총회, 2015년 세계산불총회, 2022년 세계산림총회 등 국제대회를 여러 번 개최했다. 전 세계 산림에 관한 정부와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는 말처럼, 양묘 기술, 숲을 가꾸는 기술, 산림재난 대응, 생명공학 등에서 우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산림 분야에서도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갈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부터 시작할 것인가?
“일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에 집중할 것이다. 산림이 많지만 훼손된 지역이 있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나도 수행원 중 한 명이었다. 이때 맹그로브 열대림을 보호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1월 7일부터 17일까지 동티모르와 피지 등 태평양 섬나라들도 방문한다.”
다섯 가지 정책 목표 중에서 첫 번째로 ‘기후위기 시대에 산림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 숲을 지키는 것’을 꼽았다.
“연간 161조원의 경제적 가치, 259조원의 공익가치 등 우리 숲은 420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1년에 우리가 심는 나무가 2만 헥타르인데, 불로 타버린 면적이 2만2000헥타르다. 아무리 탄소중립, 경제, 환경, 사회적 가치를 높이려 해도 산불이 나면 하루아침에 산이 전부 잿더미가 된다. 재난이 발생하면 요양시설이나 위락시설, 마을, 농지 등 도시 기능까지 타버린다. 산불·산사태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산림재난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지 않나?
“산사태는 그런 측면이 있지만, 산불은 아니다. 대부분의 산불 발생 원인은 인간의 사소한 부주의로 일어난다. 물론 ‘산불 제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 대신 인명 피해 제로를 위해 노력한다. 1번이 인명, 2번이 시설 그리고 마지막이 숲을 지키는 순서다. 이제 산불은 산림청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산림청이 컨트롤타워가 돼서 행정안전부, 소방청, 각 지자체, 국방부 등 기타 유관기관이 협력하는 것이 급선무다. 산림청장 취임 후 이것이 잘되면서 산불이 여러 번 났어도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산림재난방지법 제정 추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기존의 산림보호법은 순수하게 산림환경, 산림생태계 쪽으로 가고, 재난은 산림재난방지법에서 관할하도록 하는 것이다. 2023년 12월 국회 상임위까지가 있는데, 정치 상황 때문에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2024년까지는 대피명령제 등이 포함된 법을 제정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산사태, 막을 순 없지만 피할 순 있다’
“2024년부터는 주의보와 경보 사이에 예비 경보가 도입된다. 지금은 ‘주의보 때 대피 준비, 경보가 떨어지면 대피’다. 이랬더니 시골의 어른들이나 노약자들이 대피소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짧더라. 그래서 산사태 주의보와 경보 사이에 예비 경보를 신설해 이동할 시간을 마련했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만든 산림청의 캐치프레이즈가 ‘산사태, 막을 순 없지만 피할 순 있습니다’이다. 이에 맞춰 대비소도 정비하고 있다.”
임도(林道)도 산림재난방지법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것인가?
“그렇다. 임도는 산의 동맥이고 핏줄이다. 다만 임도를 만들면 산사태에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산사태 취약 지역에는 아예 안 내고, 내더라도 산사태 예방시설을 의무화했다. 아울러 ‘임도시설 타당성평가’를 하도록 개정했다. 산림 과학자, 환경 전문가, 지역주민 대표, 이해관계자들이 다 참여하는 평가를 2024년부터는 더욱 강화하도록 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임업인의 소득 안정, 산림복지 서비스 강화 등을 2024년 정책 목표로 내걸었다.
“전국에 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220만 명이다. 그분들이 자율경영을 할 수 있도록 취임 후 지난 2년간 300여 건의 규제완화를 이끌어냈다. 행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60% 이상 다했다. 나머지 40%는 국회에서 법이 바뀌어야 될 사항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규제완화가 산림훼손이 아니다’라는 국민적 인식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느냐 여부다.
“우리나라 인구 5000만 명이 1년에 생활하기 위해 3000만㎥의 나무를 사용한다. 3000만㎥는 1t 트럭으로 3000만 대 분량이다. 여기서 15% 정도만 우리나라 나무다. 85%는 외국에서 수입한다. 수입액은 달러 가치에 따라 변동하지만 적어도 7조원 이상이다. 반면 선진국은 최소한 40% 이상의 목재를 자급한다. 일본만 해도 얼마 전까진 우리나라와 비슷한 비율이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탄소중립이 화두로 떠오르니까 국산 목재 비율을 높였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42%의 목재 자급률을 기록했다.”
결정적으로 어디서 이런 차이가 비롯됐을까?
“우리나라에 목재가 없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전부 목재를 쓰면서 정작 베지 못하게 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서는 보존해야 될 숲은 30%이고, 나머지 70%는 나무를 심고 가꾸고 베고 이용한다. 산림경영은 ‘나무를 심고, 복원하고, 재조림하고, 가꾸고, 이용하는’ 것이다.”
산림청은 시대의 화두라 할 탄소배출권 확보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국가 목표로 잡은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가 2억9100만t이다.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에 할당이 됐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여기서 산림 분야가 2030년까지 3200만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 11%를 메워주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기업은 (탄소배출량에 구애받지 않고)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무를 가장 많이 심는 기업이 어딘지 아나? SK임업이라는 회사다. SK임업이 따낸 탄소배출권을 SK그룹 내에서 상쇄할 수 있다. 그렇게 하고도 남는 탄소배출권을 주식처럼 시장에서 매매할 수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는 아직 초창기라 개인 차원에선 힘들다. 국가가 대행을 해주거나 SK임업 같은 큰 회사가 규모의 경제로 탄소배출권을 모아 거래할 수 있다.”
국내와 국외에서 활동을 병행할 수 있겠다.
“국제적으로 개발도상국 산림황폐화 방지사업(REDD+)에 참여한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의 의무 할당에 관한 ‘RPS’ 제도가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석탄은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는 늘려야 한다. 하지만 풍력과 태양광은 지역 주민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산림바이오매스 에너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한 목재 자급에 관해 우리 국민들이 OK만 해주면 벨 수 있는 자원은 충분히 있다.”
“목재는 가장 저항감 적은 신재생에너지”
“임도를 확대하는 부분, 국민들이 나무 베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공감대만 갖춰지면 단계적으로 갈 수 있다. 일단 수요 부분에선 국가 주도로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목재친화 도시를 실천하고 있다. 일본, 독일, 캐나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공공기관 건축물은 자기 나라 나무를 쓰도록 하는 법이 있다. 우리는 현재 ‘권장사항’이다. 국산 목재를 많이 쓰려면 생산 코스트를 낮추면서 공급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목조 건축에 관한 규제완화도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는 화재 때문에 18m 높이에 5층 이상은 짓지 못하게 했었다. 하지만 이제 세계적으로는 86m까지 올라갔다. 예를 들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은 2018년 18층짜리 목재 기숙사 건물을 올렸다. 엘리베이터를 제외하면 전부 목재다. 우리나라도 2020년 11월 국토부에서 층수 제한 관련 규정을 없앴다. 그럴 수 있는 기술력도 갖췄다. 산림청 공공기관인 한국임원진흥원이 2026년 대전으로 내려간다.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은 내년 상반기 7층 목재 건물을 완공한다.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서울에서도 종로구청이 목재 건축에 관심이 각별하다.”
남 청장은 2024년 산림경영과 관리에 있어서 디지털화, 스마트화, 빅데이터화를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초연결사회에서 현재 산림 행정은 과도기에 있다. 예를 들어 산림자원 조사를 할 때 일일이 사람이 가서 나무 높이와 부피를 잰다. 한편에선 센서가 달린 차로 한 바퀴 임도를 돌면 임목에 관한 기록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있다. 산림청은 이를 ‘디지털 트윈 포레스트’라고 지칭한다. 이를 테면 국립산림과학원에서 AR, VR 기술로 A라는 산을 빅데이터화한다. 가상공간에서 임도도 내보고, 벌채도 해보고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현장에 가서 실제 포레스트를 접하는 것, 시뮬레이션으로 가상의 포레스트를 접하는 것을 트윈 포레스트라고 부른다.”
산림청은 이런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개방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산사태 정보 시스템, 산불 정보 시스템 등을 활용해서 자원 조사부터 산림 재난까지 통합할 수 있는 데이터들을 통합해 나갈 것이다. 가령, 백화점에서 95사이즈 옷을 찾는데 없다면, 어떤 매장에 내가 원하는 컬러와 사이즈의 옷이 있는지 찾아보고 구해주는 것을 ‘포인트 오브 세일’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아이디와 패스워드만 있으면 통합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행정안전부와 협의하고 있다.”
“산림 데이터 개방, 산업화 기회일 수 있어”
“산림청은 이미 구축돼 있는 로(raw) 데이터, 행정공공 데이터를 2025년까지 100% 개방하겠다는 방침이다. 개인정보보호법과 국가 안보에 관련된 상황을 제외한 모든 정보가 해당된다. 현재 각종 산업정보, 산림 정보, 숲 정보에 대한 정보 공개 비율은 72%로 추산된다. 이 수치를 2025년 말까지 완전 개방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일상생활이 윤택하게 된다.”
어떤 순기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나?
“공공 데이터가 개방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를 얻으려면 인맥을 통해야 한다. 하지만 정보가 공개되면 각종 산악 정보가 다 들어 있는 산악 내비게이션, 등산 내비게이션에 누구든 무료로 접속할 수 있다. 예전에 ‘김기사’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업체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산업화할 수 있겠다’며 관심을 갖더라. 그렇다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산림청’을 바라는 듯하다.
“내 페이스북 친구가 5000명이다. 누군가 이를 두고 ‘늘 깨어 있는 산림청’이라고 부르더라. 산림청장 페이스북만 연결하면 강원도 산골에서도 산림청의 동향을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글은 길게 쓸 수 없으니까 임팩트 있게 쓰려고 한다. 그대신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글 아래에 관련 사이트나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는 표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시기적으로 2024년은 윤석열 정부 3년차로 국정과제의 성과가 창출될 타이밍에 해당한다. 이 구간에서 산림청의 비교우위는 수장인 남 청장 이하 구성원 전원의 컨센서스가 정립돼 있다는 점이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남 청장의 지치지 않는 설명을 들으며, 산림 행정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가령 탄소배출권 확보와 임도, 산업화 같은 키워드는 각기 괴리된 가치 같지만, 그 의미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가 잘될 때 나머지 부분까지 파급력을 미치는 개연성을 지닌다.
새벽 3시에 떠오르는 좋은 정책
대화 말미에 남 청장은 “꼭 좋은 생각은 새벽 3시쯤에 떠오르더라”며 웃었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디어를 잠결에라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계속 되새긴다. 어딘가로 휘발되기 전에 아침이 되자마자 산림청 간부 12명이 들어 있는 단톡방에 올려 공유한다. 남 청장은 “내가 그들에게는 ‘휴일도 없이 글을 올릴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며 웃었다.
산림에 관해서라면 어떤 질문이 나와도 남 청장은 막힘이 없다. 그는 “국내외적으로 인정 받는 산림강국이 되는 것이 산림청의 궁극의 목표”라고 단언했다. 그 여정 끝에 닿는 목적지가 곧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과 포개진다고 남 청장은 믿고 있었다. 인생의 8할을 산림 분야에만 투신한 전문가이지만, 남 청장은 ‘일타강사’라는 수식어를 오히려 더 반기는 듯했다.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게, 우리나라 산림 행정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하고픈 욕구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 청장이 남긴 당부에서도 그런 바람이 여실히 묻어났다. “일반 독자들에게 부드럽게 읽혔으면 합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 녹취정리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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