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C제일은행, 70대 시각장애인에 ELS 6천만원 팔았다

김지훈 2023. 12. 28. 14: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생 예금만 해온 노인에 ELS 권유
“한 번도 손실 난 적 없다” 유인
70대 “은행원 말대로 서류 썼다” 주장
[국민일보 DB]


1949년생인 A씨(74)는 2년 전인 2021년 “보통 예금보다 좋은 이자를 주는 상품이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서울 강동 지역의 한 SC제일은행 지점을 찾았다. 조씨는 시각장애인 2급으로, 외출 시 안내견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수준의 시력을 갖고 있다.

A씨는 담당 프라이빗뱅커(PB)에게 여러 차례 걸쳐 “노후자금이고, 원금손실이 없는 상품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이 직원은 “한 번도 손실이 난 적 없는 상품”이라며 ELS(주가연계증권) 상품을 권했다고 한다. A씨는 “여기에 서명하고,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하세요”라는 직원의 말에 따라 3년 만기 6000만원 상당의 ELS에 가입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입 이후 홍콩 H지수가 반토막 나며 A씨는 대규모 원금 손실 위험에 처했다.

이처럼 SC제일은행의 한 지점에서 70대 시각장애 2급의 A씨에게 홍콩 H지수 연계 ELS 상품 6000만원어치를 판매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A씨 측은 시각장애인인 70대 노인에게 은행이 무리하게 위험상품을 권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나는 한평생 예금만 해온 사람”이라며 “ELS는커녕 주식투자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A씨가 은행에서 작성한 투자적합성검사 서류. A씨 측은 직원이 '여기에 표시하세요'라고 안내하는대로 서류를 작성하거나, 아예 직원이 대리로 서류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A씨 제공


ELS 같은 고위험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상품 가입 전 ‘투자적합성검사’를 진행해 실제 위험한 투자에 적합한 성향을 지녔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은행이 ELS를 판매하기 위해 A씨에게 정해진 답을 유도했다는 입장이다. 담당 직원이 미리 “여기에 체크하세요”라는 식으로 답변을 유도하거나, 아예 대리로 서류를 작성했다는 게 A씨 측 주장이다.

ELS 계약서에 고지된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 이해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A씨가 은행원의 ‘형식적인 서류에 불과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만 믿고 작성했다”고 말했다.

ELS 가입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은행 측 녹취록과 관련해 A씨는 “직원이 무조건 ‘네 이해했습니다, 동의합니다’라고 말하시면 된다”고 안내했다고 했다. 은행원이 A씨 지인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크게 써서 눈앞에 갖다 대주세요”라고 부탁했다는 말도 나왔다. 또 A씨가 녹취 도중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녹취를 중단하고 A씨 입에서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만 녹취를 했다는 주장도 했다.

A씨가 은행에서 작성한 ELS 계약서. A씨 측은 직원이 '여기에 표시하세요'라고 안내하는대로 서류를 작성하거나, 아예 직원이 대리로 서류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A씨 제공


이 ELS는 홍콩 H지수라는 주가지수와 연계돼 수익을 내는 파생결합상품이다. 한마디로 홍콩 증시가 얼마나 좋고 나쁘냐에 따라 수익이 결정된다.

평시에는 대규모 손실이 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최근 몇 년간 홍콩 증시가 냉각되며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양적 완화에 힘입어 2021년 1만2000을 넘어섰던 홍콩 H지수는 이날 오후 1시 기준 5706.13에 거래 중이다. 고점과 비교하면 반 토막도 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이 판매한 H지수 ELS 가운데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만 9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이미 6조2000억원이 지난 3분기 기준 손실 구간(knock-in·녹인)에 들어섰다. 이 중 5조9000억원은 내년 상반기 만기를 맞는다.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두고 불완전판매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9일 “은행들이 고위험 상품을 고령자에게까지 무리하게 판매한 게 적절했는지 의문”이라며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상 ‘적합성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당시 “은행들이 고객이 묻기도 전에 판매해 놓고 자필 서명, 녹취 등을 운운하며 피해 예방 조치를 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 면피”라며 “고객이 서명하고, ‘네, 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해서 (불완전 판매의)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SC제일은행 측은 “금감원 지시에 따라 해당 상품이 판매된 경위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조사가 끝나는 대로 당국에 보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