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보증’으로 무리한 수주…16위 건설사 태영은 왜 무너졌나

김원 2023. 12. 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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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했다. 태영건설이 이달까지 갚아야 하는 대출 규모는 3956억원에 이른다. 내년 4분기까지 1년 사이에 만기가 도래하는 PF 보증 채무는 3조6027억 원에 육박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뉴스1


태영건설이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했다.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워크아웃 신청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적용되는 첫 사례다. 이날 만기인 서울 성동구 성수동 오피스2 사업장에 대한 480억원의 대출 연장에 실패하면서 워크아웃 신청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시공능력 16위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건설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태영건설은 1973년 윤세영 회장이 세운 태영개발이 모태다. 1980년대 말 1기 신도시 조성 사업 등에 참여해 성과를 거두면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확보한 자금으로 1990년 국내 첫 민영방송 사업자로 선정돼 서울방송(현 SBS)을 설립했다. 이후 건설업(태영건설), 방송사업(SBS), 환경사업(에코비트) 등 사업 다각화에 성공하며 재계 서열 40위로 성장했다. 이 가운데 태영건설은 여전히 그룹 내에서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박경민 기자

창업주 윤세영 회장은 2019년 아들 윤석민 회장에서 회장직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손을 놨지만, 태영건설이 올해 자금난에 빠지며 이달 4일 경영에 복귀했다. 그러나 90세 ‘왕회장’ 복귀도 허사가 됐다.

태영건설이 무너진 것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태영건설은 ‘데시앙’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보유했지만, 주택 사업보다는 군부대 이전 사업 등 대규모 복합개발 사업에 강점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개발사업이 시행과 시공을 병행하는 구조라 주로 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 왔다.

한 건설사 임원은 "태영건설의 경우 주택 사업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국내 개발 사업 위주로 매출을 올려온 탓에 ‘시행 리스크’에 노출된 것”이라며 “시공권 확보를 위한 PF 보증 등 우발채무도 자금난을 부추긴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건설 업계 관계자는 “태영건설이 부동산 시장 활황기에 무리하게 사업 수주를 진행한 것이 악수가 됐다”며 “최근 정부에서 부실한 부동산 PF 사업장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천명하면서 자금난에 빠진 태영건설이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고금리 등으로 인해 침체한 현재 부동산 시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지 못하면 결국 제2, 3의 태영건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영건설은 공교롭게도 2019년 경영권 승계 이후 매출이 줄고 부채가 쌓이는 등 재무 상태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2018년 매출은 3조6911억원에 달했으나 이후 3조원을 밑돌았으며 지난해는 2조605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18년 4582억원에서 지난해 915억원으로 급감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태영건설의 차입금은 1조9300억원, 부채비율은 478.7%이다.

박경민 기자


PF 보증액 역시 지난 2020년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오피스텔과 지식산업센터, 상가 등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벌인 탓이다. 현재 태영건설은 구로 지식산업센터, 성수동 오피스1·2·3개발 사업, 강릉 남부권 관광단지 등 다양한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으로 금융권이 대출·채무보증 등을 보유한 태영건설 참여 PF 사업장은 60개로, 브릿지론 사업장이 18개, 본PF 단계는 42개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이전까지 활황이었던 부동산 시장 상황에서 과도하게 사업을 확대하거나 리스크 관리가 충분치 못한 기업들이 더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워크아웃 신청으로 태영건설이 시행, 시공한 사업장 수분양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주택 30가구 이상을 선분양하는 사업 주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분양보증을 받기 때문에 수분양자들에게 분양대금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HUG가 사업권을 회수할 수 있다. 공정률이 80%를 넘었으면 환급하지 않고 HUG가 직접 시행자가 돼 분양을 이행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미 지불한 중도금 대출에 대한 이자는 HUG의 보증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태영건설의 분양계약자와 협력업체에 대한 보호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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