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집이데…" 찜찜한 열쇠공 녹취 땄다, 도어락 사건 전말 [사건추적]

김민주 2023. 12. 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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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락 이미지. 연합뉴스

“우리 집 맞으니까 도어락 교체해주세요.”
지난 22일 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 출입문 앞에서 20대 여성 A씨가 열쇠공에게 이같이 요청했다. 그는 “오랜 기간 해외에 다녀왔는데 비밀번호가 먹히지 않는다”며 열쇠공을 불렀고, 기존에 설치된 도어락을 뜯어 새것을 설치했다. 열쇠공은 미심쩍은 마음에 A씨가 하는 말을 녹음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A씨는 이 집 거주자가 아니었다. 실제 집주인은 이튿날인 23일 여행을 다녀왔다가 현관에 설치된 엉뚱한 도어락을 보고 신고했다. 집주인은 “비슷한 피해가 예방되면 좋겠다”며 이 같은 사실을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올려 화제가 됐다


“우리가 살 집” 말에 경기도서 부산 왔다


28일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27일 A씨를 불러서 한 차례 조사했다. A씨가 일명 로맨스 스캠(Romance Scamㆍ거짓된 애정 관계를 형성해 돈을 뜯어내는 수법의 사기) 피해자로 보인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A씨는 범행 한 달 전 본인 SNS 계정에 메시지를 보내며 접근해온 남성 B씨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카카오톡을 통해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자신을 교포라고 소개한 B씨는 “곧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간다”며 A씨에게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 등을 제안했고,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에게 약 2000만원을 건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B씨는 “결혼하면 우리가 살 집”이라며 A씨에게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아파트 주소를 알려줬다. 실제 이 집은 B씨와 아무 관련이 없는 집이다. B씨가 A씨 거주지인 경기도와 먼 부산의 집 주소를 임의로 일러준 것으로 의심된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사전에 알리지 않고 찾아와 연락하자 B씨는 당황했고, 그 사이 A씨가 열쇠공을 불러 도어락을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A씨는 타인이 거주하는 흔적이 확인되자 문자 메시지로 B씨에게 따진 뒤 집을 나와 경기도로 돌아갔다고 한다.

경찰은 주거침입ㆍ재물손괴 혐의로 A씨를 입건했다. A씨가 B씨에게 실제 돈을 건넸는지 등 미심쩍은 부분은 추가로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로맨스 스캠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A씨에게 신고하라고 안내했다. A씨가 실제로 B씨 집이라고 믿어 도어락을 교체한 거라면 재물을 손괴한 고의성은 등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확인 의무 없다” 열쇠공은 처벌 면해


한편 A씨 요청에 따라 도어락을 교체한 열쇠공은 처벌받지 않는다. 경찰은 참고인 자격으로 열쇠공을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도어락 교체를 요구하는 A씨 음성 녹음도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행법상 열쇠공에겐 고객 정보 확인 등 의무가 없으며 처벌할 근거도 없다.

1년 전 부산에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2월 17일 40대 노숙인 C씨가 열쇠공을 불러 연제구에 있는 오피스텔 도어락을 교체하고, 집 안에 드러누워 잠을 자다가 집주인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와 노숙 생활을 하던 C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한 당시 경찰은 “열쇠공이 공범일 가능성이 없으며 형사 책임을 지울 법적 근거도 없다”며 열쇠공을 입건하지 않았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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