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도 못 그만두는 일터라니, 현대판 노예가 이런 걸까

김성호 2023. 12. 28. 10: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 210] 이란주 지음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김성호 기자]

아마도 5년 전 지금쯤이겠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배, 항해사 중 제일 막내인 삼항사가 한국인 선원들의 집주소를 적어오라 했다. 추석선물을 보내기 위해서다. 서류를 들고 배 안을 오가다 필리핀 부원과 만났다. 그가 물었다. "우리는 선물 안 주지?" 나는 비정규직인 나도 못 받는다며 멋쩍게 웃었다. 고작 몇 만 원짜리 명절선물, 모두에게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한국인과 외국인을 나누어서 구별하는 이 회사의 정책이 몹시도 못마땅했다.

2018년, 나는 인도양을 돌아 한국과 서아시아, 유럽 등지를 오가는 상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국내 굴지 기업의 자동차운반선으로, 평택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을 잔뜩 실어서 해외로 보내는 게 일이었다. 한국 차만 다루는 것은 아니어서 항해 중에 이런저런 회사 차량도 잔뜩 싣고는 했다. 가끔은 탱크와 장갑차 같은 무기들도 있었다.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탄 배에서 나는 실습 항해사였다. 항해사는 항해와 화물관리를 책임지는 직책이다. 선장 이하 일항사와 이항사, 삼항사로 나뉘는데, 실습 항해사는 항해사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봐야 할 것이다. 항해사가 항해와 통신, 화물관리와 사무업무까지를 관장한다면, 선박의 기술적인 업무는 기관부에 속한 기관사의 몫이다. 배에선 항해사와 기관사를 묶어서 사관이라 칭했다. 선장과 기관장 이하 열 명이 되지 않는 사관은 전원 한국인이었다.

이주노동자 100만... 이들은 '우리'인가 '그들'인가  
 
 지난 2019년 8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에 차들이 대기 중인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당시 배에는 한국인이 절반, 외국인이 절반이었다. 외국인은 거의 필리핀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는데, 대부분 부원 직급이었다. 부원은 사관 명령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이다. 군대로 치면 병사쯤일 텐데, 배에서 필요한 온갖 잡다한 업무가 이들 몫이었다. 실제 기계를 다루고 선박 유지보수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했다. 부원들을 직접 통제하는 갑판장이며 조기장 같은 직급은 한국인이 수행했다. 필리핀인들은 부원 중에서도 하급 부원이었다. 폐쇄된 선박이지만 사관과 부원들은 주활동 구역부터 업무가 다 나뉘어 있어 두 집단은 한 배에서도 깊이 엮일 일이 많지 않았다.

나같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자라온 이가 외국인과 일하는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주민 노동자가 갈수록 는다고는 하지만, 배에서 사관과 부원의 영역이 나뉘어 있듯이 서로 일하고 사는 공간은 분리돼 있는 게 현실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반에서 외국인과 함께 지내본 사람이 아닌 사람보다 훨씬 더 적다.

나도 그때까진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배에 올라서야 나는 처음으로 외국인이 맡고 있는 한국 산업의 한 영역과 마주했다. 그때 내가 느낀 불편의 뿌리를 나는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를 읽으며 마주했다.
 
▲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책 표지
ⓒ 한겨레출판사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는 한국에서 일하는 스물네 명의 이주민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이란주씨가 직접 만난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이주민들의 국적은 필리핀과 베트남,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중국, 일본 등으로 주로 한국의 농촌과 공장에서 일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수기 형식으로 꾸려진 책엔 일터와 삶 가운데서 마주한 불평등과 부조리가 생생하게 담겨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독자를 민망하게 한다.

책에는 수많은 사례가 등장한다. 한국인 엄마와 파키스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군복무까지 했음에도 차별적 시선을 자주 받는 청년, 법무부 체류기간 요건에 맞지 않아 미등록 상태로 살아야 하는 베트남 소녀, 영화에 나오는 악당이 온통 조선족이란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는 한국에 사는 중국동포 청소년 등의 사연이다. 독자가 삶 가운데 좀처럼 마주한 적 없을 다양한 이야기가 생생한 글로 전해지는 과정이 낯설지만 특별한 감흥을 준다.

더욱 흥미로운 건 한국 사회에서 한 번도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 나아가 폭력이 이들 앞에는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다. 캄보디아에서 온 미니어는 경남 밀양의 깻잎농장에서 3년 넘게 일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하고는 종일 일하고 받은 돈이 고작 189만원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으로 계산하자면 매달 60만원씩 떼인 셈이다.

내겐 안 보이던 차별, 이들에겐... 농약 뿌리다 불임, 감금에 협박까지 

더 황당한 건 그 다음이다. 일 잘하는 미니어가 마음에 든다며 계약을 연장하다던 사장이 계약만료가 1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그녀를 불러다가는 갑자기 연장을 못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한국 법은 일하던 회사와 연장계약을 체결하면 1년10개월의 비자연장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회사를 옮길 경우 1달 이상이 남아야만 비자를 연장해준다. 1달이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불가를 통보받은 미니어는 비자연장이 되지 않아 강제출국을 당하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게 되는 것이다.

사장은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듯 미니어에게 월 160만원만 받고 재계약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기숙사비 20만원에 건강보험료까지 제하면 종일 일하고도 12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수중에 들어왔다. 미니어는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허가제라 불리는 E-9 비자로 입국한 미니어는 이 비자 규정에 따라 최초 고용 사장의 허가 없이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이 비자로 입국한 다른 동료는 사장에게 100만원을 주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고, 미니어에겐 그보다도 많은 대가를 요구했다. 미니어가 100만원을 주겠다며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전하자, 사장은 이렇게 말했단다.

"너 데려오는데 돈 많이 들었어. 너는 100만 원 갖고는 안 돼."

오늘날 한국에 노예제가 있다면 이런 걸까. 한국사회에서 노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건 1894년 갑오개혁 때였고, 다시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헌법이 보장한 기본적 인권을 침해받는 노비며 노예는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뿌리 뽑히기에 이르렀다. 때때로 '염전 노예' 등 사회적 이슈가 터져 나올 때도 있었지만 전 국민적 반감과 직면해 법의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 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한국사회에 노예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선에선 외국인 선원들의 여권을 빼앗는 사례가 보고되고, 농촌 지역에선 열악한 시설의 숙소를 제공하며 도시보다 비싼 값을 받아 챙긴 사실이 확인되곤 한다. 심지어 미니어의 사례처럼 법의 허점을 악용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몸값까지 받아 챙기는 악덕업주가 있는 것이다.
 
 지난4월 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쇠사슬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보장 등을 위하여 근로시간과 휴일, 임금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법 제63조는 '토지경작, 식물재배와 채취, 동물사육, 수산물 채취와 포획 등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따로 구분하여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휴일 규정 적용에서 배제한다. 이 같은 업무가 대부분 이주민 노동자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업주가 이들을 착취할 수 있도록 법이 허용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 24명 사례가 실린 이 책 가운데는 미니어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이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미니어는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업주와 법적 싸움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수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며 종일 일하고 또 일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만나고 기억하는 한국의 모습이라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스리랑카에서 이주해 12년 동안 한국에서 용접노동자로 일한 니로샨도 딱한 사정을 가졌다. 그는 고용허가제라 불리는 E-9비자로 입국해 숙련기능인력을 칭하는 E-7 비자를 따낸 노동자다. 앞서 적었듯 E-9비자는 사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다른 회사를 찾을 수도 없다. 가족의 방문도 안 되고 일시 관광조차 까다롭다.

온갖 어려움 끝에 겨우 E-7 비자를 땄지만 니로샨은 여전히 제가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 회사의 용접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숙련된 용접공이지만 월 200만원의 최저임금만 받고 일한다. E-7 비자를 딴 뒤 이직을 하려 했지만 출입국사무소에선 사장의 동의 없이는 직장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최저임금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단 걸 깨달은 니로샨은 회사의 업무에 정성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수시로 마주한다고 털어놨다.

온갖 어려움 끝에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결성을 추진한 이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강제추방 조치와 노동조합 신청 반려 등에도 불구하고 대법원까지 가는 싸움 끝에 마침내 탄생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바로 그것이다. 법외노조에서 합법노조가 되기까지 10년4개월이나 걸렸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노조에 보고된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를 열거한다.

미니어의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업주가 100만원, 200만원을 요구한 경우는 흔하기까지 하다. 폭발사고로 동료들을 잃은 뒤 외상후 스트레스(PTSD)를 겪는 노동자가 사장에게 일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 독한 농약살포 업무로 괴로워하던 노동자가 불임이 된 사례, 용접가스로 고통 받다 그만두려 한 노동자를 코로나환자로 몰아 감금하고 협박한 사례 등 '현대판 노예노동'이라 불러도 좋을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런 악조건과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청구한 고용허가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 기각했다. 과연 한국사회가 이주민 노동자를 노예가 아닌 사회구성원으로 대하고 있는 것인지, 이쯤 되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도 책에는 참담한 사례가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축산과 어업, 농업, 건설이며 공업과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이주민 노동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오늘의 한국에서 살아오면서도 이들의 목소리를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외면해왔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이주노조 조합장 우다야 라이는 말한다. "이주노동자 24만 명을 족쇄로 묶어놓고 얻는 부끄러운 이익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해서 얻는 공정한 이익이 더 클 것"이라고 말이다.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한국에 대한 애정과 제 노동에 대한 자긍심을 앗아가는 현실은 언제고 우리 자신을 겨냥한 비수가 될 것이다. 인구구조 붕괴로 이주민 노동자와의 더욱 긴밀한 공존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금, 한국사회는 하루빨리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전환해야만 한다.

한국인도 외국 나가면 이주노동자인데
 

책을 읽으며 수시로 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IMF 이후 실직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홀로 미국에 가신 아버지, 비싼 비행기 값 탓에 7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못하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제 청춘을 바친 미국이란 나라를 여적 좋아하신다. 때때로 웃으며 그 시절을 회상하신다.

물론 그곳이라고 차별이 없었던 것은 아닐 테다. 그러나 법과 사람들이 아버지를 동등한 사람으로, 노동자로 대해주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시절을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보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내 아버지를 한국이 미니어나 니로샨을 대하듯 대했다면 나는 그 나라를 결코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5년 전 배 위에서 마주했던 필리핀 선원들을 떠올린다. 제 가족을 위하여 먼 바다로 나와 고된 일을 마다치 않는 그들이 종종 마주했던 부당함들을 떠올린다. 그들을 향하여 아무렇지 않게 '저들은 제 나라로 돌아가면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고 '그러니까 이 정도 차별은 괜찮다'고 말하던 이들을 떠올린다.

한국인과는 다른 계약으로, 하청에 하청을 거쳐 절반도 되지 않는 임금을 지급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그때의 우리를, 스스로를 반성한다. 최소한 우리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미 '우리' 중 하나이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함께 읽어요!! 2023 경남의 책' 장려상 수상작을 일부 수정해 실은 것입니다.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