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눈의 나라'를 내 눈으로 직접 마주했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홋카이도와 혼슈는 3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둘을 오가는 육로가 있죠. 다리는 아닙니다. 둘 사이에는 해저 터널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코다테(函館)와 아오모리(青森)를 잇는 터널입니다. 터널의 이름은 두 도시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세이칸(青函) 터널이라고 불립니다.
원래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는 배로만 왕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락선 침몰 사고 등으로 육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죠.
▲ 해협을 건너는 페리 |
ⓒ Widerstand |
세이칸 터널은 차로는 왕래할 수 없습니다. 오직 기차만 다니고 있죠. 2016년 홋카이도 신칸센이 개통한 뒤에는 일부 화물열차를 제외하면 신칸센만 터널을 오가고 있습니다.
한 번쯤 통과해보고 싶은 터널이었지만, 저는 페리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하루에 10여 편이 하코다테와 아오모리를 오가고 있습니다. 어쩐지 한 섬을 떠나 다른 섬에 들어간다는 감각을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 세이칸 페리 |
ⓒ Widerstand |
모두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도시들입니다. 동해에 면해 있는 도시죠. 사실 도호쿠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는 반대편, 태평양에 접해 있는 센다이입니다. 하지만 저는 북쪽 루트를 택했습니다.
굳이 대도시인 센다이를 피해 동해에 접한 도시들을 여행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작은 도시들을 보고 싶었고, 더 느린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 아오모리의 눈 |
ⓒ Widerstand |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1968년이었으니,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었죠. 도호쿠를 내려오며, <설국>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설국>도,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작가도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화려하고 탐미적인 문체가 유명하지만, 제가 그리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저는 그 다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를 좋아했습니다. 두 작가는 전후 일본 문학계의 대척점에 서 있던 인물이니, 둘 모두를 좋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죠.
▲ 아키타의 공원 |
ⓒ Widerstand |
아키타에 도착해 작은 미술관과 공원, 오래된 성의 유적을 돌아봤습니다. 그 사이에도 눈은 끝없이 내렸습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었습니다.
더 남쪽으로 내려와 <설국>의 배경인 니가타에 오니, 그곳은 오히려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올 겨울 일본은 남북의 기온 차이가 아주 심하다는데, 아마 이제 그 더운 남쪽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니가타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습니다. 눈 대신 비가 오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일본은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인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는 것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작은 도시는 분주할 것도 없이 차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충분함과 충만함
저도 그에 묻혀, 오래된 일본식 집을 개조한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습니다. 가끔 우산을 들고 동네를 산책했습니다.
▲ 비오는 니가타의 신사 |
ⓒ Widerstand |
눈과 비가 섞인 도시에 오니, 일본 열도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지르고 있다는 느낌이 선명합니다. 니가타는 그 경계에 선 도시였습니다.
저도 이제 '국경의 긴 터널'을 넘을 때입니다. 높은 산맥을 넘는 터널을 지나면, 이제 곧 도쿄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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