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부터 영국까지 세계를 홀린 한국의 맛, 그 비결은 [쿠킹]
#런던브릿지 근처의 작은 골목길에 자리한 레스토랑. 이곳의 테이블엔 고추장, 감태 등 한국 식재료를 가미한 요리들이 오른다. 2022년 미쉐린 가이드 런던에서 별 1개를 받고 2년째 유지 중인 유러피언 다이닝 ‘솔잎(sollip)’이다. 박웅철 셰프와 페스츄리 셰프인 아내 기보미씨가 2020년 문을 열었는데, 이곳의 좌석을 채우는 손님의 대부분은 영국 현지인이다. 박웅철 셰프는 “오픈 무렵 외국에서 한국의 문화 및 한식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아지고 있었기에 더 시너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손님들은 영국의 식자재에 한국 재료로 포인트를 넣은 요리를 맛본 후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맛이라고 칭찬한다”고 말했다.
#뉴욕의 중심가인 맨해튼, 문 앞에 있는 웨이팅 리스트엔 예약 없이 찾은 방문객(walk-in)들이 등록하느라 분주하다. 청담동의 핫플로 이름을 알린 한식당 ‘호족반’이 미국에 낸 첫 번째 매장이다. 오징어 샐러드, 주꾸미 볶음, 들기름메밀국수, 감자전, 갈비 등 호족반 스타일의 한식을 파는데, 웨이팅 시간이 평균 1시간 30분~2시간 정도인 데다 한 달 치 예약이 마감됐다. 맨해튼에 위치한 호텔 롯데 뉴욕 팰리스에서도 한식은 인기다. 코리안 윙과 코리안 바베큐, 소주로 만든 서울-풀마티니 등 한국적 헤리티지를 담은 메뉴를 찾는 현지인이 많다. 호텔 관계자는 “고객들은 조금이나마 한국의 맛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을 즐기며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식이 미식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맛집 평가서만 봐도 알 수 있다. 미쉐린가이드를 예로 들면 2011년 미국 뉴욕의 ‘단지’가 한식당 최초로 별을 받은 이후, 세계적으로 별을 받은 한식당은 현재 31곳으로 늘었다. ‘월드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도 한식당의 활약은 눈에 띈다. 미국 뉴욕의 ‘아토믹스’는 2021년 43위로 월드50 베스트 레스토랑에 진입한 이후 꾸준히 순위가 상승해 세계 8위에 올랐다.
해외의 주요 매체도 한식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식의 인기를 특집으로 다루며 “한국 셰프들이 뉴욕의 하이엔드 레스토랑을 지배하며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프랑스 고급 요리의 시대를 종료시켰다”고 평가했다. 중요한 건 한식이 하루아침에 반짝인기를 얻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유명 요리학교를 졸업하거나 세계 주요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실력을 쌓은 셰프들은 탄탄한 기본기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요리에 담아내며 차별화를 꾀했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블루리본 서베이 김은조 편집장은 “한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을 때 현장에서 그에 걸맞은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셰프들이 있기에 미식 시장에서 한식이 주목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셰프들은 각국의 유명 셰프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한식 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한식의 밝은 미래를 이끌고 있다. 유튜브 영상을 촬영해 한식의 이해를 돕거나 한식의 철학과 레시피를 담은 책을 내기도 한다. 강민구 셰프는 2024년 3월 아티장을 통해 한국의 장을 소개하는 책『JANG(장)』을 출간할 예정이다. 강민구 셰프는 “밍글스를 열고 10년 동안 늘 맛을 고민했는데, 장은 밍글스뿐 아니라 한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재료라는 점에서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다”며 “한식이 어렵지 않다는 메시지와 좋은 장을 선택하고 그 장을 활용하면 누구나 맛있는 한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평소 즐겨먹는 김치, 김밥·떡볶이 같은 분식, 집밥 레시피도 해외에서 인기다. 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과 건강을 중요시하는 식문화가 퍼지면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예부터 채소와 이를 발효한 음식을 즐겨 먹었던 한식이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한식이자, 전통발효식품인 김치의 높아진 위상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19로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김치의 면역 효과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김치 수출국은 사상 최대인 93개국으로 늘어났다. 높은 인기에 제조업체도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 중이다. 대상 종가는 2022년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로스앤젤레스 현지에 김치 공장을 세웠다. 현지 공장에서는 전통 김치의 맛을 살린 오리지널 김치를 비롯해 글루텐프리, 비건 등 현지 식문화와 트렌드를 반영한 김치를 선보인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식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음식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 배경엔 K 컬처가 있다. 드라마·영화·SNS를 통해 등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영상에 나온 떡볶이·만두·라면과 한국식 치킨 등 우리가 흔히 접하는 한식 메뉴들이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아이돌이 라이브 방송에서 떡볶이 먹방을 선보이거나,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떡볶이를 언급하면 덩달아 떡볶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식이다. 여기에 식품업체들이 가공식품 형태의 제품을 출시하며 한식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동원F&B가 2015년 출시한 ‘떡볶이의 신’은 2019년과 2020년 각각 일본과 미국의 대형마트에 입점하며 현지인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여기에 글로벌 인증 기준에 맞춰 상온에서도 10개월까지 유통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 수출도 용이해졌다. 그 결과 해외 현지 판매액이 2018년 11억원에서 2022년 80억원으로 늘었다.
한식의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 다양한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한식진흥원은 지난 6월부터 딸기·고추장·전복·표고버섯 등 수출유망품목이 돋보일 수 있는 신메뉴 레시피 15개를 만들고, 레시피 영상 등을 제작해 한글과 영어 버전의 e북을 제작했다. 한식의 고급화를 위해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와 주옥의 신창호 셰프, 온지음의 조은희 방장과 박성배 셰프 등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레시피 개발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최근 국내외에서 인기 있는 한식당이 정통 한식이 아닌 퓨전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에 김은조 편집장은 “정통이 아닌 퓨전, 컨템포러리는 비단 한식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교류가 활발해지고 셰프들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해지면서 다양한 컨셉의 요리가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송정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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