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최고의 절경 노렸던 중국 자본... 이렇게 막아냈습니다 [제주 사름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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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기자]
▲ 김정임 ‘송학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 대정읍 모슬포가 고향인 김 대표는 송악산이 더 이상 개발의 유혹에 시달리지 않고, 알뜨르 비행장과 함께 자연과 문화 역사가 숨 쉬는 공간으로 보존되기를 바라고 있다. |
ⓒ 황의봉 |
송림사이 길을 따라/산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바다를 향해 몸을 던진 단애에서/비릿한 바람이 불어온다/서쪽의 어느 바다에서 휘몰아쳐/남북으로 갈라진 형제섬을 돌아온 바람이다
신용균 시인의 '절울이 오름'이란 시의 첫째 연이다. 절울이는 바다의 물결이 산허리 절벽에 부딪혀 크게 울린다는 뜻이다. 파도가 우는 오름.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어찌 파도소리 뿐인가.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붉은 색의 화산송이가 쌓여 또 하나의 이름이 됐으니 절울이 오름은 곧 송악산이다.
송악산에 서면 동쪽으로 거대한 종 모양의 산방산이 우뚝하다. 바다 쪽으로는 물속에서 두 개의 바위섬이 불쑥 솟아올랐으니 바로 형제섬이다. 그리고 가파도가 지척이고 아스라이 조각배 형상의 마라도가 떠 있다. 104m 높이의 송악산은 자연휴식년제로 탐방이 제한된 정상부보다는 해안 절벽 위로 난 둘레길에 찾는 이들의 발길이 붐빈다.
송악산 둘레길은 적당하게 가파른 언덕과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노라면 발아래 오른쪽으로는 이중화산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광이 눈길을 끈다. 초원지대에 방목하는 말들이 눈에 띄고, 산허리에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검은 소나무' 곰솔과 야자수가 보인다. 제주올레 10코스가 가장 인기를 끄는 이유도 바로 이 송악산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 송악산 둘레길 해안절벽 위로 난 길을 포함해 3㎞에 달하는 송악산 둘레길은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이고, 이중화산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제주도 최고의 해안절경으로 꼽힌다. |
ⓒ 황의봉 |
제주도 최고의 해안경관으로 꼽히는 이 송악산에 개발의 회오리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중국 자본이 달려들었다. 주민들이 일어섰고 마침내 송악산을 지켜냈다. 최근 송악산은 이웃한 알뜨르 비행장 부지와 연계한 평화대공원 조성 계획이 발표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송악산 개발반대 투쟁의 선봉에 섰던 김정임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를 만난 건 지난 12월 13일 알뜨르에서 86주기 난징(南京) 대학살 제주 추모제를 치른 지 며칠 후였다. 이날 추모제에서 김정임 대표는 '여는 인사'로 추모제 첫 발언자로 나섰다. 난징 대학살 희생자를 제주에서 추모하게 된 배경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37년 8월 15일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무차별 공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공격기 편대가 오키나와의 오무라 기지에서 발진해 난징을 폭격하고 급유를 위해 제주 알뜨르 비행장에 착륙하게 됩니다. 난징 대학살의 어두운 그림자가 처음으로 제주에 드리워진 순간이었지요. 그리고 다음 날인 8월 16일부터 11월까지는 이곳 알뜨르에서 직접 발진했다고 합니다. 하루가 멀다고 적게는 몇 대, 많게는 20대를 동원했다고 해요. 모두 50여 회에 걸쳐 알뜨르 비행장에서 발진해 700㎞ 떨어진 난징에 폭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13일 30만이 사망했다는 난징 대학살이 발생한 것이에요. 지금 알뜨르 비행장에 가면 당시 폭격에 나섰던 비행기 모형이 전시돼 있습니다.
당시 우리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바로 이곳에서 출격해 엄청난 폭탄을 퍼붓지 않았습니까. 이런 역사를 기억하면서 희생자들에게 추모와 연대의 마음을 보내기 위해, 그리고 일제를 규탄하면서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 추모제를 연 것이지요. 13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는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오셨습니다.
난징학살 제주 추모제는 올해로 10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도 지지와 연대를 보내오고 또 직접 참가하기도 합니다. 올해에는 유네스코 평화연구위원장인 난징대학교 류쳉 교수를 비롯해 오키나와, 캐나다 등지에서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와 저희가 현장에서 낭독했습니다. 전에는 난징대학교 학생들이 추모제에 온 적도 있었고요. 앞으로 난징학살과 관련해 일본 중국 대만 등의 시민들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만들어봐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난징 대학살 제주 추모제 지난 12월 13일 난징 대학살 86주년을 맞아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앞에서 제주도내 13개 단체 공동주최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
ⓒ 난징을 기억하는 사람들 |
"1926년 무렵 처음 비행장을 건설할 당시에는 알뜨르 부지에 6개의 자연부락이 있었어요. 그런데 일제가 이곳에 살던 주민들에게 눈곱만큼 보상해 주고는 강제로 이주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면 해방이 된 후에는 원래 주인한테 돌려주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돌려주지 않고 국방부 차지가 돼버린 겁니다. 지금까지 국방부가 계속 소유해 왔는데, 일부 땅을 매각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 부지의 면적을 흔히들 100만 평이라고 합니다만, 일제가 초기에는 20만 평 정도를 빼앗아 군사시설을 만들다가 점점 전쟁이 확대하면서 해방 무렵에는 80만 평에 이르렀다는 게 공식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현장에 가면 농사 짓는 땅을 볼 수 있는데 농민들이 임대해서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 부지를 제주도로 넘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국방부가 거부하다가 결국 제주도가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국방부와 10년마다 사용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땅이 국방부 소유가 돼 개발행위가 제한되면서 이토록 넓은 부지에 일제의 전쟁시설 흔적들이 남아 있게 된 것이에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라는 겁니다. 학자분들은 알뜨르 비행장의 전쟁유적들과 송악산까지 해서 복합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많이 하고 계시죠."
평화대공원은 대정읍 상모리 알뜨르 비행장 부지와 인근 송악산을 연계해 조성한다는 방침이 발표된 상태로 제주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김정임 공동대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평화대공원에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시설은 최소화하고, 대신 사람들에게 이 지역이 전쟁기지로 사용되어야 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살상을 겪어야만 했던 역사적 아픔을 잘 담아내 평화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교육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공원'에 방점을 찍어서 즐기고 노는 시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정읍에서도 26개 단체가 모여 평화공원 대정읍 추진위원회가 발족했으니까 앞으로 토론을 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회원을 좀 더 확대하고 체제를 정비해서 평화대공원 조성에 대안을 제시해 볼 계획입니다."
▲ ‘평화대공원’ 토론회 알뜨르 비행장을 제주 평화대공원으로 조성하는 과정에 도민들이 참여해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의 장이 지난 1월 27일 펼쳐졌다. |
ⓒ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
다시 화제를 송악산으로 돌려보자. 김정임 대표는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직해 수차례에 걸친 송악산 개발 시도를 막아내는 데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요즘엔 송악산 달마실이라는 이색 프로그램을 만들어 많은 호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김정임 대표에게 송악산은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인지가 궁금하다.
"제 고향이 이곳 대정읍 모슬포입니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공부 때문에 육지에 5년 정도 나갔다 온 것을 제외하면 평생 송악산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셈입니다. 농사짓는 밭에서도 고개를 들면 송악산이 보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송악산과 알뜨르는 어릴 때 꿈을 키워준 곳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송악산과 알뜨르 비행장 그리고 산방산 아래 용머리 해안으로 소풍을 다녔을 정도로 많은 추억이 깃든 장소지요.
▲ 송악산 개발반대 집회 송악산 개발반대 대책위원회가 2020년 4월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자본의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을 반대하고, 송악산 일대의 문화재 등재 등을 촉구하고 있다. |
ⓒ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
송악산을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김정임 대표가 송악산 개발반대 운동에 발 벗고 나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과거 개발업자들이 송악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시설을 설치하려 한 적도 있었고 콘도를 짓겠다고 나서기도 했어요. 저는 그동안 여성 농민운동을 하느라 바빠 송악산 문제에 크게 신경 쓰지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2013년부터 중국 자본이 투자한 신해원 유한회사가 땅을 사들이면서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이라고 해서 호텔 캠핑장 등을 짓겠다고 하는 거예요. 또다시 대규모 개발사업이 현실화하자 정말 이번만큼은 이 개발의 고리를 끊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반대 투쟁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송악산은 화산분출물이 쌓인 곳이어서 지반이 약하잖아요. 여기에 호텔을 짓겠다고 포크레인을 들이대는 순간 망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송악산 곳곳에 일제가 만든 진지갱도가 60여 개나 있는데 이것도 남아나질 않을 것이고요. 또 해안도로를 중심으로 송악산과 섯알오름 양쪽으로 호텔 등 높은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경관이 차단되는 것은 물론, 천혜의 경관자원이 사유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뉴오션타운은 송악산 일대 19만여㎡ 부지에 약 3700억 원을 투자해 461실 규모의 호텔 2동과 캠핑장 조각공원 등 휴양문화시설, 로컬푸드점 등 상업시설을 조성한다는 대규모 개발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다섯 차례에 걸친 제주도의 환경영향평가 심의 끝에 조건부 동의로 통과되기도 했으나 끝내 무산되고 만다. 김정임 대표 등 개발반대 운동 측은 어떻게 송악산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2019년 1월 25일 제주도 환경 심의에서 통과되는 것을 보고 위기감이 들었지요. 2월엔 사업자 측이 마을주민을 상대로 사업설명회를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두면 도의회에서도 통과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 2019년 3월 송악산 개발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대정지역의 청년과 환경단체 분들에게 도움을 달라고 요청드렸지요. 그리고 제주지역의 농민회, 여성농민회, 핫핑크돌핀스, 한살림 분회, 정의당, 진보당 등 6개 단체가 대책위에 참여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어서 개별적으로 참여할 분들을 모이게 했고요.
그리고 제주도의회의 최종 동의 여부가 임박하게 됐을 때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조직을 더 확대했습니다.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은 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환경전문가, 변호사, 제주 출신 인사 등 전국적으로 관심을 가진 분들과 연대한 것이지요. 그때 공동대표가 10명이 넘었는데, 제가 상임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그러니까 반대대책위와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투 트랙으로 개발반대 투쟁에 나선 겁니다."
▲ 제주난개발저항지역연대 기자회견 제주도내 각종 개발사업으로 갈등이 큰 지역의 단체들이 지난 2022년 9월 환경위기에 무책임한 도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
송악산 개발을 막으려는 싸움은 마지막에 극적으로 승리하게 된다. 도의회 동의 절차만 남겨 두었던 뉴오션타운 사업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여론의 힘이었다.
"당시 반대 서명운동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어요. 처음엔 5000명 정도 서명을 받아 도의회에 제출할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호응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송악산이 있는 상모리 주민들은 중국 자본이 온다고 하니까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컸던 것 같았어요. 오일장에도 가고 가가호호 방문도 하면서 서명을 받았습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천주교 환경위원회에도 도움을 요청했죠. 강우일 주교님이 각 본당에서 서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신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그 결과 무려 1만 2000여 명이 송악산 개발에 반대하는 서명을 해주신 겁니다. 저희도 깜짝 놀랐지요.
이렇게 서명을 받아 도의회에 제출하면서 '부동의' 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서는 도지사 면담을 추진했지만 계속 거절하더라고요. 도의회 의원들도 만나 협조를 부탁드리고, 대정지역에서 이 사업에 찬성하시는 분들도 만나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2월 말 도의회 문화관광위원회와 환경도시위원회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도 나갔습니다.
이 토론에서 송악산 개발사업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역설한 저희의 주장에 모두들 공감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송악산을 지켜야 한다는 데에 거의 만장일치로 인식을 함께하더라고요. 또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를 해주었고요. 결국 2020년 4월 27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뉴오션타운 사업이 도의회에서 최종적으로 무산됐음에도 원희룡 지사가 명확한 후속 처리 방침을 밝히지 않는 겁니다. 이때는 제2공항 성산읍 마을대책위, 비자림로 개발반대 모임, 강정천을 사랑하는 사람들, 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 등 9개 단체가 제주난개발저항지역연대라는 단체를 꾸려서 계속 싸웠죠. 그러자 10월 25일인가 원희룡 지사가 송악 선언이란 걸 하면서 더 이상 개발하지 않고 국립공원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원희룡 지사가 밝힌 국립공원 지정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송악산 일대가 국립공원이 되면 주변 지역이 재산권 행사 등 각종 제한을 받게 돼 주민들의 반대가 높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제한조치가 덜한 도립공원 지정을 추진하자는 여론도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송악산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승리로 끝났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 자본이 사들인 부지 문제다. 김 대표의 송악산 이야기는 계속된다.
"저희는 송악 선언만 하면 되는 거냐, 제주도에서 이 부지를 사들여야 한다고 촉구했지요. 그래야 또 다른 개발 시도를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최근 보도를 보면 최종적으로 571억 원에 부지를 매입하게 된 모양입니다. 중국 자본이 190억 원에 사들인 땅인데 그사이에 엄청나게 올라버린 것이지요. 처음부터 개발을 못 하도록 하는 정책을 폈으면 될 일인데, 개발회사에 수백억 원의 부동산 시세차익만 남겨준 꼴이 돼버렸습니다."
▲ 송악산 달마실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매월 보름을 전후해 한 밤의 송악산 정취를 느끼며 걷는 달마실 행사를 하고 있다. |
ⓒ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
김정임 대표의 송악산 사랑은 요즘 달마실 모임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달마실은 매달 보름날을 전후해 저녁 7시에 모여 송악산 달맞이를 하는 행사다. 송악산에서의 달맞이는 상상만 해도 멋질 것 같다. 어떻게 투쟁의 와중에 이런 낭만적인 행사를 떠올렸을까.
"2020년 한창 송악산 개발반대 투쟁을 하고 있을 때 마을주민들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밤에 한번 송악산에 와봐라. 낮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만, 밤에는 암흑천지다.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사람도 없다'. 그때 이 말을 듣고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님이 '그럼 우리 달맞이 한번 같이해보자'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시작한 건데 달마실 해본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송악산 지키기에 자기도 나서겠다고 할 정도로 호응이 컸습니다.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행하는 행사이지만 회원이 아닌 분들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투쟁 열기가 고조됐을 때는 굉장히 많이 왔는데, 요즘은 20여 명 정도 오는 것 같아요. 올해 추석 때는 50여 명이 모여서 송악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낮에 걸어도 아름다운 송악산인데 밤중에 달빛에 의지해 여럿이 걷는 맛은 정말 특별합니다. 모든 소음이 사라진 자연 속에서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를 벗 삼아 걸을 수 있으니까요.
누구든 송악산 달마실에 함께하실 분들은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페이스북에 오면 행사일을 알 수 있습니다. 6개월 치 달마실 일정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달맞이는 송악산 둘레길을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함께 걷고 끝나면 간단한 뒤풀이도 합니다. 일 년 어느 달이든 나름대로 정취를 느낄 수 있으니 언제든 오시면 환영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겨울밤의 달마실도 멋지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김정임 대표는 송악산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앞장서 왔지만, 그에 앞서 여성 농민운동에 헌신해 왔다. 1980년대부터 농민운동에 참여했고, 2012∼2016년에는 제주 여성농민회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도 농사를 짓고 있고,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농사꾼 김정임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그동안 딸기 농사를 짓다가 접었고 그 자리에 블루베리를 심었어요. 노지감귤도 하고 있습니다. 딸기 농사를 지으려면 노동력이 엄청 필요하거든요. 이런저런 운동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 바꾼 겁니다. 1986년에 제가 결혼하면서 농민운동을 시작했으니까 40년이 되어 가네요. 수입 개방의 물결이 거센데 정부에서는 농업을 홀대하고 있으니 농민들이라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지요.
요즘은 '언니네 텃밭'이라는 생산자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농민들이 농산물 수입 개방 반대 투쟁을 많이 해왔지만, 대안이 없잖아요. 그래서 전국여성농민회가 '언니네 텃밭'을 통해 '얼굴 없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를 연결해 주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죠. 이 언니네 텃밭 산하에 지역공동체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저는 대정지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이 지역공동체에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무농약 무화학을 지향하고, 토종 농산물을 생산해 내는 식입니다. 생산물은 보리 채소류 콩 종류 등 다양합니다. 이런 생산물을 언니네 텃밭 사이트에 올리면 소비자들이 구입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라고 하지만 함께 사는 건 아니고 함께 씨앗을 뿌리고, 수확도 하고, 회의도 하는 그런 모임입니다."
김정임 대표는 중국 자본의 뉴오션타운 개발에 대한 도의회의 동의 여부가 걸린 결정적인 시기가 마침 딸기 수확 철이어서 엄청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이 딸기를 다 수확하려면 송악산 개발사업을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과감하게 수확을 포기했다고 한다. 기자가 "정의감이 남다른 것 같다"라고 하자 "어릴 때 위인전을 많이 읽어서인지 정의로운 일에는 앞장서야지 하는 마음을 아주 조금은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는 송악산과 제주도의 미래상은 어떤 것일까.
"송악산은 대정지역이 아닌 제주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보물과도 같은 자산입니다. 이제는 개발의 유혹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면 합니다. 제주도가 그동안 계속 앞으로만 달려왔잖아요. 이제는 좀 멈추고 제주도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과 역사와 문화를 잘 보존해 내고, 여기에 숨어 있는 가치를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제주도민들의 의식이 함께 따라줘야 하겠고, 제주도 행정당국도 그런 방향으로 정책의 목표로 삼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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