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 뗀 조각 투자 플랫폼, 금융제도 마련은 언제 [기자수첩-유통]

최승근 2023. 12. 28. 07: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액으로 다양한 자산 투자 ‘토큰증권’, 2030년 최대 68조 달러 전망
금융위, 2월 ‘ST 관련 가이드라인’ 발표했지만 제도 마련 더뎌
ⓒ게티이미지뱅크

뒷북이다. 유튜브 보다 앞서 이용자 기반의 동영상 플랫폼을 내놓으며 UCC(User Created Contents) 열풍을 일으켰던 판도라TV가 지난 1월 동영상 사업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이제서야 접했다.

한때 국내 동영상 콘텐츠 시장의 절반 가까이(42%)를 차지했던 판도라TV는 2009년 저작권법 삼진아웃제 시행과 국내 IT산업의 대표적 갈라파고스 규제로 꼽히는 인터넷실명제의 여파로 점유율 2%로 추락했다.

반면 유튜브는 국내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 플랫폼의 이점을 앞세워 같은 기간 2%에서 74%로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2023년 한국 동영상 플랫폼 시장은 유튜브 천하다.

사용자와 원저작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규제가 결과적으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한 것은 아니었을까 뒷맛이 씁쓸하다.

최근 국내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토큰증권(ST) 생태계와 이를 대하는 정부의 규제정책을 보고 있자면 14년 전 과도한 규제로 꽃을 피우지 못한 국내 플랫폼과 반면 자율적인 환경을 기반으로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해외 플랫폼의 성패가 되풀이될까 걱정도 든다.

S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다수의 투자자가 소액으로도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블록체인을 사용한다는 면에서 코인과 비슷하지만, 명확한 실체가 있는 자산이 존재한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성장 가능성도 매우 크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30년 글로벌 ST 시장 규모가 최소 16조 달러, 최대 68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해외에서는 ST 활성화를 위한 제도마련이 빠르게 진행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7년 가이드라인을 마련, 2020년 2월부터 ST 거래소가 탄생했다. 일본에서도 2019년 수익증권 발행신탁의 토큰화, 회사채 토큰공모가 시작했다. 미국도 2020년 첫 ST 거래소가 설립됐으며, 현재 운영되는 ST거래소 수만도 20여개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지난 2월 금융위가 ‘ST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제도권화 첫발을 뗐다. 하지만 그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금융위가 ST의 발행과 유통 분리 원칙을 천명하면서 10개월 가까이 기존 조각투자 기업들은 투자 상품 발행 및 유통을 중단해야 했다.

2년간 한시적으로 발행과 유통을 허용하는 샌드박스에는 △루센트블록 △뮤직카우 △에이판다 △카사 등 극히 일부 만이 포함됐다.

정부로부터 ST 발행을 승인받은 사업구조 재편 기업도 △바이셀스탠다드(피스) △서울옥션블루(소투) △스탁키퍼(뱅카우) △알티너스(도트) △열매컴퍼니(아트앤가이드) △테사(테사) △투게더아트(아트투게더) 7곳 뿐이다.

복수 기업이 ST 발행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투자계약증권 관련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열매컴퍼니의 상품 1개만 승인을 받았다. IPO 수준의 까다로운 심사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2월 나온 가이드라인을 제외하면 관련 법제도도 거의 마련되지 못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 개정안은 내년 4월 선거를 앞두고 있어 처리가 요원한 상황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ST 시장은 2030년 36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규제당국의 까다로운 규제와 관련법 미비로 인해 국내 ST자산이 해외 플랫폼으로 유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 ST기업 가운데 앞선 것으로 알려진 바이셀스탠다드와 펀더풀은 싱가포르 ST 플랫폼 IX스왑과 손을 잡았다.

영화 제작 및 투자사인 바른손랩스도 내년 상반기K-콘텐츠를 기반으로 한ST상품을 싱가포르ST거래소에 최초로 상장한다는 계획이다. 바이셀스탠다드는 내년 1분기 싱가포르에 ST 상장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K-콘텐츠를 포함한 한국의 우량한 자산들이 해외 자금으로 성장하고, 그 결실 역시 해외 투자자와 플랫폼에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투자자 보호와 건전한 금융시장을 위한 정부의 규제정책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용자 보호와 콘텐츠 원저작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이뤄진 규제로, 크게 성장한 동영상 플랫폼 시장에 도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한국 스타트업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운영의 묘가 필요한 시기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