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산업부 힘겨루기…600조원 폐배터리, ‘콘트롤’ 누가
산업부, 상품성 고려해 ‘제품’으로 규정
환경부, 위험성 높아 ‘폐기물’로 관리
초기 정부 관리, 이후 민간 경쟁 가야
오는 2030년이면 연간 최대 10만 개에 달하는 전기자동차 폐배터리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시장 주도권을 놓고 정부 부처 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폐배터리를 폐기물로 보느냐, 하나의 제품으로 보느냐에 따라 주무 부처가 달라지기 때문에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민간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수년 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수십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서는 올해 7000억원 수준인 시장 규모가 2030년 1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오는 2050년에는 60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 예측이 정확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전기차가 늘어나는 만큼 폐배터리 배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30년이면 국내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300만 대에 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폐배터리만 연간 10만 개씩 나온다.
산업부는 폐배터리 자체를 하나의 제품이라고 규정한다. 산업부는 폐배터리를 ‘전기차에서 분리해 재제조·재사용·재활용 대상이 되는 배터리’로 규정했다. 폐배터리를 폐기물로 취급할 경우 각종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에, 폐배터리 자체를 새로운 제품화한 것이다.
산업부는 이를 바탕으로 산업 활성화를 위해 폐배터리 회수, 유통, 활용을 민간이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자동차업계와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24개 회사·기관이 참여하는 ‘배터리 얼라이언스’에서는 산업부에 폐배터리의 폐기물 제외를 요구했다.
반면 환경부는 의지가 강고하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최근 폐배터리를 폐기물 규제에서 제외해달라는 업계 요구에 대해 ‘순환자원’으로 기존 재활용 물품처럼 적절한 규제 아래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시켰다. 폐배터리가 가진 폭발성과 환경 오염 위험성 때문이다.
한화진 장관은 지난 8일 오후(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동행 취재진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한 장관은 “폐배터리는 재활용할 때 유해성 등을 따져봐야 하고 환경부가 관리하는 폐기물 규정에도 관련이 있다”며 “기존 순환자원 지정고시로도 폐배터리 재사용이 충분히 가능하고 배터리를 분해해서 재생원료를 뽑을 때 독성물질 관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부와 환경부가 폐배터리를 두고 이견을 보이는 가운데 기획재정부는 폐배터리 시장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지원 확대를 결정했다.
지난 1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이차전지 전주기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에는 관련 소재 확보부터 사용 후 배터리 활용까지 전 주기에 걸쳐 산업 생태계를 고도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추 부총리는 “성능평가를 통해 재제조·재사용 기준을 충족하는 사용 후 배터리를 폐기물이 아닌 제품으로 보도록 관련 제도를 개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민간 영역에서 폐배터리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민간에서도 폐배터리에 대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2021년 1월1일 이후 출고 차량부터는 폐배터리 반납 의무가 폐지되면서 민간 거래가 늘고 있다. 민간 거래 과정에서 폐배터리 안전성이나 사고에 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지난 5월 “배터리의 탈거·운반·보관 과정에서의 폭발 사고, 폐배터리 재활용 전·후처리 공정 과정에서 유해가스 배출 및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사용 후 배터리에 대한 안전성 평가기준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앞으로 (폐)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안전성과 환경오염도 (시장 성장)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적어도 현재로서는 위험성 등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정부의 규제와 관리 틀 안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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