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저주, 50년 건설사 덮쳤다…태영건설 워크아웃 임박

김남준, 김원 2023. 12. 2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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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능력평가 16위의 태영건설이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신청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에 50년 역사의 중견 건설사까지 ‘SOS’를 친 것이다. 사정이 비슷한 다른 건설사로 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이른바 ‘F(Finance)4’로 불리는 금융 관계기관 수장들은 26일 비공식 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최근 부동산 PF 문제와 함께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워크아웃은 기업이 자력으로 빚을 갚는 것이 불가능할 때 채권단 협의로 부채 상환을 유예하거나 일부 빚을 탕감하면서 기업 도산을 막는 절차다. 채권단 동의 75%를 얻으면 워크아웃을 할 수 있다. 특히 워크아웃 법적 근거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지난 10월 일몰됐다가 최근 개정안이 국회와 국무회의를 거쳐 26일 다시 시행됐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재시행 기촉법 1호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워크아웃은 태영건설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신청하거나, 산업은행이 태영건설을 부실 징후 기업으로 판단해 워크아웃을 직접 추진하면 시작한다. 워크아웃이 받아들여지면, 주채권은행이 채권자를 소집해 채무 일시 유예 및 자구책 마련에 나선다. 업계에서는 태영건설이 만약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3개월 정도의 채무 유예 기간을 받고 자구책 마련을 압박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태영건설 자금 압박설이 불거진 것은 최근 급증한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 때문이다. 우발채무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빚인데, 통상 부동산 PF와 관련해서는 건설사가 시행사의 대출을 지급보증한 경우를 의미한다. 경기가 좋을 땐 큰 문제가 없지만 최근처럼 부동산 PF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시행사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이 우발채무가 결국 건설사가 갚아야 할 빚으로 돌아온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보증한 PF 대출 잔액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4조4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영건설 발목 잡은 ‘우발채무’…건설사 전체론 ‘23조 뇌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인해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27일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사옥 로비의 모습. [연합뉴스]

민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위한 PF 대출 보증액을 제외한 순수 부동산 개발 PF 잔액은 3조2000억원 수준이다. 또 태영건설의 올해 3분기 말 기준 순차입금은 1조930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478.7%에 달한다. 대형·중견 건설사를 통틀어 부채비율이 가장 높다.

태영건설이 보증을 서 준 부동산 PF 관련 대출 중 실제 갚아야 할 가능성이 높은 우발채무는 약 1조2565억원이다. 이는 한국기업평가가 태영건설의 미착공 사업장이나 분양이 진행되지 않은 착공 사업장, 사업 철수를 진행 중인 사업장과 관련해 차환(기존 대출을 갚고 새로 받는 대출)이 필요한 부동산 PF 우발채무를 모두 집계한 것이다. 한기평은 “착공 사업 중에서도 지방자치단체 관련 청년주택 사업장을 제외하면 실제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약 1조원으로 추산하며, 이 중 1900억원이 올해 12월에서 내년 2월에 걸쳐 만기가 도래한다”고 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땐 ‘재시행 기촉법’ 1호

실제 태영건설은 지난 18일 ‘성수동 오피스2 개발사업’과 관련해 약 400억원의 부동산 PF 브리지론 만기가 돌아왔었다. 하지만 이를 갚지 못해 한때 위기설까지 돌았다. 결국 대주단이 상환 기한을 10일 연장했는데, 만기일이 28일에 다시 돌아온다. 태영건설의 채무 감당 능력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자 지난 21일 한국신용평가는 태영건설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하향 검토’로 낮췄다. 무보증사채 등급은 A-를 유지했다.

박경민 기자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태영건설이 빠르면 28일 워크아웃을 신청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워크아웃 가능성에 대해 태영건설도 크게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태영건설은 27일 오전 공시를 통해 “당사는 현재 경영 정상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워크아웃과) 관련해 확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반응은 이달 중순 처음 불거졌던 워크아웃설을 강력히 부인했던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당시 태영건설 측은 “(워크아웃설) 유포자를 찾아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워크아웃설을 일축한 바 있다.

이런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태영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그룹 내 물류회사인 태영인더스트리를 매각해 이달 중 자금이 확보되며, 화력발전소 포천파워의 지분 15.6%를 420억원에 매각하기로 하는 등 자구 노력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가능성에 건설사 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PF 불안으로 금융회사가 관련 유동성 공급을 줄이거나, 추가적인 신용보강을 요구하면서 급한 대로 건설회사가 자금을 직접 조달하거나 지급 보증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서다.

건설사 부동산 PF 우발채무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기업평가]

실제 한기평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건설사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22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6월 말(18조원) 대비 29% 늘었다. 이는 한기평이 유효등급을 부여한 21개 건설사의 우발채무를 집계한 결과다.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회복하지 않으면 이렇게 불어난 우발채무가 태영건설처럼 또 다른 건설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미 건설사 위기 징조는 시작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부도난 건설회사는 총 19곳으로, 24곳이 부도났던 2020년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이달에 부도를 낸 건설사만 8곳에 달했다. 이런 영향에 신용평가사도 건설사 신용등급을 잇따라 낮추고 있다. 한기평은 지난 10월 일성건설 신용등급 전망을 BB+(안정적)→BB+(부정적)로 하향했고, 11월에는 신세계건설도 A(안정적)→A(부정적)로 낮췄다. 철근 누락으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를 겪은 GS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도 A+(부정적 검토)에서 A(안정적)로 하향됐다.

건설사 연쇄 위기? 정부 ‘옥석 가리기’ 시사

정부의 고민은 크다. 쉽사리 지원에 나섰다가 정리돼야 할 부실 사업장까지 지원해 오히려 부동산 PF 부실을 더 키울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문제 있는 건설사와 금융사는 기본적으로 조정 내지는 정리해야 한다”며 ‘옥석 가리기’를 시사했다.

다만 건설사 위기를 방치하면 일자리 감소와 하도급 업체 타격 등 실물 경제가 위축할 수 있다는 점은 골칫거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 말이 나오는 일부 건설사의 어려움은 큰 문제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이것이 부동산 PF 사업 전체의 불안을 키우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 건설업계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과 맞물려 하도급 업체의 줄도산 등 업계 전반으로 위기가 퍼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태영건설의 주가는 전일(2990원)보다 19.57%(585원) 하락한 2405원으로 마감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회생이 불가능한 사업장은 정리 수순을 밟아야 하지만, 회생이 어느 정도 가능한 사업장은 이자 낮추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회생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김남준·김원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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