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업 가겠다" 손 든 '전관' 올 600여명…40명 5대 그룹행

고석현 2023. 12.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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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삼성이 올해 주요 대기업 중 검찰·경찰·산업통상자원부 출신 등 전관(前官) 공무원 14명을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대기업 가운데 가장 많았다. 또 고위공무원 620여 명이 민간 기업(단체·협회 제외)으로 이직하기 위해 올해 취업심사를 신청했으며, 열 명 중 한 명꼴로 취업불가(취업제한·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27일 중앙일보가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최근 5년(11월 기준)간 인사혁신처의 공직자 취업심사 내역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삼성은 올해 14명의 고위공무원을 영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삼성으로 이직한 대표적인 고위공무원은 기획재정부 부이사관(3급) 출신 이병원 삼성전자 IR팀 담당 부사장(51)이다. 삼성전자가 기재부 출신 관료를 영입한 건 2016년 김이태 상생협력센터 부사장 이후 7년 만이다.

이 부사장은 지난 9월 퇴직한 뒤 인사혁신처 심사에서 취업 가능 판정을 받아 11월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행정고시 42회 출신으로, 기재부 정책조정국·경제구조개혁국 등을 거쳤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2018~2020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2022년) 등을 지냈다.

삼성은 지난 5년간 총 67명의 고위공무원 출신을 채용해 5대 그룹 중 채용 인원이 가장 많았다. 2019년 이직자 18명 중 12명이 삼성전자서비스 안전서포터즈에 채용된 경찰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5년 중 올해 고위공무원 영입이 가장 활발했다.

5대 그룹 전체로 보면 최근 5년간 영입 시도한 공무원은 218명이고, 올해만 46명에 이른다. 지난해 14명으로 가장 많은 고위공무원을 뽑은 SK그룹은 올해 6명의 영입을 시도했다가 4명만 영입했다(2명은 취업불가 판정). 현대차그룹은 올해 11명을 영입해 삼성(14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채용했고, LG그룹은 7명, 롯데그룹은 4명을 영입했다. 5년 누적으로는 SK그룹 45명, 현대차그룹 33명, LG그룹 30명, 롯데그룹 28명 등이다. 삼성·LG·롯데는 경찰 출신을, SK는 검찰·경찰 출신을 동수로, 현대차는 군 출신 공무원 영입이 많은 편이었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일원에서 정부부처 공무원 등 관계자들이 출근하는 모습. 뉴스1


“아는 얼굴이니, 무시하진 않는다”


기업들이 전직 고위 관료를 영입하는 건 정부와 기업 간 가교 역할을 기대해서다. 주요 허가·민원 절차 등에서 친정인 정부 기관에 기업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할 통로일 수 있기 때문. 정부 정책이나 규제 영향을 많이 받는 사업일수록 전관 영입에 적극적이다. 다만 과거보다 전관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무직 공무원 출신 한 대기업 임원은 “허가 등을 앞두고 있을 때 회사와 기관 간 매끄러운 업무처리를 돕는다”며 “퇴직자라 기관에 직접 뭔가를 요구할 수는 없지만 서로 아는 얼굴들이니 무시하진 않고,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준다”라고 말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고위공무원(통상 4급 이상)이 퇴직 후 3년 이내에 민간 기업 등에 취업하려 할 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받아야 한다. 퇴직 전 5년 동안 일했던 업무나 기관이 취업 예정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취업 후 직전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취업 불가 결정을 내린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고위공무원 기업行 증가세…올 628명


김경진 기자
한편, 최근 5년간 공무원의 민간 기업 재취업 심사 신청은 총 2792건으로 이 중 9.1%(255건)가 취업 불가 판정을 받았다. 특히 신청 건수는 지속 증가세를 보인다. 2019년 507명에서 올해 628명으로 대폭 늘었다〈그래픽 참조〉. 올해 취업 불가 판정률은 12.4%로 나타났다.

기관별로 최근 5년간 경찰청 소속의 재취업 심사가 700건으로 가장 많았고, 국방부(355명)→검찰청(196명)→금융감독원(153명)→국세청(130명) 순으로 뒤를 이었다. 다만 경찰청 소속 인원이 13만7850여명(지난 6월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 심사 건수도 많았을 수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은 ‘관료 자본주의 국가’라 할 정도로 예산·규제 측면에서 관료들의 영향력이 세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세무·공정거래 등 리스크 대비 차원에서 전직 관료 채용을 지속하는 것”이라며 “법 제도와 체계를 잘 아는 관료 출신이 내부통제·준법 등의 가이드 역할을 하면 기업에 도움이 될되지만, 인허가 등에서 정부와 기업의 유착 구조가 생기지 않도록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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