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러 갔다가 러 제재에 발 동동…수조원 韓쇄빙선 어쩌나

김수민 2023. 12.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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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로 흐르던 ‘돈줄’이 꽉 막히면서, 러시아 선주들이 발주한 배들이 국내 조선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조선소와 계약한 액화천연가스(LNG) 쇄빙운반선 건조를 중단했고 한화오션은 ‘쇄빙선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한국수자원공사 소속 쇄빙선이 뱃길을 내기 위해 얼음을 깨고 있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사진. 연합뉴스


꽁꽁 언 북극항로에 투입돼 얼음을 깨고 항해해야 하는 쇄빙선은 선체에 초고강도 특수 후판이 사용되는 등 건조 기술 자체가 까다로워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꼽힌다. 가격도 통상 선박보다 20~30% 더 비싸다.


삼성重, LNG운반선 건조 중단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와 계약한 22척(쇄빙선 15척‧쇄빙셔틀탱커 7척) 중 LNG쇄빙선 등 17척에 대한 선박 블록 및 장비 제작을 지난 8월 중단했다.

계약금 총액만 57억 달러(약 7조5000억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계약이지만,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이 이달 중으로 즈베즈다 조선소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특별지정제재대상(SDN·Specially Designated Nationals) 대상에 올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건조를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즈베즈다조선소는 러시아 극동 볼쇼이카멘에 있는 현지 최대 조선소 중 하나다. 그러나 SDN에 오르면 모든 자산이 동결됨과 동시에 외국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삼성중공업이 이미 납품한 선박 5척의 블록 및 장비 대금(15억 달러)은 대부분 받았지만, 남은 17척이 문제다. 즈베즈다가 SDN에 등재될 경우 납품을 완료하더라도 언제 수금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측은 계약 취소를 포함해 여러 선택지를 협의 및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 타스=연합뉴스


1조 짜리 배 세 척, 갈 곳은


한화오션도 전쟁 발발 전인 지난 2020년 러시아 선주들(엘릭슨‧아조리아‧글로리나)과 계약한 1조원 규모의 LNG쇄빙선 3척의 새 주인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들 러시아 업체가 SDN에 올라 중도금을 내지 못하자, 한화오션은 해당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자 선주들은 이후 싱가포르 국제중제센터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잡음도 빚어졌다.

한화오션은 쇄빙선을 구매할 다른 선주사를 찾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얼음을 깨는 쇄빙선의 기능 자체가 워낙 특수한 데다 배 값도 비싸 새 주인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HD한국조선해양의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도 지난 2017년 ‘즈베즈다-현대 LLC’라는 합작사를 세워, 현재도 49%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당시 즈베즈다가 건조할 유조선 7척에 대한 설계 및 기술 지원 목적으로 4억8000만 달러(약 6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으나, 이에 따른 블록 등 장비는 납품을 완료했고 대금 결제도 거의 마쳐, 현재로선 제재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현대차 공장의 모습. 타스=연합뉴스


장기화 우려 큰 러시아 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며 조선업계 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의 후폭풍도 거세다. 현대차가 4100억원 가치의 러시아 공장을 현지 기업에 14만원에 ‘헐값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러시아 현지 생산 법인이 가동을 멈춘 지 1년을 훌쩍 넘기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처럼 경제 제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마땅한 출구 전략조차 찾기 쉽지 않다”고 토로하고 있다. 미국은 2018년 이란이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자 무역 관계를 4년 넘게 단절한 바 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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